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살때부터 팝음악에 빠져 있었기에. 살아온 것에 비해 결코 짧지 않은 음악 편력에서 전환점이 된 곡이 세 곡 있다. 앞서 소개했던 "Brand New"와 "Fall In Love With Me"가 Soul/Funk라는 장르에 흥미를 갖게 만들었다면 지금 소개할 이 곡은 소위 '힙합전사'의 생활을 청산하게 만든 곡이다. 이 곡을 듣고 나서부터 중학교 2학년 때 본조비를 알게 된 이후로 내내 빠져 살았던 록 음악을 점점 멀리하게 되었고 그 이후로는 록 음반을 구입한 적이 없다. (그나마 여전히 애착을 갖는 곡이 있다면 옛 추억에 빠지게 만든는 Winger의 "Headed for a Heartbreak" 정도)
록 팬들 중에 재즈 팬들이 많다. 록 팬들 중에서 재즈를 혐오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인종주의나 생소함 때문이 아니라 열등감 때문일 것이다. 항상 재즈는 록의 상위 장르로서 군림해왔으며 록 팬들은 항상 재즈를 동경해왔다. (남무성 선생님이 재즈 만화에 이어 록 만화를 출간하신 것도 예전에는 록 음악으로 시작했다는 회고적인 이유 때문이 아닐까?) 고등학교 내내 스미스나 스웨이드같은 브릿 팝/록을 사랑하던 내게 전기가 찾아온 것은 대학시절이다. 항상 수능 문제집 외에는 스포츠 신문 밖에 보지 않던 내게 안드레아스 훗센이나 데이빗 하비의 논문을 요약해오라고 하는 대학의 교양수업은 충격 그 자체였다. 이태원과 가깝다는 지리적 이점을 갖고 상당히 '글로벌'하게 살고 있다는 나의 자부심에도 상당히 상처가 난 터였다. 나를 둘러싼 세계보다 훨씬 더 넓은 세계가 있다는 점은 쉽게 수긍하기 힘들었다. 사람은 환경을 변화시키기도 하지만 또한 환경에 따라 변하기도 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들 덕택에 온갖 '비행'은 접해보았지만 대학 생활은 또 다른 세계였다. 지금와서 보면 유치한 생각이지만 성인의 세계는 이미 접했왔어도 지성인의 세계는 생소했달까, 나는 이 넓어진 세계에 맞게 달라지고 싶었고 재즈는 그 음악적 표현이었다.
그러나 재즈를 접하고 좋아하게 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지금이야 십 년의 수련 끝에 하드 밥 정도는 참고 듣지만 여전히 가만히 앉아 듣기에 쉬운 장르는 아닌 것 같다. 결국 재즈 컴필레이션 음반을 몇 개 구입해 유명하다는 "Misty"나 "Desafinado"같은 것을 들어보려고 시도했지만 혈기방장한 청년에게 그런 고상한 멜로디는 어서 잠에 빠지라는 최면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서 타협점을 찾아보려고 한 것이 소위 퓨전 재즈였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 지 막막하기만 했고 주위의 추천으로 들어 본 '카시오페야'나 '티스퀘어' 같은 일본 밴드는 일본 아니메 사운드트랙이나 게임 배경음악 같이 밋밋하게 들렸다. 들으면 신은 났지만 과히 좋지는 않았다. 일본 밴드는 안 맞는다면서 골라 든 '포 플레이'나 '리턴 투 포에버'같은 밴드도 매한가지였다. 그저 프로그레시브 록 다룬다는 홍대 oo레코드 드나드는 머리 길고 친구 없는 형님들이 듣는 그런 음악이었다.
지금은 롯데 영플라자 무인양품이 되어버린 미도파 백화점 지하 파워 스테이션에 음반을 사러 갔을 때였다. 재즈 음반들이 재고 떨이 중이었고 눈길을 끈 CD는 영국 캐슬 레코드에서 발매한 "Jazz Funk" 시리즈였다. Jazz와 Funk가 결합된 장르라 이것이 무엇인고, 당장 사서 플레이어에 돌려봤다. '그냥 전자악기 많이 쓰는 재즈구나~'하고 넘기려는 찰나에 터져나오는 힘찬 브래스 사운드! 브래스, 스트링, 리듬 섹션의 완벽한 조화에 부드러운 팔세토. 마치 아무리 생각하려 해도 뇌리에만 맴돌던 단어가 우연한 계기로 인해 갑자기 떠오르듯이, 어릴 적부터 무의식 중에 동경해왔던 음악이 나의 청각 신경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내가 이런 음악을 듣기 위해 여지껏 살아왔구나! 이 음악은 내 음악이다." 그 곡은 Al Hudson & Partners의 "Spread Love". 70년대 중반부터 활동해서 미국과 영국에서 마이너한 히트를 기록하던 디트로이트 출신의 밴드였다. 그 이후의 상황은 불문가지. 크루세이더즈를 만났고, 이를 안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와 쿨 앤드 더 갱을 프로듀스한 디스코의 마왕 데오다투와 조우하게 된다.
그 길로 나는 온전히 재즈 훵크와 소울 음악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우연한 계기로 인해 한국의 팝 팬이라면 거의 모두 따라가는 그 지긋지긋한 상궤에서 벗어나 나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하게 된 것이다. 독특함이 우월함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에스페란토어나 맑스주의 혹은 유대교와 같은 글로벌함, 내가 살고 있는 나라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전 세계 대중음악을 지탱하는 또 다른 커다란 세계수(omphalos), <슬램덩크>의 작가 타케히코 이노우에가 말한 "나를 만들어낸 나의 취향"을 만난 것은 우연이 나에게 건네준 격에 맞지 않는 선물이었다.
캐슬 레코드의 컴필레이션은 지금에 와서 봐도 탁월하기 이를 데 없는 구성이다. 이 장르의 정수만을 모아놓았으니 말이다. 도널드 버드의 음반처럼 너무 들어서 못쓰게 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많이 꺼내듣는 음반 중의 하나다. 요즘 와서는 이 장르를 알게 되고 굶주린 포식자처럼 미친 듯이 음악을 섭렵하던 시절이 그립다. 그렇다고 음악을 전혀 안 듣는 것은 아니지만 매너리즘 탓인지 많이 줄기는 했다. 일 년에 수 백곡 이상 듣는 헤비 리스너이기에 오히려 더 할 것이다. 데이터 스모그 현상에 시달리면서 웬만한 곡 아니면 기억조차 나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고 어떤 곡을 예로 들면 듣고는 너무 좋아서 유럽 사이트를 돌아다니면서 알아봤지만 예전에 오디오갤럭시에서 받아놓은 mp3로 이미 소장했던 곡임을 알고 허탈했던 기억도 있다. "요새 무슨 곡 들으세요?" 하면 내 대답은 "잘 모르겠어요. 기억이 안 나요"다. 그러다보니 비슷한 취향의 사람과 어떻게 만나게 되어도 음악에 관해서는 별로 할 말이 없다. 음악이 좋아서 많이 들었을 뿐이지 전문성 따위가 있을 리가 없는데 사람들은 내가 어떤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고 굉장히 체계적으로 듣는 줄 아는 모양이다. 나는 그런 시선이 여전히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반가움이 앞선다. 무엇을 내게 물어온다면 아주 난처해 하겠지만 말이다.
웰든 어빈이나 빌 서머즈와 같은 레어 그루브를 함께 찾아 듣던 친구는 음악을 업으로 삼자마자 음악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린 것 같다. 중학교 때부터 나와 테이프를 돌려 들으며 거의 비슷한 음악을 찾아듣던 또 다른 친구는 어느샌가 내가 좋아하는 음악들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이 친구는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싫어하는 것 같다. (이런 게 '영향력의 불안'은 아니겠지?) 직업 상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친한 사람들도 많은데 음악적 취향에서만큼은 항상 침묵을 지켜야 한다. 어떻게 해서 나는 훵크의 불모지에서 태어난 것일까? 왜 남들 듣지않는 이상한 음악만을 찾아들어야 할까? 아니 더 나아가서 나는 음악을 왜 들을까? 결국 내 대답은 "잘 모르겠어요. 기억이 안 나요."겠지. 다만 그 처음에는 바로 이 곡이 있다. 70년대를 대표하며 여전히 새롭고 여전히 흥겹고 여전히 나를 전율케 하는 이 곡.
사족. 이 곡의 프로듀서는 예전에 소개한 바 있는 Garry Glenn이다. 앨 허드슨, 그리고 이 밴드가 뒤에 이름을 바꾸어 활동한 원 웨이의 모든 음반을 찾아들었지만 "Spread Love"만큼 좋은 곡이 없다. Garry Glenn때문이었을까?
(20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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