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듬 앤드 블루스
리듬 앤드 블루스는 1940년대까지 미국 흑인 사회에 널리 퍼진 음악이었다. 스윙 밴드는 (대규모 인원으로 말미암아) 유지되기 힘들었기 때문에 루이스 조던의 팀파니 파이브와 같이 규모가 적은 도시의 “점프 캄보 jump combos”들은 (춤 - 연주 - 스캣 - 연주 - 탭댄스 - 연주 - 관악기 솔로 - 연주로 이어지는) 공연에 주안점을 두었다. 특히 에너지는 넘치지만 가진 것은 없는 시골의 소규모 흑인 댄스 밴드들이 전국적인 흑인 연예계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30년 후의 훵크 밴드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시끄럽고 거친 남부 스타일의 R&B는 이 달콤하고도 씁쓸한 수원지(소규모 흑인 댄스 밴드들)로부터 나온 것이다. 신나고 시끄럽고 소울풀한 음악에 목마르고 하루 종일 노동에 시달리던 사람들은 이러한 음악들로 춤추고 마시며 고된 밤을 이겨냈다. 음악의 명인이 따로 필요하지는 않았다. 다만 가슴으로 느끼는 외침, 소용돌이치는 색소폰, 격렬한 기타만 있으면 되었으니까. 리듬이 고동치고 가수가 충실하게 노래를 불러주는 한, 음악은 제 몫을 다한 것이며, 하루 동안 흑인들이 겪었던 고난은 씻겨 내려갔다. 리로이 존스가 “사람들의 삶 사이에 의미있고 감성적인 끈을 돈독하게 해주는 진정한 상스러움”이라고 표현했듯이.
리듬 앤드 블루스의 진정한 상스러움은 훵크의 주요한 요소가 되었다. R&B가 원래의 농촌 지대의 소규모 댄스 엔터테인먼트로부터 마침내 정치적으로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 리듬 면에서는 더 정교해진 형태를 이루어냈듯이 말이다. 제임스 브라운의 남부 스타일 R&B가 생생한 힘과 보다 정련되고 섬세한 모습을 갖춰 나감에 따라 음악이 (훵크로) 통합되려는 과정은 시작되었으며, 리듬 앤드 블루스는 성숙해졌다.
그러나 현재의 훵크와 힙합처럼, 지식인들은 리듬 앤드 블루스 또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에게 그것은 블루스 피플, 즉 돈도 없고 별다른 지식도 없는 사람들을 위한 음악일 뿐이었다. 반면 2차 세계대전 이후 음악 비평계 내에서의 흑인 지식인들의 활동은 재즈 미학을 옹호하는 것이었으며 이는 리듬 앤드 블루스가 대중 음악계에서 고집해왔던 것에 대한 거의 일반적인 배타주의일 뿐이었다. 예술적 형태라기보다는 연주자들 간의 매개체로 보이는, 못 배우고 세련되지 못한 사람들의 음악이었던 R&B는 일반적으로 매도당해왔다. 심지어는 전설적인 트롬본 연주자이자 밴드 지휘자였던 프레드 웨슬리 또한 카운트 베이시의 빅 밴드에 들어가고 싶어 “안달난 재즈 맨”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했으며 “제임스(별다른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제임스 브라운으로 보인다.)와 함께 돈을 벌러 밴드에 들어갔고 훗날 아주 많은 사람들이 그 밴드에 들어간 것이 그들의 삶을 바꿔놓았다고 말해준 다음에야 비로소 내 행동이 특별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재즈 평론가 밥 포터의 1971년 글처럼 말이다.
꽤 오랜 시간 동안 R&B는 나쁜 재즈로 폄하되어왔다.... 그러한 차이가 생겨난 이유는 거의 모든 지적 자원들이 현대 재즈를 연구하는 데 할애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는 R&B가 나쁜 재즈라는 평가는 옳다. 왜냐하면 R&B가 뉴 올리언즈, 시카고, 캘리포니아의 각처에서든 분석을 위해서가 아니라 즐기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연필과 채점표를 들고서는 결코 R&B를 즐길 수 없을 것이다.
좀 더 과격한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신장되었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전국을 “로큰롤”로 들뜨게 했던) 척 베리, 리틀 리차드 그리고 보 디들리와 같은 정력적인 흑인 창작자들의 천재성은 대부분 무시당했다. 1960년대에 소위 “브리티쉬 인베이전”을 주도하던 영국의 로큰롤 밴드들(비틀즈, 롤링 스톤즈 등)이 그 원조 격인 흑인 리듬 앤드 블루스 연주자들에게 존경을 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리듬 앤드 블루스의 이미지, 명성, 전통은 여러 해 동안 미국인들의 의식 주변부에만 머물러 있었다. 또한 미국 남부에서 중서부에 걸쳐 흑인 연예인들이 출연하는 싸구려 소규모 나이트 클럽 chitlin curcuit에서 훵크가 태동했음에도 리듬 앤드 블루스는 일종의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여겨지거나 흑인 전통이 아닌 다른 맥락에서 너무나 자주 논의되었다. 더군다나 가스펠과 재즈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았던 5,60년대 R&B의 음악적 발전은 미국 흑인의 영혼을 사로잡았으며 소울 음악과 훵크 음악의 발전에 토대가 되었다. 마치 1950년대 랠프 엘리슨의 소설 <보이지 않는 인간>이 레이 찰스, 제임스 브라운 그리고 소울의 여왕 아레사 프랭클린의 천재성에 영향을 끼쳤듯이 말이다.
(2009/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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