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3 : 훵크는 디스코 음악일 뿐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디스코는 단순화된 형태의 탈(脫)민족적 전자 음향 댄스 뮤직이다. 디스코는 1970년대 중반에서 후반에 이르기까지 미 전역을 휩쓸었다. 디스코의 본질은 뮤지션들의 즉흥성과 그루브가 아닌 기계에 의해 확장된 음악으로 흑인 훵크의 생생함을 반복적으로 모사하는 것이다. 디스코 춤은 1960년대 후반 흑인 댄스 음반(오리지널 훵크 트랙들)을 틀던 유럽의 클럽에서 대중화되었다. 나중에 미국으로 퍼져가 1974년까지 미 동부 해안을 따라서 가장 격렬한 유행을 만들어냈다. 디스코 음악의 기계적인 측면은 대중음악 산업을 휩쓸었고 라이브 밴드, 라이브 녹음 그리고 흑인 고유의 라이브 경험의 붕괴를 가속화했다. 그 결과 흑인 음악은 일반적으로 덜 흑인적이게 되었고 덜 의미있게 되었으며 더 기계적이게 되었다. 디스코의 이상이 단선적인 리듬전개에 맞춰 지루하게 춤추게 만드는 것이었던 반면, 훵크의 이상은 단지 엉덩이를 쳐들고 나와 흔들게 만드는 것이었다. 훵카델릭은 훵키한 욕구에 대하여 효과적으로 설명한 “이 주의 섹시녀 freak of the week"에서 이러한 특징을 잘 설명하고 있다.
그녀는 춤에 대한 하나의 해석판,
싱코페이션의 의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야.
그녀는 최고의 섹시녀, 이주의 섹시녀
그루브한 움직임도
새디스트같은 디스코도
오르락내리락 하는 비트도 주지마. 그게 다가 아냐.
영원히 그리고 운도 떼지 마.
그녀는 지름길을 찾는 게 아냐.
그녀는 몸이 달아오르는 지점.
거기에 다다라야 해.
- 훵카델릭 “Freak Of The Week” (1979)
훵크 밴드들은 종종 저급의 디스코에 도전하기도 했다. 훵카델릭은 “The Undisco Kidd"를, 뮤티니Mutiny는 "Anti-Disco”를 녹음했다. 물론 대부분은 뻔한 속임수에 놀아나기도 하고 이 슬픈 상황을 극복하려고 최선을 다해보기도 했다. 뛰어난 밴드들이 우리가 보는 앞에서 타협했다. 제임스 브라운은 자신을 일컬어 ‘오리지널 디스코 맨’이라 선언했고, 오하이오 플레이어즈는 “(Feel The Beat) Everybody Disco"라는 곡을 가지고 뛰어들었다. 아이즐리 브라더스는 ”It's A Disco Night (Rock Don't Stop)" 따위의 곡으로 시간을 낭비했으며 어스 윈드 앤드 화이어는 “Boogie Wonderland”로 망가져버렸다. 팝 음악 팬들이 “디스코 꺼져 Disco Sucks"를 외치면서 즐거워하기 시작했을 때, 미묘한 인종적인 분류가 모든 흑인 댄스 음악에 집중되었다. 70년대 후반 훵크 밴드들 또한 디스코에 대한 전쟁을 선포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일회용 팝에 침식당한 보통의 청취자들은 항상 라디오 프로그램 제작자들 손에 좌지우지된다. 그들은 듣는 사람의 취향에 아랑곳하지 않고 기업의 이익에 따라 차례로 특정한 음반(대개 듣기에 불쾌한 음반들)을 방송하도록 지시한다. 따라서 청취자들은 무지해져서, 예를 들면 오하이오 플레이어즈의 단순한 노래들과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실버 컨벤션의 디스코 음악이 같은 음악이라고 생각한다. 오하이오 플레이어즈가 다른 많은 훵크 밴드들과 마찬가지로 디스코를 포함에서 음악의 총체적인 영역을 탐구하는 반면, 실버 컨벤션은 디스코 댄스 음악을 하는 3인조다. 그들의 음악은 신시사이저로 만든 음악에 노래를 얹은, 모든 곡이 의도적으로 동일한 비트를 사용하며 한 사람에 의해 프로듀스된 그런 음악이다. 이 두 밴드 다 싱글 판매량으로 인기가 측정되었고 많은 훵크 밴드들의 소멸은 디스코 밴드들만큼 판을 팔아치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1970년대의 라디오가 전제하는 것은 1960년대의 그것과 동일하다. 한 아티스트의 수작(秀作)은 라디오에서 들을 수 있는 싱글에 있다는 것이다. 록을 트는 라디오 방송들은 A.O.R(앨범 지향적 록 Album-Oriented Rock : Adult-Oriented Rock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프로그레시브 록 음악 등을 지칭하는 듯 하다.) 형태를 개발함으로써 이러한 난관을 빠져나갔다. 흑인 아티스트들 또한 앨범 지향적이지만 불행히도 흑인 라디오는 그렇지 못했다. 훵크 밴드들은 댄스곡들, 잡종 발라드, 재즈 퓨전, 반(半)종교음악 등 다른 많은 독창적인 작품들을 만들어냈지만 흑인 라디오 때문에 우리는 그것들을 들을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었다. 종종 훵크 아티스트들은 디스코 댄스 싱글에서 행복한 표정으로 바보짓을 하다가도 다른 싱글 커트된 곡에서는 죽을 만큼 심각해져야 했다. 이는 아티스트들이 다루는 주제의 범위가 넓다는 말과 일치하지만 또한 훵크가 무책임하고 실없어 보인다는 널리 알려진 오해를 강화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앨범 전체를 들어보는 것은 훵크 밴드들에 대한 중요한 감상 경험이 된다. 불행히도 대다수의 새로운 컴필레이션 음반들과 위대한 훵크 아티스트들에 대한 헌정 음반들은 단지 히트곡 퍼레이드에 머무른 채 그 밴드의 정치적 의식을 드러내지도, 음악적 재능의 너비 혹은 영적인 믿음들을 나타내지도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훵크 속에서 풍부한 음악적 뿌리를 발견해야 한다. 그리고 아티스트들의 고유한 표현을 발견하는 것이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시도다.
신화 4 : 재즈야말로 진짜 음악이고 훵크는 그렇지 않다.
1960년대 후반, 재즈계는 급속한 변화를 겪고 있었다. 그것은 “재즈 순수주의자 jazz purists”들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변화였다. 존 콜트레인은 재즈의 왕좌를 공석(空席)으로 남겨둔 채, 1967년에 세상을 떠났다. 대신에 다른 오랜 동안 재즈의 거장으로 남아왔던 이들은 그들의 구미의 맞는 다른 음악의 영역을 탐구했다. 마일즈 데이비스, 캐논볼 애덜리, 도널드 버드, 램지 루이스, 웨인 쇼터, 칙 코리아 그리고 허비 행콕 등은 음반을 발표하면서 전통적인 재즈의 영역 너머로 움직이려는 시도에 착수했다. 대다수는 베이스 기타와 전자 기타, 전자 키보드 그리고 제임스 브라운에게서 영향을 받은 리듬 등을 결합하는 전자 음악 쪽으로 나아갔다. 이들 모두는 완전히 리듬 앤드 블루스 밴드처럼 보이는 새로운 재즈 밴드들을 만들어냈다. 그 외 다른 아티스트들은 음악에서 형식적인 멜로디 구조를 없애버린 색소폰 주자 오네트 콜먼의 성상파괴적 iconoclastic인 행로를 따라갔다. 콜먼의 영향은 마일즈 데이비스의 영향과 마찬가지로 퓨전이라고 불리는 재즈의 “기술적” 형태들을 발전시키도록 했는데, 퓨전은 자체적으로 많은 반대자들을 만들어냈지만 인종을 불문하고 몇 백만 장에 달하는 판매고를 올렸다.
재즈계의 정신적 지주 중의 한 명인 마일즈 데이비스는 재즈에 전자 음악적 요소를 도입하고 지미 헨드릭스, 제임스 브라운과 슬라이 스톤의 음악 스타일을 포용함으로써 재즈 비평가들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그는 1989년에 낸 자서전에서 그 비평가들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음악가들은 마땅히 그가 처한 시대 상황을 반영할 수 있는 그런 악기를 연주해야 하고, 청중이 듣고 싶어 하는 것을 들려줄 수 있는 기술적 요소를 도입해야 한다. 이러한 모든 순수주의자들은 전자 음악이 음악을 망쳐놓고 있다고 떠들고 다닌다. 하지만 나쁜 음악이 음악을 망치는 것이지, 음악가가 연주하려고 고른 악기가 음악을 망치는 것이 아니다. 나는 훌륭한 음악가가 그 악기들을 제대로 연주하는 한, 전자 악기를 사용하는 것이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본다.
1970년대에 이르러, 재즈는 훵크로 진화했다. 다수의 밴드들이 새로운 형태의 연주 음악을 시도했다. 이 음악은 어떤 면에서는 팝 재즈와 비슷했고, 어떤 면에서는 재즈 록 퓨전과 비슷했다. 가끔은 보컬리스트를 도입하기도 했다. 재즈로 단련되었고 앞서가는 사고방식을 가진 - 이따금씩은 돈에 굶주린 - 음악가들은 기꺼이 그루브를 탈 줄 알았고, 여전히 즉석에서 분위기를 만들어내었다. 그래서 훵크의 하부구조와 재즈의 상부구조를 갖춘 음악이 탄생했는데, 사람들은 이것을 애시드 재즈, 레어 그루브 혹은 재즈 훵크(리키 빈센트가 잘못 알고 있다. 애시드 재즈는 90년대 자일즈 피터슨이, 레어 그루브는 80년대 중반 노먼 제이가, 재즈 훵크는 70년대 재즈 훵크 르네상스 시절의 음반들이 리바이벌되면서 이런 개념이 정립되었다.)라고 불렀다. 이러한 음악은 록, 블루스, 가스펠, 정통 재즈뿐만 아니라 팝과 소울의 스탠더드 곡까지 섭렵했다. 이러한 밴드들은 전자 악기의 리듬과 전자 악기 연주자들이 있었고, 정통 재즈곡을 발표하는 일은 드물었지만 이들은 재즈를 통해 충분히 숙련된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재능은 그들의 편곡 솜씨에서 나타났다. 이들 중 단연 최고로 꼽을 수 있는 밴드는 훵크 밴드들이었다. 쿨 앤드 더 갱,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 오하이오 플레이어즈, 미터스 The Meters, 훵크 잉크 The Funk Inc. 맨드릴 The Mandrill, 워 WAR, 타워 오브 파워 Tower Of Power, 크루세이더즈 The Crusaders, 헤드 헌터스 The Head Hunters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제이비스 The JB's (제임스 브라운 밴드)가 그들이다. 훵크는 사실상 재즈의 영역에서 훈련받은 사람들이 연주할 수 있는 흑인 음악의 최종적인 형태였던 것이다.
“재즈는 교사, 훵크는 설교자 Jazz is the teacher, Funk is the preacher"
- 제임스 “블러드” 얼머 (1980)
(2006/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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