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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ybreak - Everybody Get Off (1980)

Baron Samdi 2016. 6. 29. 11:21



(위의 사진은 Daybreak의 Larry Marc-Aurelle)

1980년 빌보드 소울 차트 65위까지 올랐던 이 곡은 현재 캐나다 언디스크에서 찍어내는 싱글반과 프렐루드 레코드의 히트곡을 모은 컴필레이션으로밖에 구할 수 없다.

이 블로그를 열면서 별로 유명하지 않은 곡들을 올리게 되어서 조금 걱정이 된다. 하지만 어느 누가 사람들이 잘 알고 안 알고를 제대로 파악하고 개개인의 취향을 다 감안해서 사려깊게 소개할 수 있을까? 이상으로야 좋지만 현실에서 가능한가? 어떤 사람은 좀 안 알려진 곡을 올리면 눈을 흘긴다. 소울 고전만 듣기도 버거운데 레어 그루브를 올리는 것은 고약한 현학 취미라는 것이다. (비극은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는 것이다. 내가 올리는 모르는 곡은 내가 아니 됐고 남이 올리는 모르는 곡은 괘씸하고...흑인들의 음악만 즐기지 말고 흑인들의 현실을 바로 보자는 얘기에는 아는 것은 중요치 않으며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더니 이럴 때는 알고 모르고에 굉장히 민감하다!) 나 이렇게 어려운 음악들으니 알아주시오~ 하고 자랑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음악은 보편적인 언어라고 주장하니 얼마나 모순되는 말인가. 음악이 그말마따나 보편적이라면 어렵고 안 어렵고를 따질 필요가 무엇이 있을까? 누구에게나 똑같이 다가오는 보편적인 것인데.... 보편적이라는 말이 그렇게 좋은가? 내가 보기에 소울 팬이라면서 소울의 역사성이라든가 흑인들의 현실에 무관심한 것만큼은 국내 소울/힙합 커뮤니티 내에 보편적이라면 보편적인 현상같다. 흑인들에게 정치, 역사와 음악, 예술이 별개라면 소울이란 아무것도 아닌 하찮은 것이다.

 

물론 나는 그러한 얘기가 어느 정도 수긍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고 나에게도 그런 면이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소개하는 곡들도 소울에 처음 입문한 사람에게는 생소하기는 매한가지다. 중요한 것은 누군가의 질문에 성의껏 대답하고 왜 이 노래가 (불가능할지 몰라도 최선을 다해) 마음에 들었는지를  알아보고 해명해 주려는 자세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를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내게 다른 곳에서 마르고 닳도록 소개한 노래들을 재탕할 이유는 별로 없다. 새로운 곡들을 열심히 소개하면 그 판단은 듣는 사람의 몫일 뿐이다. 또한 음악이 보편적인 언어라는 것은 한갓 환상이나 신화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음악을 듣고 즐기는 것도 어느 정도 학습 과정이 필요하며 사회, 문화적 환경을 따른다. 우리가 아랍 음악을 들을 때 다 비슷하게 들리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음악이 보편적이라고 할 때, 그것이 구체적인 대상이 아니라 음악 활동 일반을 지칭한다면 진실에 가까울 지도 모르나 음악이 문화권과 문화권을 이어줄 가교 역할을 할 것이라는 환상은 버려야 한다. (아부 그라이브에서 메탈리카의 용도를 보라.) 사람의 귀만큼 보수적인 것은 없다. 이런 얘기를 그들에게 직접 해야 예의이고 옳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나의 오토 리버스 기능에도 한계가 있고 나 또한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후일을 기약해야겠다.

 

하여튼 엄청난 희소성에도 불구하고 이 곡을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패트릭 애덤스가 프로듀서였기 때문이다. 나의 도반인 한 모군은 노먼 코너스, 폰스 앤 래리 마이즐 형제 그리고 패트릭 애덤스를 빼놓고 70년대 음악을 얘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했다. 나는 특히 그 중에서도 패트릭 애덤스와 그렉 카마이클 듀오를 제일 좋아하는데 이 둘은 노먼 코너스와 마이즐 형제에 비해 국내 소울 팬들에게는 인지도가 덜할 뿐더러 인기도 영 없어 아쉽다.

 

데이브레이크는 래리 마커를과 케니 시먼즈(후에 커머도어즈의 앨범에 참여)에 의해 74년 결성되었다가 80년대 중반까지 활동했다. 이 곡은 패트릭 애덤스 특유의 강신술이 불을 뿜고 있는 것 같다. 패트릭 애덤스의 곡을 들어보면 처음에는 기괴망측함이 도드라져 보이다가도 익숙해지면 굉장한 매력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이 곡도 후반부로 접어들 때 쯤, 열정적인 보컬과 연주가 경쾌하게 맞아들어 가면서 듣는 사람을 몰아지경으로 몰아간다.(특히 르로이 버지스 같은 경우는 단어와 단어 사이의 경계가 희미해지면서 거의 방언 수준이 된다. ) 

 

 

 

(2006/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