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matheca 77

2024년 영화 목록 - 7

31. 오 꿈의 나라 (1989)특유의 방화 느낌을 예상했으나 의외로 세련된 영화였다. 그렇다고 해서 정말 영화적으로 뛰어난 작품이냐, 그런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용산 미군부대 근처에서 자라난 나에게는 어릴 적 봐왔던 풍경들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어서 좋았다. 광주항쟁에 시민군으로 참여했다 동두천 보산동으로 도망나온 전남대생 종수, 그리고 보산동에서 미군물품을 암시장에 빼돌려 생계를 이어가는 종수의 고향 형 태호, 종수가 야학에서 가르쳤던 구두닦이 구칠, 이 세 인물은 당시 한국인들이 지니고 있던 세계관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 같다. 종수는 마치 에서 제템브리니와 나프타 사이의 한스 카스토르프를 연상시킨다. 전형적이라고 해서 평면적으로 유형화된 인물이 아니라, 인물 개개인이 스스로의 역설과 모순을 포함하고..

"C"inematheca 2024.12.13

2024년 영화 목록 - 6

26. 롱 레그스 (2024)충실한 미장센에 비해 부실한 스토리. 감독이 앤서니 퍼킨스의 아들이라는데 영화계 금수저의 취미생활 같다. 이 영화와 유사한 영화를 꼽으라면 2시간 짜리 오메가 시계 광고라고 할 수 있는 조지 클루니 주연의 . 1970년대에 나왔다면 컬트 호러로 극찬 받았겠지만, 지금 시대에 와서 이 정도를 보여줄 수 있는 감독들은 많다. 감독이 오컬트 고전들을 보면서 배운 것이 많지 않은 모양이다. 한껏 멋부리기만 한 영화. (★☆) 27. 맨츄리안 캔디데이트 (1962)62년 영화라 그런지 정치스릴러임에도 매우 지루하다. 그나마 존 프랑켄하이머 특유의 개성적인 연출이 위안이다. 후대의 , 에 영향을 끼쳤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이 영화는 62년에 제작한 뒤, 주연 프랭크 시나트라가 모든 판권을..

"C"inematheca 2024.11.25

2024년 영화 목록 - 5

21. 레블 리지 (2024)넷플릭스 독점 영화. 백인 경찰에게 사촌의 보석금을 뺏긴 흑인 해병대 무술 교관의 복수극. 흑인 리처 같은 느낌이라 별 생각없이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오락 영화. 한때의 섹스 심벌 돈 존슨이 노회하고 부패한 경찰서장으로 나와 세월의 흐름을 상기시킨다. (★★★) 22. 암스테르담 (1988)네덜란드 범죄 스릴러. B급 영화로 보여서 별 기대가 없었는데 의외로 괜찮다. 적당한 클리셰로 눈속임한 뒤에 나타나는 예측 불허의 구간이 여러 곳 있다. 보트 체이싱 신도 좋다. 네덜란드판 같은 느낌인데, 이 영화에서는 암스테르담 운하에서 신출귀몰하는 다이버 연쇄살인마가 나온다. 물속에서 갑자기 튀어나와 사람을 살해한다는 설정은 근래 의 암스테르담 미션을 연상케 한다. (★★☆) 23. 하..

"C"inematheca 2024.11.13

2024년 영화 목록 - 4

21. 뉴잭 시티 (1990)리들리 스콧의 가 이 영화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것 같다. 웨슬리 스나입스가 연기한 니노 브라운은 굉장히 매력적인 악역 캐릭터인데 비해 마리오 밴 피블스의 연출은 좀 유치하다. 이 영화도 의 오마주가 엿보인다. 갱 멤버로 나오는 크리스토퍼 윌리엄스, 얼치기 목사로 나오는 닉 애쉬포드, 웨딩 싱어로 나오는 키스 스웨트와 같은 화려한 뮤지션들이 볼거리인데 마약 퇴치가 주제이니만큼, 좋은 목적으로 출연한 것 같다. (★★★)     22. 스노든 (2017)에드워드 스노든이 CIA에 들어갔다 폭로를 결심하게 된 계기, 폭로 이후의 러시아 망명을 다루고 있다. 보는 사람에 대한 배려 없이, 감독 본인이 관심있는 사안에 대해서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을 우리 업계 용어로 '논문 쓴다'고 ..

"C"inematheca 2024.09.21

2024년 영화 목록 - 3

11. 크리피 : 일가족 연쇄 실종사건 (2016)무난하게 연출된 웰 메이드 스릴러인데, 감독이 구로자와 기요시라면 좀 더 나은 것을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에서 보여주었던 독특함은 없어지고 TV 드라마처럼 짜인 연출이 보기에는 편하지만 밋밋한 여운이 남는다. 노년으로 갈수록 자신의 세계를 좀 더 고집스레 제시해도 좋았을 텐데. 감독의 이름값은 못한 영화 같다. (★★★) 12. 배틀 로얄 (2000)후카사쿠 킨지의 영화가 아니었다면 보지 않았을 영화. 홉스적 세계관과 싸이월드식 유치함이 뒤섞여서 일본의 입시 경쟁과 세대 갈등을 비판한다는 메시지 아래, 의미 없는 폭력만 나열하고 있다. 싸이월드에서 유행했던 "학생이라는 죄로 학교라는 감옥에 갇혀 어쩌고"하는 문구가 생각나는 영화. ..

"C"inematheca 2024.08.08

2024년 영화 목록 - 2.

6. 모래그릇 (1974) 노무라 요시타로 감독의 숨겨진 걸작. 마쓰모토 세이초 원작 소설을 영상화한 사례 중에서 가장 걸출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 마리오 푸조의 처럼 영화를 먼저 보고 원작 소설을 읽으면, 영화에서 소략된 부가적인 정보와 사건들을 다시 접하면서 더 재미있게 읽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는 오히려 소설의 산만함을 집약시켜 주제의식을 더 돋보이게 만든다. 도쿄 카마타 조차장에서 얼굴이 짓이겨진 시체가 발견되고, 범인이 도호쿠 사투리를 썼다는 증언을 토대로 발로 뛰며 증거를 확보한다는 원작의 얼개를 살리면서도, 영화에서 살리고 싶은 핵심적인 요소는 놓치지 않았다. 영화를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소설과 영화를 함께 보면 좋은 공부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상만큼이나 뛰어난 음악을 만든 음..

"C"inematheca 2024.05.27

2024년 영화 목록 - 1.

1. 서울의 봄 (2023) 영화를 보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편집이었다. 배우들의 연기를 섬세하고 유장하게 살려주는 극영화보다는 감각적이고 극도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TV다큐나 리얼리티 쇼에 가까운 편집, 아무래도 촬영량이 상영시간을 너무나 초과해서 분량을 줄이려다 보니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이게 배우들의 호연과 맞물리니 2시간 30분이라는 러닝타임이 녹아 없어질 지경이었다. 큰 액션 신이 많지 않아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박진감이 넘쳤다. 다만 역사적 맥락을 다 살려내지는 못했고, 워낙 좋은 배우들을 쓰다 보니 나 와 같은 의고적인 비극에 더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다. 이태신이라는 대비되는 캐릭터가 없었더라면, 오히려 전두광이 카리스마, 지능, 추진력의 3박자를 갖춘 권력을 향한 지칠 줄..

"C"inematheca 2024.04.22

2023년 영화목록 - 5.

21. 미드웨이 (2019) 미드웨이 해전을 다룬 영화들이 더 있지만 아무 생각 없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전쟁영화다. 특히 미드웨이 해전의 발발에서 전개까지 알기 쉽게 정리가 되어 있어, 전사로 먼저 접한 내게는 이해도를 훨씬 높여줬다. 영화의 재미를 위해 역사적 사실을 희생한 부분도 없지 않지만 명절 영화로 손색이 없다. (***1/2) 22. 행잉 록에서의 소풍 (1975) 내가 사랑하는 호주의 컬트 걸작. 2번째 본다. 기숙학교 여학생이 태곳적 신비의 장소인 행잉 록으로 소풍을 갔다 사라진다는 내용으로 인상파 회화를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영상이 팬플룻의 거장 게오르그 잠피르의 음악과 어우러진다. 동양의 무릉도원과도 비슷한 행잉 록은 빅토리아조 문화에 질식당하던 여성들의 안식처이기도 하고, 집단적 죄..

"C"inematheca 2023.09.20

2023년 영화목록 - 4.

16. 디센던트 (2012) 매력적인 캐릭터, 멋진 풍경, 잔잔한 스토리 등 볼거리는 많다. 모터보트 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아내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이 그 상대를 찾는 과정에서 딸들과 화해하고 다시 가족으로 묶인다는 내용. 비행기 안에서 보면 좋을 영화다. 하와이 주민들의 생활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다. (***) 17. 도보여행 (1971) 니콜라스 뢰그 영화의 엔딩은 언제나 인상적이다. 호주 아웃백으로 남매를 데리고 소풍을 간 남자가 느닷없이 아이들에게 총격을 가하고 자살한다. 남매는 살아남아 길을 떠나 원주민 소년을 만나는데 호주 대자연의 풍광, 소통 불가능한 상황에서 오는 오해에서 빚어지는 비극 등. (****) 18. 태양의 제국 (1987) 아역 크리스천 베일의 뛰어난 연기가 돋보이고 ..

"C"inematheca 2023.09.07

2023년 영화목록 - 3.

11. 범죄도시3 (2023) 이 시리즈를 극장에서 봤을 때는 분통이 터졌지만 VOD로 보고나니 볼만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의 효용은 어떤 압박도 없이 2시간 동안 생각을 지워준다는 점이다. 영화보다는 게임방송에 가깝기 때문이다. (***) 12. 위대한 피츠카랄도 (1982) 320톤짜리 증기선을 인력으로 끌어올려 산을 넘는 이야기. 헤어초크는 인간과 자연 간의 투쟁, 그리고 극복과 좌절을 그리면서 인간의 문명이란 자연의 위력 앞에서 얼마나 허약한지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이런 점에서 독일 낭만주의의 후예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 영화에서 헤어초크는 전생에 피사로나 코르테스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스태프와 출연자들을 한계로 몰아넣는다. 여기서 피츠카랄도는 헤어초크의 현신 같다. 나는 비슷한 내..

"C"inematheca 2023.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