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예언자 (2010)
자크 오디아르의 영화는 처음 봤는데 강렬하다. 2시간 30분이라는 러닝 타임에 지루할 틈이 없다. 경찰관 폭행죄로 6년 형을 언도받은 아랍 청년 말릭은 우연히 코르시카 갱의 리더 세자르에게 발탁되면서 청부 살해를 의뢰받는다. 서구 교양소설, 성장소설의 서사를 갱스터 영화의 문법에 이식한 독특한 영화로 매 신마다 강렬한 여운이 남는다. 재즈 마에스트로가 만든 팝 발라드처럼 정말 거장이 만든 대중 영화의 느낌이다. 올해 본 중 가장 독특한 인상을 남긴 영화. 극장에서 보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
52.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2020)
캐릭터 빌딩이 탁월하여 매력적이지 않은 캐릭터가 하나도 없다. 그리고 캐릭터 간의 관계성이 가져오는 시너지가 대단하다. 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러운 영화지만 사회고발도 놓치지 않는다. 호평은 이 정도로 하고 이 영화의 문제점은 후반 20분에 영화의 모든 매력을 말아먹는 엔딩이다. 작가가 김진명 작가로 교체되었는지 뜬금없는 민족주의 정서를 강조하면서 핍박받던 여성노동자가 졸지에 민족의 기수가 된다. 이쯤되면 여성들의 저항을 상찬하는 것인지 욕보이려는 것인지 의도를 모르겠다. 페놀 유출이라는 끔찍한 환경 재해를 목도한 여성들이 서로 연대해서 고작 저항하는 대상이 검은 머리 외국인과 외국 사모펀드다. 그동안 커피 심부름을 하고 여상 출신이라며 차별하고 허드렛일을 하던 민족 자본을 위해서 분연히 일어서는 여성노동자라니 너무 개연성이 떨어지는 설정 아닌가. 게다가 여기서 여성 노동자들은 자주적인 저항을 하지 않고 힘을 모아 '회장님'과 '상무님'의 등 뒤에서 든든한 지원병력이 된다. 왜 이런 괴상한 엔딩으로 초반의 에너지를 다 깎아먹는지 모르겠다. 페놀 사건과 IMF라는 굵직한 90년대의 두 사건을 연결시키려는 의도일지도 모르겠지만 연출 역량의 한계만 노출시키고 말았다. (★★)
53. 아마기 고개 (1983)
마쓰모토 세이초의 단편 소설을 토대로, 세이초의 작품을 차례로 영화화했던 노무라 요시타로가 제작을 맡은 영화. 감독은 미무라 하루히코. 미무라 감독은 청출어람이라고 해야 할까, 노무라 감독보다 일취월장한 연출력을 보여준다. 일본 감독 특유의 전통적인 다다미 숏을 사이에 감각적인 편집을 구사하면서, 엔딩까지 폭발력 있게 치닫는다. 가장 뛰어난 영화들은 인물의 단일한 행위를 여러 가지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하게 만든다. 이 영화도 그런 영화다. 게다가 젊은 시절 다나카 유코의 미모는 스틸 사진으로는 도저히 표현이 불가한 매력을 갖고 있다. 영화사의 걸작은 아닐지라도 내 마음 속에서는 걸작. (★★★★★)
54. 스픽 노 이블 (2024)
괜찮은 스릴러. 런던에 사는 일가족이 이탈리아 휴양지에서 만난 다른 가족으로부터 초대 받아 방문한 농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뤘다. 지나치게 애정이 깊은 부부와 말을 할 수 없는 아이의 세 가족은 처음에는 친절했으나 점점 이상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고, 말을 할 줄 몰랐던 아이는 자꾸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한다. 설정도 좋고 연기도 좋다. 제임스 맥어보이는 <어톤먼트>에서 우수에 찬 눈빛을 가진 젊은이로 나오더니 이 영화에서는 광기 어린 사이코패스로 열연한다. 마치 극우가 융성하는 전 세계적 정치상황에 대한 은유같기도 하다. 환경을 아끼고 비건이고 테슬라를 모는 중산층 가족, 경제적 안락함을 누리는 계층이 옳음과 선함이라는 가치를 선점하니, 소외된 계층은 이를 위선으로 규정하면서 복수를 감행하는 모습이라든지. (★★★☆)
55. 마녀전설 (1967)
소련에서 제작된 호러 영화로, 니콜라이 고골의 단편 "뷔이"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옛날 <전설의 고향>을 보는 듯한 단순한 이야기 구조와 세트, 분장, 음악으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고전 호러의 덕목을 고루 갖추고 있다. 신학생 코마는 영주로부터 3일 동안 죽은 딸을 위해 기도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억지로 밤에 홀로 남아 기도를 청한다. 그리고 영주의 딸은 밤만 되면 눈을 뜨는데, 낮과 밤의 대비가 더 공포감을 가중시킨다. 지금 봐도 잘 만든 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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