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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ude Francois Forever!

Baron Samdi 2016. 6. 29. 16:00

요즘 내가 버닝하고 있는 20세기 프랑스 대중음악계의 풍운아이자 패륜아 클로드 프랑스와의 디스코 뮤직비디오 <Magnolias for ever>. 헐벗은 무희들 사이에서 전율하는 프랑스와를 보라! 쌈마이도 불란서제는 클래시하다.

클로드 프랑스와는 뮤직비디오 시대의 개척자 격인 가수이며 우리의 친애하는 마피아 프랭크 시내트라 선생의 명곡 <마이 웨이>의 원작자로 알려져 있다.
올해는 프랑스와가 기이한 죽음을 맞은지 30주기가 되는 해다. 프랑스와는 30년 전이던 1978년 레코딩을 마치고 목욕을 하던 중, 전구가 자꾸 깜박거리자 (원래 강박증이 있었는데) 참지 못하고는 젖은 손으로 고치려다가 감전사했다. 


<자세한 사항은 아래 기사 참조>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가장 사랑받는 곡이란 명성과 가장 지긋지긋한 곡이란 악명을 동시에 누리는 명곡 '마이웨이'(My Way)의 원작자인 프랑스 가수 클로드 프랑소와의 30주기를 맞아 그의 생애에 대한 관심이 되살아나고 있다.

11일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인터넷판 기사를 통해 30년 전 이날 파리의 아파트 욕실 전구를 갈아끼우다 감전사한 것으로 알려진 프랑소와가 실제 어떤 인물이었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신문에 따르면 '클로클로'(CloClo)라는 애칭으로 불린 프랑소와는 천사와 같은 이미지와는 달리 자기중심적이고 비뚤어졌으며 비열하고 성마른 성격을 가진 '지배광(狂)'이었다.

유명세를 타기 전이었던 1961년 첫 아내인 영국 댄서 재닛 울라콧과 결혼할 당시 그는 신부의 웨딩드레스를 마련하는 대신 자신의 결혼 예복에 저금을 몽땅 털어넣었다.

미래 팝스타로서 자신은 무대에서 정장을 입을 수 있지만 울라콧은 무대에서 정장을 입을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파리로 이사한 뒤엔 그녀가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것을 막기 위해 방에 가둬놓기 일쑤였고 결국 그녀는 프랑소와를 떠났다.

그는 또 두 번째 아들이 태어났다는 사실이 자신의 소년과 같은 이미지를 망칠 수 있다면서 5년 동안 존재를 숨겼고 핀란드 출신 여자친구와 함께하려 두 번째 아내와 두 자녀를 파리 남쪽 시골로 내쫓기도 했다.

당시 그의 최대 라이벌이었던 조니 할리데이의 경우 반항아 기질에도 불구하고 솔직한 성격을 지녔던 데 반해 프랑소와는 대중에 각인된 이미지와 달리 성공에 대한 강박과 완벽주의에 고통받는 영혼이었다고 신문은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여러 측면에서 시대를 앞서간 선구자였다.

그는 섬세하게 자신의 경력을 관리했고 처음으로 뮤직비디오를 제작한 팝가수들 중 하나였다.

또 공연 때에는 여성 댄서와 특수효과를 동원해 반응을 극대화했고 연예잡지와 레코드 라벨, 향수회사, 성인잡지를 소유하고 있었다.

1967년에는 자크 르보가 작곡한 '당신을 위해'(For me)를 편곡, '평소처럼'(Comme d'habitude)이라는 곡을 만들었으며 이 곡은 폴 앵카의 개작을 거쳐 프랭크 시내트라의 대표곡 '마이웨이'로 재탄생했다.

따라서 프랑소와가 '마이웨이'를 쓴 게 아니라는 주장은 근거가 없는 것이라고 신문은 지적했다.

한편 한때 그의 여자친구였던 핀란드 출신의 소피아 큐코넨은 프랑소와의 성공이나 강박증은 젊은 시절 겪었던 정신적 충격 때문이라고 소개했다.

1956년 이집트의 수에즈운하 국유화에 휘말려 거리로 나앉은 뒤 이듬해 가수의 길을 택했다는 이유로 아버지와 의절하고 첫 번째 아내인 재닛한테서도 버림을 받자 성공 이외에는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신문은 최근의 조사 결과 그가 동성애자였다거나 살해당했다는 의혹 역시 모두 근거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면서 단지 괴팍한 완벽주의자였던 그가 욕조 위에서 깜박거리는 전구를 참지 못한 게 사고를 부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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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