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nkatology

<Funk> 15 - 일자

Baron Samdi 2016. 6. 24. 13:09

일자(一者) The One.

* 역자 주 : 여기서 "일자"를 신플라톤주의적 의미에서의 철학용어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 리키 빈센트는 "일자"를 조야하게 해석해서 이 책 전반에 걸쳐 흑인의 순수한 총체성의 구현, 때로는 나치의 퓌러와도 유사한 인격적인 형태로 (물론 마커스 가비나 제임스 브라운이겠지만)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아프리카에서 유래한 가장 중요한 유산은 리듬을 우주적 수준으로 고양시키고 무아경에 도달시키려는 필요성, 작곡에서의 영적 요소들일 것이다. 아프리카 음악, 가스펠 음악 그리고 재즈는 이것을 성취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며 이 전통은 훵크에 의해 지속되고 있다. 전통적으로 서아프리카 음악은 멜로디를 강조하지 않는다. 음악은 리듬 그 자체를 강조한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일자”를 순환한다. 드럼 비트의 고동치는 물결은 청중/ 참여자를 점점 스며드는 긴장의 정점을 유지하여 춤을 추도록 종용한다. 이 때 춤을 추는 사람은 총체적인 집단 경험에 또 다른 리듬적인 기여를 제공하는 것이다. 아프리카의 음악적 경험에서는 모든 이들이 포함된다. 왜냐하면 모든 이들의 개인적인 리듬이 총체적인 바이브를 구성하는 데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모두는 더 위대한 전체의 일부로서 참여한다. 짜맞춰지고 즉흥적인 리듬은 모든 사람들을 하나의 그루브로 합치시킨다. 궁극적으로 “하나가 됨으로써” 연주는 태고적의 리듬 패턴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그루브에 참여하는 모든 참여자에게 본질적인 개방성을 역설한다. 짜맞춰져 있지만 유동적이며 모든 것이 하나가 되었을 때 모든 사람들의 조화가 성취된다. 무대 위에서 “하나가, 모든 이들이 하나가”라는 조지 클린턴의 노래가 들릴 때, 그는 그의 밴드와 박자를 맞추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맞추고 있으므로), 모든 무대를 하나로 만들어주는 리듬의 결합을 음미하고 있는 것이다.

생생함, 창조성, 혁신 그리고 당연하게도 자발성은 흑인 음악의 주요한 요소이며 각각의 미국 흑인 세대가 그들 세대의 건실한 상태를 대변해주는 미학에 대한 척도였고 현재에도 그러하다. 1970년대가 오랜동안 음악적인 사망 상태로 여겨져 온 반면에 훵크 운동은 더 규모가 큰 밴드들, 제임스 브라운 밴드의 동시적인 리듬들, 음악적 공간을 채우기 위한 전자음악과 어쿠스틱 음악을 겹쳐 사용하는 것, 춤과 연주 그리고 부르기와 응하기 같은 집단적 참여로 향한 신중한 운동이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훵크는 선행하는 전통들 중 가장 최선의 것을 조직하고 축적하려는 음악이며 또한 그런 것을 하는 최후의 흑인 음악이다.

불행히도 1980년대까지는 우리도 알다시피, 경제성은 큰 규모의 밴드를 불가능하게 했고, 디스코가 가져 온 음악적 제한은 밴드의 규모를 줄여놓았으며 더 나아가 소울풀한(아프리카적인)특성을 소멸시켰다. 훵크는 흑인 민속 문화의 오래된 면모를 무기로 사용함으로써 이러한 순응주의적 현상에 대한 총력을 기울인 전투를 수행했다.


훵키 블루스.

노예들이 고함치고 외치던 시절부터 교회 부흥회의 소란스러움, 불볕 더위 폐점 시간의 즉흥 연주 소리, 힙합의 프리스타일 대결에 이르기까지 흑인 민중들은 그들의 훵키한 습성을 드러냄으로써 그것을 지속시켜 왔다. 노예 상태로부터 풀려나자, 미국 흑인들은 그들에게 알맞은 악기들로 그들만의 표현양식을 발전시켰다. 하모니카, 바이올린 그리고 기타와 초기 블루스에서부터 관악기들과 초기 재즈에 이르기까지 흑인 민중은 그들의 시간, 공간 시대를 재현하기 위해 음악을 개성의 표현수단으로 이용하고 또 연주했다.

땀이 흘러넘치는 토요일 밤 예배의 초기 블루스 곡은 동쪽으로 수천 마일 떨어진 아프리카의 음악들과 본질적으로 같은 효과를 발휘했다. 두드러지게 드럼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어휘와 우상들과 의례용 춤 등에서 미국의 아프리카 인들은 그들의 전통을 지속시켜왔고 그들의 낮고 더러운 삶의 양식들을 의례화시켰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의 모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컨트리 블루스가 문자 그대로 남부 목화밭에서 토요일 밤 열리는 파티로부터 성장해 온 다음부터, 그리고 (소위 재즈라고 알려진) 악기로 연주되는 블루스가 세기의 전환기에 도시 거주 흑인 음악가들의 손에 들어간 관악기에 의해 발전된 다음부터, 1차 세계대전 동안 이루어진 흑인들의 도시화는 뉴욕, 캔자스시티, 시카고 그리고 세인트루이스와 같은 도시에서 조밀한 음악 시장을 창출해내었다. 베시 스미스 Bessie Smith, 매미 스미스 Mamie Smith 그리고 수많은 다른 흑인 여성가수들의 최초의 상업적 녹음 음악인 “고전 블루스”는 성적으로 미숙한 사람들에게는 외설스러운 처사였다. 베시 스미스는 더욱 우울하고 비탄에 잠긴 블루스 곡으로 명성을 쌓아가면서도 “Need a Little sugar in My Bowl”과 “Sweet Jelly Roll Like Mine” 그리고 “My Daddy Rocks With Me a Steady Roll”과 같은 곡들을 통해서 관능적인 면모를 표출할 수 있었다. 당시의 “Jelly Roll”이라는 단어가 오늘날 "Coochie"(여성의 성기를 뜻하는 남부 방언)와 동의어였던 것처럼, 암시적인 단어를 사용한 유희가 유행이었다. 미시시피 강 삼각주(뉴 올리언스) 출신의 루이 암스트롱과 같은 핫 재즈는 비평가들을 위협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흑인 음악race music의 잠재력에 관심을 돌리게 한 최초의 아티스트들 중의 하나였다. 핫 재즈 악단이 코튼 클럽(뉴욕의 재즈 클럽)의 백인 관객들이 흑인 음악을 찾도록 만드는 한편, 소울풀한 고전 블루스곡 음반들은 흑인 음반 시장을 형성하면서 평범한 민중, 특히 랠프 엘리슨이 묘사한 바와 같이 흑인 민중의 경험을 받아들이고 함께하는 사람들의 관심을 촉발시켰다.

 

(2008/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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