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리타, 내 삶의 빛이요, 내 생명의 불꽃. 나의 죄, 나의 영혼. 롤-리-타. 세 번 입천장에서 이빨을 톡톡 치며 세 단계의 여행을 하는 혀끝. 롤. 리. 타.-
간단한 소감 : "이거 포르노 소설 아니삼?" 하는 분들께는 "그건 로리타고 이건 롤리타!"
영어로 쓰여진 가장 아름다운 소설이라는 누군가의 찬사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집어든 건 아마 그 말을 처음 들은 뒤부터 5년이 흐르고 난 뒤의 일이다. 나보코프가 누구인지 롤리타가 어떤 내용인지도 알기 전에 책 뒷면에 나오는 존 업다이크의 찬사는 나를 구매대로 이끌기에 충분한 유혹이었다. 존 업다이크의 말처럼 <롤리타>에 나오는 미려한 문장들과 꽉짜여진 내러티브, 언어 유희들은 어느 정도 소설에 질릴 법한 사람들에게 다시 소설에 대한 애정을 불지피는 좋은 연료가 될 것 같다.
나는 소설을 등한시하는 편이다. 물론 관심은 많지만, 소설에 빠져 살 시간에 다른 책 한 권 더 읽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최근에 본 드라마가 <대장금>이었나? 어릴 적 큰이모가 어린이 도서관에 하루종일 가둬놓으면, 나는 만년의 보르헤스처럼 도서관이 문닫을 때까지 책을 읽곤 했다. 수많은 이야기들을 들어왔기에 아무리 새롭다 하더라도 이야기라면 넌덜머리를 내는 편이다. (게다가 아직까지 글을 쓸 때면 머리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단어들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펜을 놓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역시 애들은 놀아야 한다.) 하지만 <롤리타>는 달랐다. 문장도 아름답거니와 추리소설과 퍼즐을 합쳐놓은 듯한 줄거리가 책의 마지막 페이지까지 쉴틈없이 몰아가는 것이 아닌가! 허나 나보코프의 문장이 감탄스럽다 하더라도 이 자리에서 내가 터뜨린 감탄사와 느낌표들을 그러모아 내보여 줄 수도 없을 뿐더러 <롤리타>가 어떤 얘기고 어떻게 끝나는지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아 읽어볼 맛을 떨어뜨릴 만큼 몰지각하지는 않기에 상세한 얘기는 삼가야겠다. 궁금한 분들은 일독하시라~
대체 매력적인 소설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매력적인 주인공을 창조해낸 소설일 것이다. 우리는 소설 속의 주인공에 매료되어 심지어 자신과 동일시하기도 한다. 그와 함께 울고 웃으며 험난한 줄거리를 헤쳐나올 때 주인공과 나 사이에는 어느덧 뜨거운 동료애 비슷한 것이 생기거나 "내가 이사람이었다면"하는 마음을 품게 된다. 허나 12살 소녀를 사랑하는 중년 남자는 본시 우리의 도덕적 잣대로는 도저히 허용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독실하고 매사에 엄숙한 사람은 주인공 험버트 험버트의 파렴치한 행위에 몸을 떨 지도 모른다. 그런 태도를 비웃는 사람이라면 요새 원조교제하는 현실과 뭐 다를 바가 있나 하고 웃어넘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그와 함께 롤리타에 대한 음흉한 마음을 나누는 순간부터는 그를 이해하고 고무하고 격려하게 될 것이다. 독자가 비도덕적이어서라기 보다는 세속의 도덕을 들이댈 수 없을 정도로 이 소설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매력적인가?
진정 이 소설의 매력은 독자를 은밀한 범죄 행위에 끌어들여 공범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 숨막히는 위반의 징검다리를 한 칸 두 칸 함께 뛰어넘을 때, 그와 나는 하나가 되고 어느덧 소설은 더 이상 나의 독서를 기다리지 않고 내 생활의 일부로 뛰어든다.
(2005/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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