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nkatology

<Funk> 3-9 - 아이작 헤이스/ 바-케이스

Baron Samdi 2016. 6. 24. 16:49

아이작 헤이스
헤이스의 곡은 놀라웠다. “Hot Buttered Soul”은 흑인 음악에 대한 대중적인 정의를 바꿔놓았다. 10분이 넘는 디온 워윅Dionne Warwick의 커버곡 “Walk On By”는 느리고 명상적인 현악으로 시작하며, 넘실거리는 블루스가 정점을 치고 예전의 소울 음악에서 색소폰 솔로가 나왔을 법한 부분에서 거친 잡음의 큰 기타 톤이 터져 나온다.

 

헤이스의 목소리는 낮은 숨소리로 기어오르면서 디온 워윅의 스탠다드 팝을 남성적 고뇌에 대한 찬가로 만들어 놓았다. 앨범의 이 4곡은 헤이스의 느끼하고 숨소리 거친 나이트클럽 공연의 길고도 연장된 판본이다. 사랑이 얼마나 사람을 웃기고, 울리는지에 대한 긴 대화는 밴드의 연주를 타고 유려하게 흐른다. 바-케이스의 연주는 아이작 헤이스가 목소리로 보여주는 다양한 기교들을 따라서 부드러운 프랭크 시내트라 스타일의 감수성에서 흑인들의 솟구치는 비명으로 전환된다. 헤이스의 강력하면서도 믿을 수 없이 부드러운 목소리가 음악과 그 음악을 둘러싼 분위기의 광대한 풍경 속으로 퍼져 나오면서 소울 음악의 새로운 기준이 확립되었다. 이는 우울하면서도 피할 수 없는 분위기를 지닌 블루스였다. 헤이스의 전달력에서는 명확하고, 상쾌하며, 진실한 남부의 성실성이 있었다.

이 음반은 재즈 차트에서 2달간 머물렀으며, 아주 간단하게 록 뮤직으로 분류되었는데, 그 당시에는 이 음악을 수용할 범주가 없었기 때문이다. 스택스는 원래 흑인 청취자를 대상으로 했으나 헤이스와 바-케이스는 스택스를 흑인 록계의 총아로 만들었다. 헤이스는 그의 기념비적인 영화 사운드트랙 Shaft가 전기를 마련하기 이전부터 To Be ContinuedThe Isaac Hayes Movement를 선보임으로써, 그리고 밴드가 땀을 쏟을 법한 16분짜리 대곡 “Do Your Thing”을 통해서, 헤이스는 자신만의 방식을 따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소울 음악은 라디오 방송에 맞게 3분 30초 정도가 알맞다고 여겨져 왔다. 이 흑인 록은 그 프로그램을 바꿔놓았다. 완급을 조절하면서 느슨하고 긴 잼은 앨범을 빨리 제작할 수 있는 방편이었을 뿐만 아니라 확장된 앙상블에 대한 아프리카적 미학으로 회귀하는 것이었다. 넬슨 조지는 이렇게 썼다. ShaftBlack Moses 앨범으로, 아이작 헤이스는 흑인 음반업계에 상업적인 충격을 주었다. 그의 길고도 격렬한 템포 덕분에, 청취자들이 LP를 구매해야 했던 것이다. 흑인 음악팬들의 구매방식이 싱글 위주에서 앨범으로 바뀐 것이다.


 


바-케이스
잘 알려지지 않은 연주자들이 헤이스의 뒤를 잘 받쳐주었기 그가 소울 슈퍼스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멤피스의 훵크가 너무나 강력했기 때문이고 새로운 바-케이스가 누군가의 뒤를 받치지 않고서도 자신들만의 연주를 보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71년 Shaft의 사운드트랙이 발매되던 해에, 새로운 바-케이스가 스택스에서 Black Rock이라 이름 붙여진 앨범을 발매했다. 이 앨범 재킷 사진에는 멤버들이 흰 아프로-헤어 가발에서부터 서전 페퍼 스타일의 재킷, 꽃 목걸이, 보라색 스웨이드 조끼, 망토, 보아 뱀 등을 걸치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은 표면적으로는 슬라이 앤드 더 패밀리 스톤을 닮았지만 사운드는 훵카델릭과 닮아 있었다. 이 음반은 음란하고 질척였으며 시끄러웠다. 그리고 신나면서도 거칠었다. 바-케이스가 보여준 스타일이 인기를 끌지는 못했지만, 그들이 25년의 활동기간 동안 보여주었던 모든 것이 여기서 나타났다. 추락 사고를 겪기 전 발표한 1967년 히트곡 “Soul Finger"에서부터 재결성 후 발표한 1972년 발표곡 "Son of Shaft"에 이르기까지, 1976년 "Shake Your Rump to the Funk" 로 P-훵크를 선보이던 시절부터 1979년 "Move Your Boogie Body"의 디스코-훵크 시기까지, 그리고 1982년 “She Talks to Me with Her Body”로 날 것 그대로의 훵크 노이즈를 보여주던 시절까지 바-케이스는 후기의 흑인 댄스 뮤직 스타일을 정확하게 지칭하는 바로미터였다.

 

명성이 떨어지는 여타의 밴드들과 그들이 달랐던 점은 바-케이스는 절대로 그들의 음악을 (대중이 듣기 편하게) 정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밖에도 그들이 보여주는 모든 쇼가 땀을 쏟고 발을 구르지 않을 수 없는 보증된 축제이며 팝 음악의 성공 공식을 명백히 따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그들의 음악은 항상 창조적이었다. 바-케이스는 당시의 어떤 전도유망한 밴드들보다도 원초적인 부분을 선취했으며, 그것을 쇼로 나타냈을 때, 그들이 보여준 것은 바로 ‘잼’이었다.

 

(201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