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matheca

2025년 영화 목록 - 1

Baron Samdi 2025. 1. 31. 14:15

1. 귀축 (키치쿠, 1978)

 

 

마쓰모토 세이초의 단편 "귀축"을 원작으로 한 노무라 요시타로의 78년작. 노무라 요시타로는 널리 알려진 감독은 아니고 요코미조 세이시나 마쓰모토 세이초 등의 대중문학을 꾸준히 스크린으로 옮긴 사람으로 알고 있다. 작년에 본 <모래그릇>이 굉장히 인상 깊었는데 이 영화도 아역들의 발연기를 제외하면 꽤 수작이다. 인쇄소로 돈을 만진 타케나카는 요릿집 여자 키쿠요와 바람을 펴서 아이를 셋 낳지만, 생활고에 시달린 키쿠요는 타케나카에게서 돈이 나오지 않자 아이 셋을 두고 사라져버린다. 바람핀 남편의 아이를 떠맡게 된 아내는 아이들을 없앨 것을 종용하고 심약한 남자 타케나카는 하나씩 하나씩 실행에 옮긴다. 이 영화의 주연을 맡은 오가타 켄과 오가와 마유미는 이듬해 이마무라 쇼헤이의 영화 <복수는 나의 것>에서 다시 합을 맞추게 된다. 오가타 켄은 <복수는 나의 것>과는 180도 달라진 감정적이고 우유부단하며 아내의 눈치를 보며 사는 남자로 분한다. 이 영화를 보면 윤리란 정언명법 같은 것이 아니라 어쩌면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며 상황에 따르는 책임으로부터 발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단순한 오락물이라고 하기에는 생각할 거리가 많은 영화. (★★★★☆)

 

2. 자칼의 음모 (1973)

에드 레드메인이 주연한 영드 <더 데이 오브 더 자칼>을 재미있게 봐서 다시 복습 차원에서 꺼내 본 영화. 원작소설 <자칼의 날>이 워낙 뛰어나기도 하지만 프레드 진네만의 연출이 갖고 있는 탁월한 고전미 때문에라도 가끔 꺼내볼만 하다. 몇 부분이 스틸 화면이나 점프 컷으로 넘어가는 편집 실수가 눈에 띄기는 하지만 영화의 전체적인 명성을 훼손할 정도는 아니다. 드골 대통령을 저격해 살해하려는 암살자 자칼의 치밀한 준비와 자칼의 행보를 뒤따라잡으려는 영국과 프랑스 경찰청의 공조수사가 이 영화가 주는 스릴의 핵심이다. 프레드 진네만의 진득한 컷 감각이 오히려 핸드헬드 같은 잔술수를 쓰는 액션 영화보다도 더 큰 서스펜스를 안겨준다. 자칼은 모든 행보에서 경찰을 앞서가지만, 경찰의 끈질긴 수사는 후반부의 큰 역전 기회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이솝 우화의 '토끼와 거북이'와 닮아있다. 당수로 사람을 죽이고 70년대 영화 특유의 연극적인 과장된 액션이 눈에 거슬리기도 하지만 자잘한 흠결들을 다 뒤엎어버리는 압도적인 매력이 있다. (★★★★★)

 

3. 스탠딩 인 더 샤도우 오브 모타운 (2002)

폴 저스트먼 감독의 다큐멘터리, 아니 걸작 다큐멘터리. 흑인음악 팬이라면 무조건 봐야하는 교과서 같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모타운에서 수많은 히트곡을 쏟아낸 세션맨 '훵크 브라더스'의 일대기와 재결합 공연을 담았다. 그래서 제목도 '모타운의 그늘 아래서'인데 왜 기괴한 한국어 제목을 갖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당장 극장 개봉을 해도 손색이 없지만 소울, 훵크라는 글로벌한 장르는 한국의 문화적 후진성으로 인해 여기서는 마이너한 장르가 되어버렸기에 국내 DVD 출시만 해도 감지덕지다. 흑인음악 팬이라면 영화 시작 즉시 일어나 다시는 앉을 수 없을 것이며, 마지막에 '훵크 브라더스'가 호명되는 순간, 눈물을 감출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 꼽는 걸작 중의 걸작. 다큐는 지루할 것이라는 통념을 깨줄 것이다. 가장 인상적어었던 부분은 제임스 제이머슨이 투어를 위해 마련한 좁디 좁은 스테이션 웨건에서 족발 피클을 먹다 멤버들에게 쫓겨나는 부분, 명곡 'My Girl'의 유명한 기타 리프를 창조해낸 로버트 화이트가 레스토랑에서 이 곡이 흘러나오자, 웨이터에게 자신의 곡이라고 자랑하고 싶었지만 결국 믿어주지 않을 것 같다며 입을 다무는 장면, 에디 봉고 브라운이 제작자들에게 잘 보이려고 악보로 위장해서 포르노 잡지를 펼쳐놓는 장면 등이다.  (★★★★★)

 

4. 퍼시픽 하이츠 (1991)

<미드나이트 카우보이>, <마라톤 맨> 때문인지 존 슐레진저 감독. 누아르 형식을 띤 부동산 스릴러. 요즘은 스쿼터(주택 불법 무단 점유자)에 대한 법이 강화된 듯 보이지만, 90년대만 해도 이런 일들이 생소했던 것 같다. 악성 세입자가 집주인을 괴롭힌다는 내용이 이야기의 큰 줄기로 <실화탐사대> 등에서 많이 본 내용인지라 크게 놀라울 것은 없다. 처음에는 영상 10도에 패딩을 꺼내드는 캘리포니아 주민을 보는 것처럼 '미국놈들은 뭘 저런 일을 갖고 호들갑인가, 한국에는 저보다 심한 일이 많다'고 생각했으나 총이 나오고부터는 심각해지기 시작. 마이클 키튼이 <배트맨>을 찍고 이 영화에 출연한 것을 보면 브루스 웨인 이미지로 굳어지는 것에서 탈피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영화 중반까지는 꽤 지루하지만 총격 사건이 있고부터 복수극으로 전환되면서 갑자기 재미있어진다. 이 영화에서 매튜 모딘과 멜라니 그리피스가 몰고 다니는 폭스바겐 타입 181 컨버터블이 너무나 매력적. 걸작 정도는 아니지만 타임킬링 용으로 좋고 대중적인 스릴러 영화로서도 수작이다.

(★★★)

 

5. 팔묘촌 (1977)

요코미조 세이시의 킨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를 스크린으로 옮긴 노무라 요시타로의 영화. <귀축>, <모래그릇>의 원작자 마쓰모토 세이초의 대척점에 있는 작가의 작품을 왜 선택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치가와 곤의 <이누가미 일족>을 염두에 둔 것 같다. 요코미조 세이시는 기상천외한 설정과 트릭에만 집중할 뿐, 사회와 역사로부터 표백된 세계를 그려내는 작기이기 때문에 마쓰모토 세이초와 같은 묵직함이 떨어진다. 정경 묘사나 마을에서 죽음을 당하는 8인의 사무라이들, 그리고 불타는 마을을 내려다보는 사무라이들의 원혼을 그린 시퀀스는 인상깊지만 원작의 힘이 약해서인지 노무라 요시타로 특유의 장중한 연출이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도 오가와 마유미가 출연하는데 노무라 감독이 선호하는 여배우인지, 아니면 당시로서는 잘 나가는 배우라 다작을 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재미로만 본다면 스맙의 이나가키 고로가 킨다이치 탐정으로 분한 TV 시리즈가 훨씬 나은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