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훵크>번역이 많이 밀린 관계로 이번주는 미국의 흑인학자이자 하버드 대학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 연구 프로그램을 총괄하고 있는 헨리 루이스 게이츠 주니어 박사의 글을 싣게 되었다. 게이츠 박사의 책 <Signifying Monkey 말놀음하는 원숭이>는 요루바 신화의 나오는 장난꾸러기 신 "에수 엘렉바라"를 통해 흑인들의 문화를 심층적으로 탐구했으며 가히 흑인학의 정전 반열에 올릴만한 책이다. 불행히도 국내에 소개가 되지 않았는데 언젠가 양심있고 성실한 역자분을 통해 만나게 되었으면 좋겠다. (참고로 이 책에는 자크 데리다의 추천사가 붙어있다.)
代打역할을 맡기기에 이 글은 내게는 너무 소중한데 그 이유는 첫째는 내 일생의 첫 번역물이었기 때문이며 둘째는 <훵크>와는 달리 모두에게 권하고픈 좋은 글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적 편견과 계급적 편견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는 점, 그래서 성적 차이와 경제적 차이를 오해하여 성적 편견을 강화한다는 점(부르주아 여성 대 프롤레타리아 남성의 단순한 대립항을 세워놓고 여성을 남성의 건전한 노동을 절취하는 기생적 존재로 묘사하는 것)에서 얼마 전 유행하던 "된장녀" 문제와도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훵크>를 읽어오신 분들께는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
BLACKLASH?
모든 편견은 불공평한 것이다. 물론, 그 말은 게이와 흑인이 겪는 사회적 편견이 동일한 범주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 헨리 루이스 게이츠 주니어 글.
이는 시민권 운동을 경험한 몇몇 운동가들에게는 도둑맞은 명예에 관한 문제가 될 것이다. (63년 킹 목사의 워싱턴)행진에 참여했던 운동가 중 한 사람인 데니스 G. 쿠비 목사는 63년 행진이 열렸던 날과 같은 날, <타임즈> 지(紙) 편집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게이 리더쉽의 멤버(전미 게이 레즈비언 리더쉽 포럼)들이 마틴 루터 킹 목사에 의해 주도된 1963년 행진과 지난 4월 25일에 있었던 (게이, 레즈비언들의)워싱턴 집회를 동일시하는 것은 그다지 적절한 생각이라고 볼 수 없다.” 그로부터 4일 후, 군대 내 동성애 문제와 관련해 미 상원에서 열린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전 육군 중장 캘빈 월러는 (게이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흑인에 대한 편견과 동일시하는 경향에 대해 ) 보다 더 강경한 목소리를 들려주었다. 걸프전 작전 지역 내에서 흑인 장교로서는 가장 높은 위치에 있었고, 또 노먼 슈워르츠코프의 부사령관이었던 월러 장군은 게이의 권리과 흑인의 권익 보호 운동 사이에 어떠한 연계성이 있다는 의견에 강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우리 어머니가 나를 낳아주신 날부터 내게 인종에 대한 선택권은 없었다. 동성애자들이 벌이고 있는 차별 폐지 운동(integration)과 나의 군 복무를 비교 선상에 두는 것은 개인적으로 상당히 불쾌한 일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이러한 정서, 즉, 실제로 사회적 불평등을 감내하고 있는 계층은 흑인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동성애자들이 사회적 불평등의 희생양인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흑인 운동에 편승하여 자신들의 권익을 높여보려는 생각은 볼썽사나운 기회주의임에 불과하다는 그러한 정서가 아주 널리 퍼져 있다. “동성애자들과 공동 전선을 펼치는 것을 꺼려하는 흑인들과 흑인 목사들 사이에서 동성애자에 대한 반발심리가 확산되고 있다”고 전통 가치 연합의 의장 루 셸든 목사는 4월 25일 집회의 여파에 관한 <타임즈> 기사에서 의기양양하게 말하고 있다. 또한 "전미 유색인 권익 향상 협회(NAACP)"가 그 4월 25일 집회를 지원했다는 사실 때문에 이에 대한 반발 심리는 동성애자 권익 향상 운동을 단지 “사기의 정치학(정치행위, 기술, 교묘한 방법)”이자 “로자 파크스(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의 주인공)에게 리버라취를(동성애와 피아노 수집으로 유명한 가수) 끌어대는 짓거리”로 폄하하는 흑인들 사이에서 더욱 더 깊어졌다. “게이들은 선거권이 없어본 적도 없고 간이식당에서 쫓겨나 본 적도 없다. 게다가 소방 호스나 경찰견에 당해본 적도 없지 않은가. 반면에 대부분의 게이들은 교육도 잘 받았고 계층 간 이동도 자유로우며 금전적인 면에서도 안정적이다.” 라며 쿠비 목사는 힘주어 말한다. 심지어 게이의 권리에 대해 동정적인 의견을 가진 사람들도 많은 게이 옹호자들이 차용하는 시민권 담론 중에서 그들이 억압 모델과 희생자 의식을 성역화하데 몰두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흑백을 막론하고 지난 달 워싱턴 행진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게이가 된다는 것은 단지 불편함에 불과할 뿐이지만 흑인이 된다는 것은 고난과 불평등의 유산을 상속받는 일이다. 따라서 흑인운동과 동성애자 권익향상 운동을 동일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주제에 대한 전국적인 논의가 난맥상을 드러내는 이유는 양자 간을 “단순히” 비교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단순한” 비교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편견은 추상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다. 그것은 구별되고 차별되는 역사적인 특수성과 함께 나타난다. 요는 편견이 형식과 내용을 갖춘다는 점이다. 차이를 드러내지 않고 조심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갖가지 형태의 사회적인 증오로부터 눈멀게 한다. 당신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을 통하여 편견을 정의내릴 때, 당신은 진정코 다른 모든 편견들을 편견으로 인정하는 데 실패할지도 모른다. 이에 대하여, 쉽게 얻을 수 있는 꽤 명백한 예는 반흑(反黑)) 인종주의가 흑인의 열등성을 비난의 대상으로 삼는 반면, 반유대주의는 유대인들의 사악함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인종주의자들은 흑인들이 스스로 무엇인가를 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믿는 반면 반유대주의자들은 (전승되는 유명한 이야기에 따르면) 열 세 명의 랍비가 세계를 통치하고 있다고 믿는다.
어떻게 게이들을 이 도식에 대입할 수 있을까? 답은 간단하지 않다. 흑인과 게이 간의 유비 관계를 생각하는 것은 매우 껄끄러운 일이다. 게이의 권리에 대해 지속되는 논의들의 대부분은 지위와 습성간의 말썽 많은 구별 속에서 고착되거나 실패한 것이다. 여기서 그러한 역설은 다음과 같이 도출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종적 정체성을 지위의 문제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은 습성으로 받아들인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성적 정체성에 대한 문제를 성적 (습성)으로 생각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지위의 문제와 관련지어 받아들인다. 따라서 흑인들을 두려워하고 혐오하는 사람들은 전형적으로 그들에게 각인된 흑인들의 공격적 습성들에서 기인한 잠재적 위협에 사로잡혀 있다. 그러므로 이의 반대급부로서 그들은 친절하고 문명화된 흑인들에게 예외를 두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코스비 가족>이 남아공 백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이와는 달리, 많은 사람들이 게이에 대해 느끼는 혐오는 우선 그들의 사회적 위치와 관련을 맺는다. 자연스러운 성의 역할에 대한 부정은 그들 스스로를 악한 존재로 전락시키는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더라도, 동성애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는 선전물은 흑인혐오보다는 차라리 반-유대주의자들의 수사법과 유사하다. 다시 말하면, 그 둘은 배타적인 타자의 느낌을 발산하기는 하지만, 사실은 사악한데다가 불균형을 조장하는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보다 광범위하게 생각하면, 동성애자들에 대한 사람들의 태도는 성차별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사회적 성(gender)에 대한 태도는 부분적으로나마 (그 문제를) 재고하도록 하게끔 한다. 이는 인종적 유비가 아무런 소득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거나 비교에 있어 적절한 관점이 제시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는 흑인들이 역사적으로 성적인 욕망을 주체할 수 없는 짐승들이며 항상 조그만 자극에도 무고한 희생자에게 덮쳐들 준비가 되어 있다고 그려지는 것과 마찬가지다. 탐욕스러운 호모들에 대한 유사한 시각이 종종 미묘하게 병영 내 동성애 금지 등에도 암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게이들은 미국 흑인들로부터 유래한 희생자적 지위와 같은 것들을 주장할 수 있을까? 기독교인 행동 네트워크의 회장인 마틴 모이어가 불평하기를 “그들은 정부, 교육계, 재계, 연예계 권력 핵심부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기네들이 고용 면에서 차별 받고 있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질문 그 자체는 (빠져 나오기 힘든) 모래 함정 같은 것이다.
우선 조심스러운 문제이기는 하지만 왜 억압이 법적인 보호의 필수 요건이 되어야만 하는가? 확실히 (이 나라에서는) 주택 제공이나 고용 면에서 유니태리언 교도(신은 하나이므로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는 기독교 종파)들을 차별하는 사람들의 행동이 잘못된 것이며 불법적이라는 데에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일치한다. 동시에 이는 미국 유니태리언 교도들을 하나의 집단으로 결속시킨다. 그 누구도 감정이나 찬성을 법제화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들이 종교적인 차별로부터 법적인 보호를 받는다는 사실 자체는 “사회적 희생”과는 거리가 있다. 유독 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태도에 관해서는 왜 그렇게 다른 입장을 취하는가?
둘째로, 억압의 서열을 매기려고 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시간 낭비일 뿐이다. 그것은 다년간의 페미니즘 운동이 보여준 장황한 토론을 통해서 얻은 교훈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약간은 불합리해 보이지만, “모든 여성들은 모든 남성들에게 종속되어 있다” - 말하자면, 마가렛 대처 같은 여자까지도 - 라고 주장하지도 않고 여성의 종속에 관해 말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현재 사람들의 경제적 성공에 대한 유일무이하고 위대한 예언자는 바로 부모의 교육적, 경제적 성취도다. 게이들은 여성과 같이 인종과 계급을 넘어 동등하게 할당되기 때문에 미국 흑인 사회에서 상대적 박탈의 가장 큰 요인이 되는, 세대를 가로지르는 빈곤의 복합적인 영향은 여기에 적용될 수 없다. 흑인들의 고통의 대부분이 역사적인 인종주의에서 유래한 데 비해 게이들이 겪는 대부분의 고통은 동시대적인 혐오에서 비롯된다. 게이들이 소득이나 학력 수준에 있어서 평균 이상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마케팅 조사가 일반적으로 게이와 관련된 출판물의 잠재적인 광고주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기획된다는 사실도 마찬가지의 경우이다. 어쩌면 그 조사들이 오로지 그러한 질문지 내에서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게이들의 특성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고 놀라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리고 인종적인 유비를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게이들이 인구 통계학적 합성물로서 흑인들보다 더 잘 산다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 현대의 호모 공포증은 인종주의보다 더 치명적이다. 한 조사 집단에 따르면, 게이 남성의 4분의 1이 그 성적 지향성을 이유로 물리적인 공격을 받았다. 또한 반수가 폭력에 의해 위협을 받고 있다. (레즈비언들에게는 불안은 항존하지만 이러한 경우는 낮다.) 이 나라에는 선생님이나 사제가 혹은 세입자가 단순히 흑인이라는 이유로 차별 받는 것은 잘못된 행위라는 도덕적인 합의가 존재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경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나라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동성애자들에 대한 도덕적인 인정은 여전히 미지수로 남아있다.
지난 9년간, 아이오와 주 멜버른이라는 외딴 촌락의 시장을 지냈던 빌 크루스가 4월 25일 행진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그는 처음으로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혔다. 그때, 그는 그의 집에서 “멜버른은 게이를 싫어 한다”와 “호모 금지”라는 문구가 집 앞에 페인트 스프레이로 쓰여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여전히 게이가 일반적으로 수치라는 것이 - 가까운 사람이나 친한 사람들을 통해 - 여전히 유포되고 학습되고 있는 것이다. 주류를 점하는 종교지도자들은 - 카톨릭 주교나 정통파 랍비들을 포함하여 - 우리에게 (사람은 미워하지 말고) 그 죄를 미워하라고 한다. 하지만 “피부색을 미워하라”고 존경받으실 만한 분들이 우리들을 충동질한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얘기다. 개중에 지미 스워거트는 그의 수백만이나 되는 추종자들에게 성서에 이르기를, 호모들은 죽어 마땅하며 없어져 버려야 한다고 확신시킨다. 하지만 흑인들에 대하여 이와 똑같은 태도로 대중매체에 나오는 것은 쉽지 않다. 이를테면 사회적 지위에 대한 측정을 기반으로, 평균적인 게이들은 흑인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특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적대적 행위의 용인을 측정해본다면 게이들의 처지는 흑인들의 그것보다 심각하다.
따라서 그들은 매한가지로 억압받는가? 그러한 질문은 그 측정을 위한 잣대가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함축한다.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동성애를 용인하지 않는 태도는 시민권 시대의 여파 속에서 다시 나타난 흑인 민족주의 이데올로기의 특징이었다는 점이다. “동성애는 아프리카 중심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난 것인데, 그 이유는 동성애로 인하여 개인이 자신의 육체적 요구를 국가적, 민족적 의식의 함양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라고 템플 대학의 몰레피 케테 아산테 (유명한 흑인 대중 저술가, 학문적으로 중요한 사람이라기보다는 일개 선동가에 불과하다.) 박사는 주장한다. 이 대학은 미국 내에서 흑인 연구 계획을 주도하는 가장 큰 대학 중의 하나다. 아산테는 “우리는 더 이상 서구의 퇴폐 사조에 의해 우리의 사회적 삶은 조종당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그리고 아프리카 중심주의가 주는 회생의 힘은 고통받는 사람들의 의지를 민중 전체의 집단 의지에 봉합함으로써 그들에게 치유의 희망을 안겨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논리는 유감스럽게도 파시스트들의 소리로 들린다.)
끝으로, 쿠비 목사와 그의 불편한 시각을 공유하는 시민권 운동가들의 가련한 수사법이 그들이 항상 내세우는 흑인들 또한 게이일 수 있다는 작지만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당면한 정황 속에서 한 특정한 흑인 게이 남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그 악용되고 있다던 1963년 워싱턴 행진을 느껴본 사람들이 그에 대해 잊어버릴 수 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 영웅적인 행진을 조직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은 물론, 베이야드 러스틴 Bayard Rustin이다. 그리고 그가 여전히 살아있다면 30년 후의 워싱턴 행진에도 참여했을 지 모른다. 이 통렬한 역사적 아이러니에 의하면 그의 동성애는 감출 수 없는 중대한 부분이었기 때문에 - 그것이 63년 집회 조직에 있어 행진의 평판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 63년 행진 지도자 명단에 그의 이름을 올리는 것이 금지되었고 그 명예는 필립 랜돌프(흑인 급진주의 운동가)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랜돌프는 러스틴을 자신의 대리인 자격으로 임명한다는 조건 하에서 대중 저항을 조직했던 그 불요불굴의 업적을 받아들였다.
러스틴 또한 그러한 제안을 즉시 받아들였다. 1963년, 러스틴에게는 저항해야 하는 두 가지 까닭 모를 편견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일 수 밖에 없었고 그는 씁쓸해하거나 맞받아치지 않고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한 일이 있고나서 30년 후 사람들은 다시 행진했지만 그의 후계자들은 그 값비싼 선택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200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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