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nkatology

<Funk> 18 - 훵크와 소울 비밥

Baron Samdi 2016. 6. 24. 13:15

훵크와 소울 비밥


훵크와 소울이 음악적으로 리듬 앤드 블루스의 직계라면, 훵크와 소울의 이상(理想)은 재즈로부터 왔다. 2차 세계 대전은 더 깊고, 더 지적이고, 인습에 저항하는 음악의 탄생이 가능했는데, 이 때 주로 흑인들이 연주하던 음악이 비밥이다. 이 음악은 사운드 면에서 전혀 부드럽지 않았다. 사실 이 음악의 사운드는 들쭉날쭉했고 톤은 비밥이라는 이름 그대로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이리 튀고 저리 튀었으며 괴상하고 즉흥적인 정서가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바로 밥의 사명이었으며, 스윙의 단조로움이나 점프 캄보(소규모 흑인 댄스 악단), 리듬 앤드 블루스의 연극성에 대한 반동으로써, 이 진정코 지성적인 미국 흑인의 예술적 표현은 도시의 깊은 밤 속에서 숙성되었다.

 

밥을 연주했던 진지하고 체계적인 음악가들은 백인들이 따라하지 못하는 음악을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몇 년 뒤, 서부 해안에서 보다 “쿨 cool"이라고 불리는 보다 듣기 좋은 재즈 장르가 나타났다. 쿨은 일반 청취자들에게는 보다 접근하기 쉽고 흥얼거리기에도 좋은, 그러면서 무엇보다도 백인들이 연주하기 좋은 음악이었다.

 

“쿨”은 종종 “소울”이나 “훵크”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던 “하드 밥”의 저항을 받는다. 그 음악은 시끄러웠고, 한 개 정도의 코드로 연주되었으며, 흑인들의 소박한 경험에 대해 노래하는 가스펠 스타일을 종종 차용하기도 했다. 드러머 아트 블레이키와 피아노 주자인 호레이스 실버는 재즈의 경향 속에서 “훵크”로 교유하게 되었는데, 여기서 “훵크”는 흑인들의 뿌리로 되돌아가려는 운동이었다. 반면 색소폰 주자 아치 셰프와 같은 다른 연주자들은 흑인들의 삶과 문화에 나타나는 남부 흑인들의 스타일을 무대 위에서 통렬하게 비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50년대 후반까지 재즈 뮤지션들은 블루스 가수들을 대체해 음악적 저항의 기수자리를 차지했다. 소니 롤린즈의 "Freedom Suite", 맥스 로치의 선구적인 "Garvey's Ghost", 그의 아내 애비 링컨과 함께 한 "We insist - The Freedom Now Suite" 그리고 아치 셰프의 "Malcolm, Semper Malcolm" 등과 같이 정치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는 곡들이 이러한 조류에 속한다. 남부 흑인적인 취향은 "Black Groove", "Filet of Soul" 그리고 “Ribs and Chips"와 같은 곡들에 녹아들었는데, 이 모두가 재즈에 대해 새롭고 연속적인 충격을 주었다. 이것은 재즈를 엄연한 흑인적 표현양식으로 재창조하려는 꾸준한 움직임이었다.

 

이로서 하드 밥을 지칭할 용어는 “훵키”가 되었다. 흑인 재즈 뮤지션들은 그들의 무기인 훵크로 마침내 흑인들 자신에 고유한 것을 갖게 되었다. "Barrel of Funk","Big Hunk of Funk", "Waltz de Funk","Funk Underneath","Opus de Funk" 그리고 그 밖의 모든 곡들이 흑인들의 독창적인 관점에서 형성된 것이다. 프랭크 커프스키 Frank Kofsky가 설명하기를,

훵키는 다른 많은 외래어들과 같이 (chozzerei, shlemeil, mensh, mazel tov 그리고 다른 많은 유대인어와 같이) 흑인들의 독특한 표현양식이다. 표준 영어에서는 훵키와 정확한 동의어는 찾을 수 없다. 따라서 어떤 곡이나, 노래의 구절 혹은 연주자가 “훵키”하다함은 일반적인 칭찬일 뿐만 아니라 그 칭찬의 대상이 구체적으로 탁월한 흑인성을 갖췄다는 찬사이기도 하다.

훵크는 너무 널리 퍼져서 다소 빠르게 남용되었고 “소울”이라는 단어로 대체되기도 했다. 찰스 밍거스의 곡 “Better Git In Your Soul”은 그 사운드의 기원이 어디인가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소울 음악의 대중적인 유행이 라디오 방송을 강타하기 한참도 전에 이 “소울 브라더”(찰스 밍거스)는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초반까지의 재즈 클럽에서 그러한 스타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1950년대에는 흑인 음악가들이 그들의 뿌리를 찬양하기 위해서 비밥과 같은 지성적인 형태의 음악을 하는 것은 실제로 꽤 급진적인 것이었다. 이러한 고급 문화에 관한 널리 알려진 지혜는 고급 문화가 “하층민들”과 동떨어져 있고, 재즈라는 고급 예술은 기층 흑인 민중들의 일반적인 블루스적 취향과는 하등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이 두 개의 미학 (블루스 미학과 재즈 미학)의 융합은 흑인 의식에서의 혁명을 대변했다. 리로이 존즈에 따르면 하드 밥 운동은 “흑인 혁명”의 주춧돌을 놓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다. 존즈의 설명에 의하면,

금세기 초, 흑인들의 북부 이동만큼이나 흑인 정신성에 있어서도 진보가 있었다. 지울 수 없는 수치심의 원천이라기보다는 “뿌리”라는 값진 재산을 가진 검둥이라는 관념은 아마도 금세기 초까지의 흑인 의식에서 일어난 가장 심오한 변화였을 것이다.

 

1950년대 후반 흑인 민권 운동의 여명기에서 재즈를 보는 관점에서도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 또한 의미심장하다. (아트) 블레이키, (호레이스) 실버 등의 아티스트들이 인종차별 철폐를 위한 정부 정책이 장점은 있으나 미심쩍다고 예견했던 것처럼, 그들은 이 인종간 융화가 시작되던 시기에서 환영처럼 자신들의 뿌리들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960년대에 이르러 형식적으로나마 더 넓은 범위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많은 인종 분리를 위한 제도들이 붕괴되고 훵크가 대중성을 획득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사건이었다. 흑인 민중의 뿌리에 대한 긍정뿐만 아니라 기술적인 정열에 의해 형성된 하드 밥의 이데올로기가 1960년대에 등장할 음악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훵크는 재즈 뮤지션들의 “흑인 의식 Black Consciousness" 즉, 흑인 혁명을 확증하게 될 의식을 향한 진보의 아주 필수적인 요소였다.

 

1960년대는 정치적, 지역적 그리고 경제적 장벽을 뛰어넘어 빠르게 변화하는 투쟁에 기여하던 흑인 민중들과 음악을 통하여 흑인들의 단결과 인종적 자부심을 과시하게 해주는 상징을 결합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특히 훵크는 다양성과 변화 속에서 성장하는 단결력 - 위대한 통합의 정신을 반영한다.

 

(2009/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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