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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ilight - Never Want To See You Low (1986)

Baron Samdi 2021. 12. 27. 16:20

10년 전에 Luv N' Haight에서 Twilight의 앨범이 모두 복각이 되었을 때, 수많은 레어 그루브 디거들이 환호했던 기억이 난다. 한국에서는 자회사 하겐 다즈로 더 유명한 미국의 식품기업 제네럴 밀스 (치리오스, 코코아 펍스, 럭키 참스로 유명한 미국 식품 회사)의 교대근무 노동자였던 Lawrence Ross가 뮤지션의 꿈을 이루기 위해 작업한 결과물, 특히 교대 근무가 끝나고 땅거미가 내려앉을 무렵에 작업을 해서 밴드 명을 Twilight으로 했다고 하는 숨은 걸작. 

 

Twilight을 처음 알았을 때는 공장 노동에 시달리다 얼마나 음악을 하고 싶었을까, 낭만적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내막을 알고 보면, 단순히 부업으로 음악을 했다기 보다는 프로 뮤지션이 생계를 위해 공장에 나갔다고 보는 편이 맞다. 로렌스 로스는 작, 편곡, 프로듀싱에 악기 연주를 도맡았다. 이미 9살 때부터 클라리넷을 배웠고, 아버지의 영향으로 다양한 음악을 접하면서 성장했다. 게다가 로스에게는 한번 연주해봤던 음악은 단번에 외워버리고 즉흥 연주를 가미할 수 있다는 희귀한 재능이 있었다. 중학교에 진학해서는 연주할 수 있는 악기의 지평을 넓혀, 색소폰, 피아노, 베이스, 기타, 트럼 등에 손을 댔고, 고등학교 때는 The Establishment라는 이름의 훵크 밴드를 결성해서 활동했다. 당시 로스가 살던 캘리포니아주 발레호에는 Project Soul이라는 라이벌 밴드가 있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프로젝트 소울이라는 밴드의 후신이 캘리포니아를 대표하는 훵크 밴드 Con Funk Shun이라는 점이다. 

 

로스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제네럴 밀스의 야간근무 노동자로 취업해서 음악 작업을 병행해 81년 첫 앨범 <Still Loving You>를 발표한다. 곡을 쓰고 작업하는 데 1년, 녹음하는 데는 오전 10시부터 11시까지 1시간 씩만 작업해서 1주일, 비용은 1,200달러가 소요됐다. 로스는 비용을 아끼기 위해 모든 악기를 연주했고, 보컬이나 혼 섹션은 친구와 지인들로 충당했다. 그리고 이 앨범은 1주일 만에 매진되었다. 로스가 제네럴 밀스에서 일하던 당시, 서클 스타 극장에서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의 공연이 열렸는데, 백스테이지에서 워싱턴을 만난 로스는 자기 마우스피스로 워싱턴의 색소폰을 연주해보고 싶다고 청했고, 자신의 곡을 연주하는 로스에게 워싱턴은 전화번호를 건네주면서 멘토가 되어주었다. 첫 앨범 발표 5년 뒤인 86년 두 번째 앨범 <Pains Of Love>를 발표한다. 하지만 전작보다 더 적은 수량을 찍었고, 라디오 전파를 타지도 않았고, 어쩐 이유에선지 홍보나 판매를 위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이 앨범은 그대로 묻히는가 싶더니 21세기 들어서 장당 500달러를 호가하는 DJ, 프로듀서, 콜렉터들의 성배가 되었고, Ubiquity의 하위 레이블인 Luv N' Haight가 로스에게 연락해 계약을 맺으면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나는 사실 두 앨범의 모든 곡이 다 특출나다고 생각하는데, 받아들이기에는 개인차가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맡아하면서 작업상의 난관을 개인기로 돌파해나가는 것도 인상적이거니와, 같은 직장인으로서 이런 양질의 음악을 뽑아낸다는 점이 대단하게 생각됐다. 로스가 앨범을 홍보하는 데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이유는 운이 없어서일 수도 있겠지만 철저한 자기 성찰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 싶다. 아마도 음악을 해나가면서 계속 지향하는 종착점이 수많은 대중이 아닌 '자신'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이런 뮤지션십, 그리고 정갈한 스튜디오 퀄리티와는 거리가 멀지만 스피릿으로 충만한 예술에 대해 시대착오적인 애정을 느낀다. 모든 곡이 좋지만 가장 자주 듣는 곡은 이 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