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cotheca

Michael Wycoff - Looking up to you (1982)

Baron Samdi 2016. 6. 29. 11:16



스티비 원더가 76년에 발표한 역작 <Songs In The Key Of Life>에 백업 싱어로 참여했던 마이클 와이코프의 82년 앨범 <Love Conquers All>의 수록곡이다. 웹스터 루이스의 프로듀싱을 거친 앨범으로 80년대 초반의 노래라고 믿겨지지 않는 감각을 선보이고 있다.

와이코프는 앨범을 81년과 82년에 연달아 발표했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한참 뒤에 이 곡이 댄스 클럽을 중심으로 다시금 알려지기 시작해서 와이코프 음악에 대한 재조명이 뒤따랐고 언더그라운드의 클래식으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그 후 여성 2인조 듀오 Zhane이 이 노래를 샘플해서 발표하면서 더욱 알려졌지만 와이코프 자신은 본업인 세션활동 외에는 별다른 앨범 활동을 하지 않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할 전망이다.


내가 와이코프의 음악을 들으면서 느낀 것은 음반 산업 시스템 그 자체는, 대중이 어떻게 음악을 듣고 어떤 음악이 좋고 나쁜지 선별하고 판단하게 만드는 감식안을 박탈하는 것 같다. 물론 음악을 뭐 그리 생각하면서 듣느냐는 핀잔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음악과 영화나 대중문화를 그냥 주어지는 대로 자연스럽게 보는 태도가 우리로 하여금 현실에서 발휘할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을 봉쇄하게 하고 우리를 현 상태에 안주하게 하거나 혹은 더 나쁜 상태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수많은 록커빌리 진보주의자들이 말하듯이 "젊은이들이여! 롹을 외치며 거리로 나가자!", "이 더러운 세상에 침을 뱉고 한 판 놀아보자!" 등의 슬로건들에 매우 짜증섞인 반응을 보이는 편이다. 그리고 나와 같은 입장의 소울 팬이라고 하더라도 흑인들이 비흑인 음악가에 비해 고도의 정신성이나 영감을 가지고 있다는 견해에도 비판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대중문화 자체가 혁명성을 담지한다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대중문화는 그것에 가역적이다. 대중문화 속에 어떠한 혁신이 있더라도 그것은 쉽사리 체제 내로 흡수된다. 대중문화의 혁신이란 결국 그 자체의 상품 가치를 높히는 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을 무슨 예술가의 고뇌가 만든 절창으로 보거나 록 스피릿, 훵크의 정수 등 정신적인 것으로 판단한다는 것이 문제다. 록 스피릿이나 훵크의 코어라는 것도 그저 역사적으로 축적된 양식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그저 내가 하고픈 말은 록이나 훵크에 대해 과도하게 환상을 품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며 그저 바라보는 방식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나타나는 부수적인 효과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대중문화를 읽어내는 감식안이라는 것은 대중문화의 강력한 마취효과 때문에(누가 세상으로부터 급격히 유리되지 않는 한 대중문화의 강력한 마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그 자체 안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이며 다른 것들과의 과감한 충돌과 교류에 의해서만이 획득될 수 있다고 본다. 


 

스티비 원더가 76년에 발표한 역작 <Songs In The Key Of Life>에 백업 싱어로 참여했던 마이클 와이코프의 82년 앨범 <Love Conquers All>의 수록곡이다. 웹스터 루이스의 프로듀싱을 거친 앨범으로 80년대 초반의 노래라고 믿겨지지 않는 감각을 선보이고 있다.

와이코프는 앨범을 81년과 82년에 연달아 발표했지만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한참 뒤에 이 곡이 댄스 클럽을 중심으로 다시금 알려지기 시작해서 와이코프 음악에 대한 재조명이 뒤따랐고 언더그라운드의 클래식으로 인정받기에 이르렀다.  
그 후 여성 2인조 듀오 Zhane이 이 노래를 샘플해서 발표하면서 더욱 알려졌지만 와이코프 자신은 본업인 세션활동 외에는 별다른 앨범 활동을 하지 않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할 전망이다.


내가 와이코프의 음악을 들으면서 느낀 것은 음반 산업 시스템 그 자체는, 대중이 어떻게 음악을 듣고 어떤 음악이 좋고 나쁜지 선별하고 판단하게 만드는 감식안을 박탈하는 것 같다. 물론 음악을 뭐 그리 생각하면서 듣느냐는 핀잔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음악과 영화나 대중문화를 그냥 주어지는 대로 자연스럽게 보는 태도가 우리로 하여금 현실에서 발휘할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을 봉쇄하게 하고 우리를 현 상태에 안주하게 하거나 혹은 더 나쁜 상태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수많은 록커빌리 진보주의자들이 말하듯이 "젊은이들이여! 롹을 외치며 거리로 나가자!", "이 더러운 세상에 침을 뱉고 한 판 놀아보자!" 등의 슬로건들에 매우 짜증섞인 반응을 보이는 편이다. 그리고 나와 같은 입장의 소울 팬이라고 하더라도 흑인들이 비흑인 음악가에 비해 고도의 정신성이나 영감을 가지고 있다는 견해에도 비판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대중문화 자체가 혁명성을 담지한다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대중문화는 그것에 가역적이다. 대중문화 속에 어떠한 혁신이 있더라도 그것은 쉽사리 체제 내로 흡수된다. 대중문화의 혁신이란 결국 그 자체의 상품 가치를 높히는 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을 무슨 예술가의 고뇌가 만든 절창으로 보거나 록 스피릿, 훵크의 정수 등 정신적인 것으로 판단한다는 것이 문제다. 록 스피릿이나 훵크의 코어라는 것도 그저 역사적으로 축적된 양식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말이다. 그저 내가 하고픈 말은 록이나 훵크에 대해 과도하게 환상을 품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며 그저 바라보는 방식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나타나는 부수적인 효과가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한 대중문화를 읽어내는 감식안이라는 것은 대중문화의 강력한 마취효과 때문에(누가 세상으로부터 급격히 유리되지 않는 한 대중문화의 강력한 마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그 자체 안에서는 결코 얻을 수 없는 것이며 다른 것들과의 과감한 충돌과 교류에 의해서만이 획득될 수 있다고 본다. 


 

 

(2006/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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