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nkatology

<Funk> 4-1 - 훵키 파워

Baron Samdi 2016. 6. 24. 17:43

제 4부

통합된 훵크의 시대 (1972~76) : 빛나는 별Shining Star

13장

민중에게 권력을 : 이제 시작!


 

“당신을 자유를 획득할 힘을, 그리고 창

조를 위한 자유를 원한다.

- 제임스 브라운


훵키 파워

아마도 훵크의 가장 주요한 유산은 자신감 넘치는, 진실된 표현과 70년대 초기 훵크 음악에서 만개했던 인종적인 자부심에서 찾아볼 수 있다. 70년대 초, 거리에서는 단호하면서도 이상적인, 그리고 새롭고도 훵키한 태도가 등장했다. 당시 슬픈 현실은 넘쳐났다. 그것은 60년대의 마약 중독, 만연한 실업 상태, 그리고 미국 도시의 당구장과 바, 그리고 골목의 모퉁이를 가득 메운 버려진 월남전 참전 용사에서부터 “길 건너”에 사는 부재지주들이 포기해버린 쇠락한 공영 주택단지, 수년에 걸친 착취로부터 여전히 자양을 공급받고 있는 실패한 사업들, 격변과 폭동에 의해서 파괴된 잔해에까지 이르는 인간성의 실추였다. 그러나 무슬림 빵집과 같은 전원 흑인으로 이루어진 곳이 존재한다는 사실, “흑인이며 자랑스럽다”는 강력하고 새로운 거리의 표현들과 결합한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 센터들, 그리고 현 제도와 싸우려는 수많은 새로운 방식들은 기묘한 모습을 한 이상주의에 영향을 끼쳤다. 지미 캐스터Jimmy Castor의 “It's Just Begun", 쿨 앤드 더 갱의 ”Who's Gonna Take the Weight" 그리고 길 스캇 헤론의 “The Revolution Will Not Be Televised"와 같은 곡들은 미묘한 각성을 유지하고 있으면서 또한 ”전적인 변화Total Change"에 대한 미묘하지 않은(명확한) 관념들을 유지하고 있었다.

 

혁명의 가능성, 돈과 성공, 훵키한 흑인 민족 국가를 찬미하는 이 기묘한 이상주의는 당시의 강렬한 흑인 음악들이 가진 일관된 주제였다. 워War는 1971년 발표한 황홀한 훵크 트랙 “Get Down"에서 이와 같은 아이러니를 포착하고 있다. “네가 이 나라를 이끌어간다면/ 훵키하게 이끌어나지는 못할 거야/ 그러니 내려 와!” 소울의 대부 제임스 브라운도 물론 훵키 파워의 충동에서 최전방을 차지하고 있었다. “Get Up, Get Into It, Get Involved"의 1971년 라이브 버전에서 "민중에게 권력을/ 소울 파워를Power to the people/ Soul Power"라고 외치면서, 그리고 리처드 닉슨의 사임에 대해 분노의 몸짓을 표현하는 동시에 터무니없어 보이지만, 굉장히 진지한 "훵크 대통령Funky President"으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정당화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피 훵크 패거리들도 팔리아먼트의 1975년 곡 "Chocolate City"에서 마치 백악관에 있었음직한, 인기 있는 흑인 문화적 지도자들을 그려내면서 다소 어이없는 수준으로 블랙 파워의 환상을 모색하고 있었다.

 

이제 놀라지 말라고!
무하마드 알리가 백악관에 들어가면
아이크 목사는 재무부 장관이고 (역자 주 - 미국의 유명한 목사이자 TV 전도사)
리처드 프라이어는 교육부 장관이 되고
스티비 원더는 예술부 장관,
그리고 우리 아레사 프랭클린은 영부인이겠지.

- 팔리아먼트 “Chocolate City" (1975)

 

권리 확충과 해방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흑인 음악의 가장 강력한 예는 가장 탁월한 단계의 독립성을 성취하고 자신들의 음악 속에서 무엇을 말했는지를 잘 통제할 수 있는 아티스트들, 그 중에서도 특히 제임스 브라운, 스티비 원더, 커티스 메이필드, 조지 클린턴, 그리고 아이즐리 브라더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또한 이러한 아티스트들이 70년대 초반 가장 강력한 훵크 밴드였던 점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그들의 사회참여적인 언급은 가차없이 훵크 비트에 실려 추동되었던 것이다. 아이즐리 브라더스는 “권력과 싸울Fight The Power" 준비가 되어 있었으며, 스티비 원더는 정치인들(역자 주 - 특히 닉슨과 그의 행정부)에게 “너희가 해놓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You Haven't Done Nothin'"고 비난했다. 그리고 커티스 메이필드는 “미래의 충격Future Shock”에 대해 논했으며, 훵카델릭 또한 1975년에 이르러 “미국은 자신의 새끼를 잡아먹는다America Eats Its Young"고 외치고 있었다. 그리고 자유에 대한 노래를 발표했던 아티스트들이 아이즐리 브라더스가 분명하게 청자들에게 “권력과 싸우라”고 했던 것과 같은 대담한 수준에 이르기까지, 해방의 관념에 탐닉하고 있었다.

 

시간은 진정 허비되고 있는데,
확신은 없지만
나중에 웃게 될 거야.
그러니 우리는 기존 권력과 싸워야 해.

- 아이즐리 브라더스 “Fight the Power" (1975)

 

이런 메시지를 담은 음악들은 분명히 위험스러운 것이었다. “Say It Loud"가 15년 동안 제임스 브라운의 마지막 탑 텐 히트곡이었고, 절정에 달한 아이즐리 브라더스에게 ”Fight the Power"는 그들의 마지막 40위권 히트곡이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노골적인 메시지를 음악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아티스트는 70년대가 지나가면서 대중적인 라디오 채널에서 무시당하는 것처럼 보였고, 흑인 대중 음악은 디스코 음악의 분별없는 헛소리로 격하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고귀한 이상과 긍정적인 문화적 가치에 천착하는 강력한 음악의 존재는 오로지 음반 산업, 즉 흑인 아티스트들뿐만 아니라 그 어떤 아티스트에게도 자신의 영역을 발전시키도록 하는데 관심이 없는 그러한 산업과의 혹독한 투쟁의 결과로서만 출현할 수 있었다.

 

그러나 70년대가 밝아오면서, 그 이상은 높아만 갔다. 그리고 1960년대 말, “민중에게 권력을”이라는 구호를 내건 운동은 대다수 독립적인 기질로 음악에 진력하는 흑인 아티스트들에게 어마어마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전혀 다른 악기를 쓰고, 전혀 다른 연주자와 전혀 다른 그루브(훵크)를 구사하는, 음악에 대한 도전적이며 혁신적인 그들의 접근은 70년대가 시작되자, 음반 회사들의 무한 각축장이 되어버렸다. 많은 검증된 아티스트들이 스스로 음반 회사를 꾸리거나 자신의 레코드 계약을 갱신했다. 반면에 3년 전만 하더라도 무시당했을 다른 밴드들, 주로 훵크 밴드들도 열광적으로 메이저 음반 회사들과 계약할 수 있었다.

 

(201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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