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은 이 문단은 정말로 나에게 무한한 감동과 용기와 확신을 주는 것 같다. 당시 정치현실에 대한 그의 언급은 오늘날까지도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2차대전 당시 독일에 부역했던 사람들이 역사의 방향을 잘못 판단한 애꿎은 희생양으로 미화되거나 그들의 행위가 인간의 의지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논리는 비단 저 먼 프랑스의 일만은 아니다.
사실 메를로-퐁티의 글은 어렵다.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두 달 전부터 제대로 읽기 시작했는데 여전히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다. 때문에 언젠가는 쾨슬러의 책과 모스크바 재판에 관한 자료들과 함께 다시 읽어 볼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일독을 권유하는 이유는 그당시의 정치 현실에서 특유하게 개발된 논리들이 현재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관철되고 있고, 그에 대한 메를로-퐁티의 치밀한 논증 이면에 나타나는 인간적인 분노가 반 세기가 훌쩍 넘어버린 오늘날에도 우리의 가슴 속에 반향을 일으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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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에는 어떤 악의가 존재한다. 역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역사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도록 부추기고 유혹한다. 그런데 역사는 갑자기 가면을 벗어던진다. 사태는 돌변하여 또 다른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런 방식으로 역사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역사와의 공모자일 뿐이라고 생각했으나, 어느 순간 역사에 의해 부추겨진 범죄의 주동자가 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은 변명을 할 수도, 책임의 일부를 면죄받을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역사의 분명한 굴곡을 따라가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 , 다른 사람들은 그 길을 돌이켜서 미래로 향한 다른 삶의 길을 선택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은 인간의 힘을 완전히 넘어선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미치광이였는가? 그들의 승리는 단지 우연일 뿐이었는가? 그리고 점령기에 총살당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역사적 우연의 희생자인 숙청에서 총살당한 사람들에게 동일한 동정을 보내는 것이 당연한가? 아니면 이 사람들은 역사를 더 잘 읽었고 <그러기에> 자신들의 정념을 보류한 채 진리에 따라 행동한 사람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우리가 부역자들에 대해서 <역사를> 잘못 읽은 점을 비난하지 않듯이, 레지스탕트를 존경하는 것도 판단의 냉철함이나 단순한 통찰력이라는 단순한 이유에 있지 않다. 오히려 사람들이 존경하는 것은, 그들이 그렇게 되어갈 것으로 보이는 것에 맞서 싸웠고, 그들의 헌신과 정념이 나중에나 올 이성들<자신들이 옳았다는 이유들>을 말할 정도로 치열했다는 데 있다. 대독 협력자들의 치욕과 마찬가지로 레지스탕트들의 영광도 역사의 우연성과 역사의 합리성을 동시에 전제하고 있다. 즉, 역사의 우연성이 없다면 정치에서 죄 있는 자는 없을 것이고, 역사의 합리성이 없다면 단지 미치광이들만이 존재하게 된다.
레지스탕트들은 미치광이도 아니고 현인도 아니다. 그들은 영웅들, 말하자면 정념과 이성이 우연히 일치했던 사람들이었고, 흐릿한 욕망 속에서 역사가 기대하는 것을 행했던 자로서, 마침내 시대의 진리로서 드러나게 되었던 사람들이다. 그들의 선택에서 이성의 요소만 빼낼 수 없고 더욱이 과단성의 요소와 실패의 위험을 빼낼 수 없다.......
우리는 여기서 무정부주의적 자유를 옹호하지 않는다. 우리가 타자에게 자유를 주기를 원할지라도 불가피하게 이런 의지까지도 외적인 법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 때문에 자유주의는 폭력으로 변하게 된다. 이런 결과를 스스로 감추는 것은 무정부주의가 그러한 것처럼 나와 타자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정부주의자가 이 변증법에 대해 눈을 감는다 할지라도 그는 그 결과에 노출되어 있다. 우리가 자유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은 기본적이다. 우리는 자유주의 그 자체를 폭력적인 체제라고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자유주의가 그것을 지각하지 못하고 자신이 근거하고 있는 계약을 은폐하고 모든 사회 계약을 창조하는 다른 자유 - 혁명적 자유- 를 평가 절하하는 점을 비판하는 것이다. 자유주의는 몰인격적 이성과 합리적인 인간 일반을 전제한다. 그리고 자유주의는 자신을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자연의 사실로 간주한다. 이로서 자유주의는 구체적 상호주관성의 변증법 속에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문제가 될 때에 보편성을 이미 주어진 것으로 전제한다.
모리스 메를로-퐁티 <휴머니즘과 폭력> 제 1부 "폭력" 중 제 1장 "부하린과 역사의 애매성" |
(200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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