훵크는 그렇게 계속해서 나타난다. 몇 날 밤을 콘서트 투어로 보내고, 녹음으로 하루를 마친 날이 여러 날 찾아오면서, 브라운은 “쇼 비즈니스 계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는 명성을 얻었고, 그의 음악은 당연하게도 청중들을 감동시켰다. 제임스 브라운은 그의 성공을 흑인들의 롤 모델로서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테네시 주 녹스빌,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 조지아 주 어거스타에 있는 라디오 방송국을 사들였다. 그는 베트남에서 자청해서 공연을 했는데, 이는 아시아에서 복무 중인 대부분의 사병들이 좋은 쇼를 볼 권리가 있는 흑인들이었음을 잘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백인들의 미국에서 모순적인 성공을 거둔 흑인의 원형이 되었다.
브라운은 1968년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암살당할 때에도 투어 중이었다. 여기가 바로 그의 경력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이 나오는 대목인데, 브라운이 보스턴 시장으로 하여금 저녁 콘서트가 예정대로 진행될 수 있도록, 심지어는 TV 방송까지 할 수 있도록 설득했던 것이다.
그럼으로써 사람들은 마음을 돌릴 수 있었을 것이다. 브라운과 보스턴 시장은 무대 위에 함께 섰고 (쇼가 취소되었다고 알려졌기에) 드문드문 앉은 관객들은 마치 많은 청중들이 운집한 양, 소울의 대부의 쇼를 즐길 수 있었다. 이는 아마도 미국에서 처음으로 TV 전파를 탄 제임스 브라운 공연이었다. 그리고 (킹 목사 암살에 대한 항의 시위로 야기된) 보스턴 시가의 피해는 최소한도로 억제될 수 있었다.
브리운은 전국을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니면서 “진정하라Stay cool” 그리고 “불 지르지 말고 배워라Learn, don't burn”는 메시지로 호소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교육을 받고, 열심히 일하라 그리고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위치에 도달하도록 노력하라, 그것이 블랙 파워다.” 그는 이후 부통령 휴버트 험프리의 찬사를 받았고, 1968년 여름 와츠에서 험프리 부통령과 함께 그를 지지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브라운은 당시 그와의 관계 때문에 압박감을 느꼈다. 그 당시는 공적인 영역에서의 모든 흑인들이 흑인 혁명에 대한 정치적 견해를 가져야 하던 시기였다. 브라운은 자서전에서 공개적으로 흑인 민족주의 운동가였던 H. 랩 브라운과의 토론을 회상하고 있는데, 그 시기에 랩 브라운은 SNCC의 리더이자 공개적으로 흑인들의 폭력 혁명을 주장하고 있었다. 제임스는 그 때의 “우정어린 그러나 직접적이었던” 대화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한다.
제임스 브라운 : 랩! 당신이 뭘 하려는 지 압니다. 저도 같은 것을 하려고 하니까요. 하지만
그러려면 다른 길을 찾아보세요. 총을 내려놓으셔야 합니다. 폭력으로부터
거리를 두어야 합니다.
랩 브라운 : 이해를 못 하시는군요. 아마도 당신이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기도 전에 이 도시, 저 도시를 돌아다니고 있어서 그런가 봅니다.
저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이웃과 어울리고 있어서 잘 압니다. 당신이
아시는 바는 무대 위에서 본 것이 전부이지요.
제임스 브라운 : 아마 그럴지도 모르지요. 저는 무대 위에서도 꽤나 잘 보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잘 알고 있고, 왜 그런지도 잘 압니다. 저도 당신처럼
출신이 아주 가난해서 그런가 봅니다.
랩 브라운 : 당신은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게토에서는 당신을
따르는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들이 행동을 개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제임스 브라운 : 저는 어느 누구에게도 총을 들라고 권하지는 않겠습니다. 게다가 혁명이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우리 흑인들은 지는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곧 수적 열세 속에서 압도당하고 패하고 말 것입니다.
이 두 지도자간의 의견 불일치는 흑인 공동체 내의, 그리고 흑인 공동체를 둘러싼 갈등을 반영했다. 브라운은 흑인들 사이에서 요지부동이었지만 모든 사람들은 민중들과 함께 할 때의 그의 힘을 알고 있었다. 그의 매니저 앨런 리즈Alan Leeds에 따르면, “그는 몇날 밤을 그의 대기실에서 흑인 공동체와 그를 둘러싼 미국 내에서 지속되는 열악한 상황에 대해 아이디어를 나누었다.” 1968년이 되자, 흑인 공동체 내의 상황은 전국적으로 더욱 악화되었고 폭력적인 양상을 띠게 되었기에, 마침내 대부는 무엇인가를 해야만 했다.
(2009/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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