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개의 음반을 추려내고 다시 3곡을 뽑아 놓는다. 이 3곡은 내 음악 취향의 원형 archetype을 이루는 곡들. 유치원 혹은 그 이전부터도 알고 있던 아티스트들이니 아마 5살 언저리부터 좋아했던 곡들인 것 같다. 어릴 적, 시집가기 전에 함께 살던 이모가 팝송을 많이 틀어주기도 했고, 기지촌 출신이라 '미제'라면 환장을 했기 때문에 다른 언어로 불리는 노래들에 별다른 거부감이 없었다. 가끔 내가 좋아하는 곡들을 꼽아보면 이 3곡과 유사한 진행이나 분위기가 느껴진다. 즐겨 듣지는 않더라도 오랫동안 좋아해 왔으며 지금까지도 내 취향을 규정하는 곡을 추려보았는데 공교롭게 미국 음악은 없다. 한 곡은 이탈리아, 한 곡은 영국, 또 다른 한 곡은 프랑스.
그 첫번째 곡은 Gazebo, "I Like Chopin"
이 곡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아마 90년대 이후 생일 듯싶다. 나는 처음으로 구입한 앨범이 8살 무렵 Wham의 <Make It Big>이었다고 왬에 대한 해묵은 애정을 드러낸 바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왬 이전에 나를 팝의 바다로 인도한 지표가 분명히 있을 것 같았다. 요즘 나이가 들어서인지, 옛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아마 내 머릿속에 보존된 유일무이한 소중한 기억이고, 내가 더 나이를 먹어 기억을 잃어버리면 영영 다시 찾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들기도 해서다. 아이가 더 커서 글을 읽고 세상을 이해할 나이가 되면, 옛날에 이런 일도 있었다는 것은 기억해줄 것 같아 기록해둔다. 되돌아보면 내 20대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물건은 아버지가 청년기에 썼던 다이어리였다. 아버지는 뭔가를 계속 시도했지만 모두 작심삼일로 끝나고 말았다. '아버지의 길을 가지 않겠다. 뭔가 꾸준히 해나가는 사람이 되겠다.'라고 그때 다짐했었다. 하지만 다짐은 그보다 조금 더 오래갔을 뿐이다. 유전의 힘은 강하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뒤섞다 보면, 기억에 남는 곡들이 몇 곡이 떠오르는데, 한심하고 대중적인 록 넘버도 있고 이제 와서는 돌이키기도 창피한 유치뽕짝 유로 디스코도 있다. Pointer Sisters의 "Jump"같은 곡도 아이 때는 정말 좋아했었지만 이제 들어보면 명곡이랄 수도 없는 80년대 흔한 하이 에너지 넘버일 뿐. 그래도 유년시절 기억 아득한 저 먼 곳에서부터 지금까지 그래도 이 곡만큼은 여전히 명곡이라고 꼽을 수 있는 곡들이 있다. 바로 "I Like Chopin"같은 곡. 이 곡은 옛날 KBS <연예가 중계>의 PD가 이 곡을 좋아했었던지, 스튜디오 방송 내내 BGM으로 깔리기도 했던 곡이다.
Gazebo의 본명은 Paul Mazzolini로 1960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이탈리아인 아버지와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외교관인 아버지를 둔 덕에 일찍부터 다양한 문화적 환경을 접했고, 10살 때, 기타를 잘 치던 친구의 영향으로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가수였던 어머니는 음악을 시작한 아들을 파리 소재의 음악 학교에 보내 체계적인 교육을 받도록 했다. 하지만 정규 음악 교육보다는 록 음악에 심취했고, 로마로 이주한 뒤에는 친구들과 록 그룹을 결성했다. DJ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기 위해 정원에 설치하는 구조물의 이름을 따서 Gazebo로 예명을 정하고 데뷔곡 "Give Me"를 발표했지만, 히트를 기록하지는 못하고 후속 싱글 "Masterpiece"로 겨우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83년 앨범 쇼팽의 멜로디를 인용해 만든 "I Like Chopin"을 발표하면서 전 유럽 차트를 석권, 15개국에서 1위를 기록한다.
- 참조 <팝아티스트대사전>, 세광음악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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