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와 그 이후
70년대 후반에 그로버 워싱턴이 그루브를 구사하고 허비 행콕이 점차 전자 음악으로 기울던 때에, 재즈 훵크에서 또다른 거친 형태가 뉴욕과 동부 도시들의 언더그라운드 클럽에서 발전하고 있었다. 새로운 레코딩 기술의 등장, 점점 더 적어지는 라이브 무대, 그리고 뮤직 클럽 대신에 디스코텍(역자 주 - 라이브 무대 대신에 판을 틀어주는 DJ가 있다.)으로 몰리는 사람들로 인해 수많은 재즈, 록 그리고 소울 뮤지션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뉴욕에서는 이와 같이 훵키 재즈를 연마한 굶주린 뮤지션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는데, 이들은 지하철에서 음악을 선보이거나 연주로 구걸을 했다. 이러한 문화는 '디훵트Defunkt', '켈비네이터Kelvynator', '디코딩 소사이어티the Decoding Society' 그리고 ‘프라임 타임Prime Time'과 같은 밴드들이 연주하는, 격렬하고도 긴박하지만, 춤을 추기에는 알맞은 형태의 재즈를 부흥시켰다. 또한 1980년대에 일어난 마일즈 데이비스의 부활도 이러한 음악이 융성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1970년대 후반에 이르자, 전자음악을 탐구하던 오넷 콜먼Ornette Coleman은 기타리스트 제임스 “블러드” 얼머, 드러머 로널드 섀넌 잭슨Ronald Shannon Jackson, 그리고 지저분한scatological 베이스 주법을 구사하던 자말딘 타쿠마Jamaldeen Tacuma와 같은 재능 있는 뮤지션들을 한데 모아 ‘오넷 콜먼 앤드 프라임 타임’이라는 밴드를 결성했다. 콜먼의 작업은 작가인 제이슨 쉐어보커스Jason Chevokas가 묘사한 바에 따르면 “하몰로딕 훵크Harmolodic Funk"라고 할 수 있는 일군의 불경스럽고 훵키한 재즈 스타일을 구사하는 아티스트들을 태동시켰다. 드러머인 잭슨은 계속해서 디코딩 소사이어티를 육성시켰고, 1980년대에 기타리스트 버논 리드Vernon Reid를 걸출한 인물로 만들었다. 콜먼의 베이시스트 자말딘 타쿠마 또한 솔로 작품에 몰두했다. 기타리스트였던 제임스 ”블러드“ 얼머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그는 1982년에 발표한 앨범 Black Rock과 선구적인 잼 ”Jazz Is the Teacher (Funk Is the Preacher)“를 수록하고 있는 1981년 컬럼비아 레코드에서 발표한 앨범 Are You Glad to Be in America에서 맹렬한 기타 리프를 선보이며 (한 개의 장르로) 범주화되는 것을 거부한 사람이었다. 그렉 테이트는 얼머에 대해 다소 전형적인 방식으로 이렇게 묘사한다.
물론 블러드(얼머)는 훵크를 차용했습니다. 하지만 마일즈 데이비스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방식대로 차용하게 되지요..... 블러드는 헨드릭스처럼 감각에 호소하며, 폭발력을 지닌 우주적인 분위기의 블루스를 연주하지도, 존 맥클러플린처럼 이국적인 음계를 초광속 스피드로 연주하지도 않습니다. 그가 진정 연주하는 것은 예리하고도 혼란스러운 파편들, 신경을 거스르는 편린들과 불규칙한 조각들이 휘청거리고 찌푸린 듯한 주선율의 감성에 의해 함께 얽혀있는 것이었습니다. 용두사미도 아니고 거짓된 헤비 메탈의 오르가즘도 여기에는 없었지요...... 본질적으로 블러드의 주선율은 거의 동일하면서도 그의 리듬 찹이 가속기 역할을 한 것이었습니다.
흑인 음악을 전자 음악의 황폐함과 단조로운 리듬으로부터 재정의하려는 노력은 훵크적 충동에 심대하게 의존하고 있으며, 본질적으로는 조지 클린턴과 그의 동료들, 더 나아가서는, 디훵크트, 켈비네이터와 같은 아티스트들에 의해 더욱 강화된 것이었다.
(201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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