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서울 재즈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크루세이더즈가 내한했다. 전성기의 멤버는 키보드의 조 샘플, 색소폰의 윌튼 펠더뿐이었지만 (얼마전 패트리스 러섄의 내한처럼) <고스트 버스터즈>의 레이 파커 주니어까지 합세해서 기쁨이 더 했다. 공연 몇 주 전서부터는 아무리 회사업무가 바빠도 이번 공연은 놓치지 않겠노라고 공언해왔고 <Sweet and sour>를 맨 귀로 들을 수 있다면 여한이 없다고 생각해오던터라 기대도 컸다.
공연 후 소감은 단 한 마디로 족하다.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다!
가장 듣고 싶었던 <Sweet and sour>, 그리고 원래 리스트에 올라있었던 <It happens everyday>가 빠져서 아쉬웠지만 조 샘플, 윌튼 펠더 그리고 레이 파커와 같은 거장들의 연주를 지척에서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흥분되는 공연이었다. <Street life>은 꼭 연주할 것이라 예상했었고 신곡 위주의 선곡이 아닐까 우려도 했지만 전성기 시절의 곡 위주여서 듣기에도 편했다. 조 샘플은 연세 때문인지 자기네의 앨범 이름을 윌튼 펠더에게 물어보면서도 곡 제목과 곡이 쓰여진 배경, 연도들을 편안하게 설명해줬고 트럼본 의 닐스 란드그렌은 한국에 자주 와서인지 한국 관객들을 어떻게 다루는지 잘 아는 듯 했다. 특기할만한 것은 조 샘플의 아들 니클라스 샘플이 베이시스트로 참여했고 레이 파커 주니어는 <고스트 버스터즈>를 개사해 <크루세이더즈>로 바꿔부르기도 했다.
재즈 페스티벌 주최측에서는 그 정도 영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리없이 이해한다고 생각한 건지 아니면 음악 감상에 불필요하다고 생각한 건지 "캄사함니다 싸랑함니다"류의 댄스 가수들 멘트도 아니고 조 샘플이 자상하게 곡을 설명해주는데 통역 하나 붙이지 않았다는 건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2시간 동안 지문이 닳도록 박수를 치고 공연이 끝나고 나서도 한참동안 기립한 자세로 연주를 재청할 정도로 좋은 공연이었다. 재즈의 전설을 맨눈으로 보았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사족> 한국의 재즈 팬은 재즈 훵크를 경시하는 재즈 순혈주의자들이 대부분인데다가, 퓨전 재즈 팬이라고 하는 사람도 J-퓨전으로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크레졸처럼 깔끔한 리듬 섹션에 하드코어 포르노처럼 노골적인 멜로디를 얹은 곡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크루세이더즈같은 거장도 거의 죽을 날 받아놓을 정도가 되어서야, 한국말로 노래를 부르는 유명가수가 샘플링을 하면서 띄워줘서야 겨우 볼 수 있는 것 같다. 그 옛날 아트 블레이키의 예도 있고, 윌튼 펠더가 색소폰을 불어제낄 때 어찌나 가슴이 조마조마하던지...
(2008/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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