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matheca
2015년 영화 리스트 - 5
Baron Samdi
2016. 6. 29. 10:50
22. 고지전
전투의 묘사가 탁월하다는 영화. 그러나 그 뿐. 영화적인 재미는 괜찮은 편이고 대중 영화로 손색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전쟁의 광기를 드러내기에는 너무나 터무니 없는 설정이 눈에 거슬린다. 예컨대 모르핀을 맞아가며 싸우는 전투 불사신인 어린 소대장(<시티 헌터>인가? 사에바 료가 십대 시절 엔젤 더스트를 맞아가며 아프리카 내전의 용병으로 뛰었다는 설정과 꽤 흡사하다.), 소녀에서 여전사로 다시 태어난 여성 스나이퍼 (<스릴러>) 등, 영화 자체로 놓고 보면 아쉬운 점이 한둘이 아니다. 다만 재미있는 전쟁 영화로서 본다면 추천할 만한 영화.
23. 기담
저급한 일본 공포 아니메를 본 것 같다. 이 영화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면, 굉장히 일본적인 정서를 담고 있고 이를 무람없이 드러내기 위해 일제시대라는 설정을 따르면서도 관객들에게 트라우마를 안겨주기 위해 영화를 찍어대는 서구 공포물의 도식에만 치중하고 있는 것 같다. <주온>같은 일본 공포영화처럼 극적 긴장감과 충격적인 분장이 잘 어우러지는 것도 아닌 그저 그런 영화. 영화 감독이 아니라 광고 사진가가 만든 영화같다.
24. 갱스 오브 뉴욕
아는 분이 "인생의 영화"라고 추천해줘서 보게 된 영화인데, 이를 "인생의 영화"라고 할 정도라면 그 인생은 무엇을 탓해야 할 것인가. 내가 마틴 스콜세지 감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그의 작품들이 한국의 로스터리 카페처럼 걸작과 졸작의 편차가 크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걸작도, 졸작도 아닌데 범작으로서 걸작의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영화를 걸작이라고 평가하는 사람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면 이 단선적인 복수극을 또 한 번 감내할 의향이 있는가다. 3시간이나 참고 봤는데 고개를 가로저어야 마땅하다.

25. 로닌
전략의 천재, 자동차 레이서, 무기 전문가 등 각계의 전문가들이 팀을 이루어 목적을 위해서 협심한다는, 일종의 케이퍼 무비라고 할 수 있다. <이탈리안 잡>은 물론이고, 위대한 프랑스 범죄 영화의 전통을 잇는 듯한 숨겨진 명화라고 할 만하다. 특히 로버트 드니로가 처음에 현장을 지휘하는 신, 표적을 염탐하기 위해 호텔로 들어가는 신, 카 체이스 신 등은 영화 각본이나 연출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눈여겨봐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26. 하트 앤드 마인드
눈물을 감출 수 없는, 베트남 전의 참혹한 광경들을 기록한 기록 영화의 걸작이자, 다큐멘터리 교과서에도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전쟁 다큐. 냉혹한 미 행정부의 관료들, 처절하게 파괴되는 베트남 민중들의 삶, 그리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파병되었으나 전쟁의 끔찍함으로 인해 영혼이 손상당한 참전 군인들을 세 개의 축으로 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내레이션으로 상황을 친절하게 풀어가는 TV다큐 형식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지루할 수도 있지만, 다큐 교재로서 뿐만 아니라 사료로서의 가치도 높다.
27. 프로즌 그라운드
미국판 <살인의 추억>이라는 선전에 속지 말 것. 미국판 <경찰청 사람들>. 스토리라인이 단선적이고 항시 예측 가능하기 때문에 정말로 "안 봐도 비디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 알라스카의 연쇄 살인범인 빵집 주인 도살자 (Butcher Baker) 로버트 핸슨이 체포되고 기소되는 과정까지를 그리고 있는데, 니콜라스 케이지, 존 쿠삭이라는 좋은 배우들이 아까울 정도였다. 핸슨의 범행은 굉장히 독특한데, 여성을 납치해서 항공기로 황무지까지 실어나른 후, 짐짓 못본 체 경계를 허술하게 해서 피해 여성들을 도망가게 만든다. 그러면 야생동물을 사냥하듯이, 피해자들을 사살하는 식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끔찍한 범죄를 어떠한 사회적 함의도 없이 재연하기에만 급급하고 있다. 이 영화를 볼 시간이면, 이 범죄 행각을 빠른 전개로 압축해놓은 <크리미널 마인드>의 에피소드를 권하고 싶다.
28.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속았다. 무슨 예술영화인 줄 알았으나 샘 페킨파가 울고갈 만한 폭력의 미학을 보여주는 영화. 특히 샷건이 얼마나 끔찍한 무기인가가 여실히 드러나 있다. 손에 땀을 쥐면서 즐기기는 했는데, 이 영화가 품고 있는 복잡한 의미에 대해서는 (너무 흥미진진한 전개 때문에 생각할 겨를도 없었거니와,) 쉽게 풀어낼 수 있을 만큼 똑똑한 사람이 못 되기에 소략해야겠다.
29. 왓치맨 (얼티밋 컷)
3시간 반이 넘는 러닝타임에도 흥미롭게 본 영화. 그래픽 노블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뭐라 말 하기는 그렇지만, 초반에 마구잡이 편집본 때문에 욕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얼티밋 컷은 그나마 극의 전개를 많이 훼손하지 않아 보기에 불편하지는 않았다. 내가 보기에 근래에 나온 미국 대중문화의 경향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산물 같다. 다만 생각할 거리가 너무 많으므로 기회될 때 한 번 더 봐야 할 것 같다.
30. 1408
스티븐 킹의 단편을 흥미롭게 읽었기 때문에 보게 되었고, 네이버에서 미국 공포영화의 수작이라는 누군가의 평에 넘어가 보게 된 된 영화. 수작은 무슨, 개수작이다. 초반 전개는 스티븐 킹의 설정에 따라 굉장히 흥미롭게 흘러가는데, 킹의 설정에 감독의 상상력을 부가한 중반 부분에서는 신파와 재난영화를 오가면서, 초반에 쌓아둔 관객들의 신뢰를 여지없이 허물어버린다. 솔직히 중반부 이후로는 빨리감기로 봤다. 제대로 봤다면 더욱 후회했을듯, 네이버 영화평은 네이버 주부님들이 올린 요리법만큼이나 믿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영화 감상은 자신의 눈만 신뢰해야 하는 고독한 행위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영화.
(2015/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