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어떤 분이 "사적인 글"이라고 부끄러워하면서 음식과 살아온 삶에 대해 글을 올린 것을 보게 되었다. http://hertravel.egloos.com/5729936 나는 그 글이 너무 재미있었다. 그것도 근래에 읽은 블로그 글 중에서 가장 좋았다. 서로 교차하지 않을 것 같았던 이쪽의 삶과 저쪽의 삶이 갑작스레 부대끼면서 청량한 소리를 내는 것을 들었다 할까. 우연한, 또는 우연치 않게 맞닥뜨리는 이러한 삶의 공명이야말로 공감의 위력이며, 더 나아가 문학의 원초적인 힘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러면서도 사적인 글이라 부끄럽다는 글쓴이의 겸손이 어떤 맥락에서 나온 말씀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블로그를 하면서 거의 사적인 얘기를 꺼내지 않는 편이다. 싸이월드에 몇몇 지인들과 일기를 공유할 뿐, 트위터도 페이스북도 하지 않는다. 우스개소리로 트위터는 CIA의 주구이며 (실제로 마그레브 지역의 재스민 혁명이 그랬다. 트위터는 CIA와 앨버트 아인슈타인 재단의 진 샤프의 무기였다.) 페이스북은 전 여친과 현 여친을 연결해주는 패륜SNS이기 때문에 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다니지만, 정작 "내가 어디서 무얼 하는지" 그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다. 특히 직장에 들어가면서 그런 생각을 완전히 접었다. 내가 하는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내용을 통해서 나의 취재 대상에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으로 취재를 하고 있는지 일말의 단서도 주고 싶지 않았다. (특히 인권의식이 유난히 낮고 사찰에 이골이 난 국내 대기업들을 고려하면)그것은 나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지만 취재 대상에 대한 배려이기도 했다.
또 다른 이유로는 "조사 연구가 없으면 발언권도 없다."는 모택동의 유명한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어서였다. 나는 언론인으로써 내 이름을 걸고 쓸 수 있는 글이라면 내가 치열하게 발로 뛴 결과를 보여주여야 한다고 여전히 생각한다. 아마도 학부 때 문학이라든가 문화 비평같은 비교적 순진한 학문에 유착되어 있었기 때문에 블로그가 세계에 대한 나의 저열한 인식을 여과 없이 드러내지 않을까 하는 노심초사의 발로이기도 했을 것이다. 또한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한 주요한 수치들이라든가 지표들에도 몽매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게다가 이 사회는 이러한 "신변잡기"들로 얼마나 넘쳐나는가? 자신이 얼마나 감성적이고 유약한 존재인지 드러내기 위한 악다구니랄까? 가장 최전선에서 "세계의 비참"을 목도하는 언론인으로써 자신이 얼마나 상처받기 쉬운 존재인지, 또한 삶의 아름다움에 얼마만큼 섬세하게 감응할 수 있는지 보여주려 애쓰는 것은 천박한 일이다. 왜냐하면 자신을 긍휼히 여기는 자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은 할지언정, 그로부터 이해관계를 이끌어내는 데는 무관심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언론의 진정한 책무는 민중들이 겪는 고통의 원인을 찾고 그들의 이해관계를 명명백백하게 알리는 것인데 감상성은 분석적 태도의 적이 될 뿐이라는 생각에서다. 지금도 이런 생각은 여전하다. 나는 아직도 사회 전반에, 또한 그렇지 않아야 할 언론계에도 만연한 유약한 "문청(문학청년)들"이 내뿜는 그 수많은 '음향과 분노'에 내 목소리를 얹어놓는 일이 끔찍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블로그를 계속하는 이유는 Baron Samdi로써 살아가는 익명의 삶이, 유별난 정치적 성향과 문화적 취향에서 오는 외로움을 어느 정도 상쇄해주기 때문이다. 적확하게 표현하자면 이 블로그야말로 나의 잉여로움의 산물이며 축적이다. 역설적이게도 잉여로움으로부터 풍요로움을 얻었달까, 새로운 음악을 소개하기 위해서 해외 리마스터링 동향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읽기 싫어하던 영문 자료들도 보다 적극적으로 보게 되었다. 다만 부지런함이 남만 못해서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블로그를 "나의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듯하다. 은연중에 쓸데 없이 직업을 밝혔던 것도 이것은 진정한 나의 목소리는 아니다, 그것은 다른 곳에 있다는 항변이 아니었을까?
정권의 구세대적 작태와 출세지향적 기회주의자들의 야합으로 인해 (물론 이념대결이나 지역구도로 환원하고 싶은 분들도 있겠지만, 김재철과 부역자들은 노무현 정권에서 출세가도를 달렸던 사람들이다. 전라디언 종북노조가 보수성향의 공영방송 사장을 위압한다고 하는 분들이야말로 이념의 색안경을 낀 장님들이다. 참고로 김재철은 노무현 정권 시절 청주, 울산 MBC 사장을 역임하면서 중앙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나의 진정한 목소리라 여겼던 것을 빼앗기게 되면서 나는 또 다른 겸손을 알게 되었다. 내가 삶에서 구축(내쫓음)하려고 했던 것 또한 소중한 내 삶의 일부라고, PD는 저널리스트의 책임감과 아티스트의 분방함에 가로놓인 중간자적 존재가 아니라 그 양자를 고루 갖춘 존재라고, 그래서 내 자신이 항상 부족하다고 느껴왔던 아티스틱한 면들은 나를 "있는 그대로" 놓아둠으로써 채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렴 어떤가? 누구나 이정환닷컴처럼 탁월한 필치와 정확한 자료로 블로그를 운영할 수는 없는 법이다. social and material같은 뛰어난 블로그 포스팅은 창조적 불안으로 하여금 나를 채찍질하게 만들지만, 나의 블로그질은 그러한 채찍질 속에서 안식과 우애를 준다는 사실을 겸허하게 인정해야겠다. 뛰어난 soul & funk 블로그는 아닐지라도 나누는 사람들이 있어 행복하다.
(20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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