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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에드워즈, 데이비드 크롬웰, <미디어 렌즈>

Baron Samdi 2016. 6. 25. 21:51

데이비드 에드워즈, 데이비드 크롬웰 저. 복진선 역. <미디어 렌즈>. 한얼 미디어.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악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움직인다. 악마는 우리가 세상의 상식이라고 가정하는 지점에서 한 발짝만 물러서면 아주 쉽게 볼 수 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가장 존경받는 기자가 가장 노예 같은 처지에 있다는 것이 정보원에 의존한 취재의 고통스런 아이러니이다. 왜냐하면 '가장 좋은' 정보원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기자들 스스로가 그 정보원들에게 유용해야 되기 때문이다."

 

영국의 미디어 비평단체 "미디어 렌즈"가 펴낸 책으로 원제는 <권력의 수호자들>이다. 그리고 이 권력의 수호자들이란 영국의 주류 언론들을 가리킨다. 그 중에서도 가장 수준있는 독자들을 겨냥하고 진보적인 논조를 견지한다는 <BBC>,<가디언> 그리고 <인디펜던트>지의 위선을 폭로하고 있다. 미디어 렌즈는 이들 자유주의 언론이 표방하는 "언론의 자유"란 형식적인 것이며 기만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그들은 현실 사안에 대하여 비판적이지만 그것은 일정한 한계 내에서만 유효한 것이며 따라서 그러한 비판적 논조는 겉치레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 주류 언론은 일종의 "백신"노릇을 하게 되는데 수신자들에게는 미리 알려주어야 할 정보와 몰라도 될 정보들을 구분해 주고 특정 사안에 형식적인 비판을 가함으로써 이 사회에서 언론의 자유가 충분히 구현되고 있다고 수신자들로 하여금 믿게 만드는 것이다. 그들의 행태가 어떠한가는 저자들과 기자들이 주고받은 이메일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코소보, 아이티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익숙하다. 하지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하는 물음에는 답변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책은 물론 미디어 비평 단체의 이메일 묶음집이기는 하지만 서구의 주류 언론들 그리고 그 기사를 받아적기에 바쁜 우리의 언론들이 우리로 하여금 얼마나 중대한 사실로부터 눈멀게 하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 책을 소개받은 한겨레 신기섭 기자의 블로그에서 지적된 바와 같이 고유명사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역자의 불성실과 오역(예를 들어 be history와 make history를 구분하지 못하는)이 눈에 띠지만 책의 내용이 워낙 좋다보니 그러한 결함을 감수할만한 가치가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의 충실한 BBC 워너비, KBS에 몸담고 있는 현역 기자가 번역자로 나섰다는 점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이처럼 사례나열식의 책이 가지는 한가지 단점이자 한계는 책을 중간 정도 읽다보면 너무나 엄청난 비극에 무감각해지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2만이 죽고 3만이 죽고 10만에 육박해도 반복되는 비극 앞에서 우리는 쉽게 지루함을 느끼게 될 지도 모른다. 그 숫자들이 단순히 활자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 힘들 때, 이 책이 담고 있는 진실은 우리에게 아무런 효과도 불러일으키지 못할 것이다. 얼마나 죽었는가? 얼마나 비참한가?는 중요하지 않다. 이러한 질문은 왜 죽었는가? 왜 비참한가?로 옮겨져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끊임없는 질문의 종착역은 마땅히 우리를 벗어나 세계로 돌려져야 한다.

 

(2006/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