악마의 씨
관객들에게 정신적인 상처만 안겨주는 최근의 호러 경향들과는 달리, 호러의 고전에 꼽힐 만한 영화들에는 주목할만한 특징이 있다. 관객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보여주지 않아야 할지를 잘 판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영화들에서는 전기톱도 작두도 없다. 그리고 인간의 뱃속에 내장이 어떤 모습인지 탐구하려 한다거나 신체가 어느 정도까지 세세하게 절단될 수 있는지는 관심을 두려 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관객들에게 두려움을 유발하는 공포의 실체를 잘 감추고 또 잘 드러내면서 효과를 얻는다. 마치 음악에서 복선율과도 같이 인간과 공포의 영역은 분리되어 있으되, 우연한 접점에서 급작스럽게 서로가 서로에게 머리를 내밀 때 그 공포의 설득력은 배가된다고 할 수 있겠다. 유명작가 아이라 레빈의 <로즈메리의 아기>를 영화화한 <악마의 씨>도 이와 같다. 여기에는 악마도 실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오로지 꿈에서 짐승의 눈으로만 나타날 뿐이다. 악마 숭배자들도 우리와 같은 평범한 이웃이며 심지어 이웃보다 더 다정하기도 하다. 내 생각에 이 영화가 우리에게 묻고자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도대체 인간은 인간과 인간 간의 관계망 속에서 탈출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로즈메리가 위험에 처하는 것은 대자연의 웅대함이 아닌, 평범한 이웃들의 위선과 배신 때문이며 결국에는 우리가 항상 도식적인 인물들과 매일매일 형식적으로 대면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실지로 무엇을 행하는가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는 끔찍한 사실을 재확인하게 한다.
두 번째로 얘기해보고자 하는 바는 조지 로메로가 자신의 작품에서 좀비들을 “공산주의”의 은유라고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사탄을 주제로 한 공포 영화는 어쩌면 미국 내에 암약하는 빨갱이에 대한 은유일지도 모른다. 러시아 혁명이 성공하자 서방측에서 만들어낸 반 볼셰비키 포스터들에 사탄의 모습을 한 붉은 얼굴의 공산주의자들이 들어가 있었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다. <악마의 씨>와 <오멘>은 똑같이 사탄의 자식을 다루고 있다. 왜 사탄이 아니고 사탄의 자식일까? 사탄의 자식은 육화된 사탄이기도 하며 하나의 탄생이고 사탄의 역사(役事)가 시작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이제까지의 그리스도인들의 역사가 끝나고 사탄의 역사(歷史)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공포는 항상 미래로부터 온다. 인간이 겪는 공포의 시원은 미래가 예측 불가능하다는 점에 있다. 산길에서 불길한 울음소리 뒤에 무언가가 엄습해올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부터 내일 당장 직장에서 해고될지도 모른다는 도시인의 두려움에 이르기까지 공포는 다양한 양상을 띠지만 그것은 본질적으로 미래에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며 공포 영화는 각국의 중산층에게 예측 불가능한 미래를 스크린을 통해 구체적인 형상을 지닌 것으로 적시함으로써 효과(흥행)를 거둔다. “미래의 미국의 대통령이 미국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악마의 자식이거나 그의 권세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와 동일시되는 빨갱이라면 그리고 내가 낳은 자식이 이제껏 내가 친숙하게 느껴왔던 것과 전혀 다른 것이라면?”하면서 관객들의 불안을 (역)이용하는 것은 이러한 부류의 영화들이 지닌 강점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불길한 상상들은 60년대의 부모들에게 크게 어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정말로 60년대에는 악마의 자식이라고 해도 좋을만한 그들의 자식들(혹은 벤저민 스포크의 자식들)이 미국의 이상 징후를 이끌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로만 폴란스키의 아내 샤론 테이트와 그의 9개월 된 자식을 살해한 찰스 맨슨 역시 그러한 악마의 자식들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그는 무정부주의자로 행세하기는 했지만 빨갱이는 아니었고 유감스럽게도 실제로 악마의 자식에 가까웠다. <악마의 씨>는 주류 평단과 사탄 숭배자들 모두에게 인정받으면서 한편으로는 호러 클래식으로, 또 다른 한편으로는 사탄 숭배자들의 컬트 무비가 된 것이다. 이 영화의 성공(영화로서의 성공과 악마성의 구현에서의 성공)은 아마도 찰스 맨슨을 자극했을지도 모른다. 역설적이게도 “악마의 씨”가 결국은 “감독의 씨”을 해한 것이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미래로부터 날아온 공포와 함께.
(2006/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