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록 신에서 일어난 반체제 문화의 효과는 음악적인 면에서 오래 지속되었다. 60년대 후반기에 일어난 거대한 록 문화의 변환은 다양하게 나타났다. 재즈, R&B, 팝, 록, 그리고 포크 뮤직의 각기 다른 음악적 전통들은 '전자적 융합'(역자 주 - 전자 악기를 통한 장르의 혼종)을 지향하는 아티스트들에 의해 합쳐지게 되었다. 편곡은 고도로 복잡하고 정교화된 형태로 나타났다. 반면, 음악 자체는 가벼운 조명 쇼, 흡연, 향, 춤 등으로 멀티미디어적인 경험을 하게 되었다. 기술적으로 밴드들은 전기 앰프의 기술과 다양한 전자 악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음악가와 청중들은 집단으로 새로운 관계를 발전시켰으며 청자들은 동일한 라이프스타일과 마약을 공유했다. 아마도 더욱 중요한 것은 새로운 음악이 고도의 지식, 이해, 통찰, 세계에 대한 진실, 사람들의 감정들을 성취해냈는데, 이는 어떤 미디어도 표현하지 못했던 것들로 미디어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들보다 훨씬 우월한 것이었다. 이러한 새로운 요소들은 ‘흑인 록black rock’운동(지미 헨드릭스, 슬라이 스톤, 훵카델릭, 워, 오하이오 플레이어즈, 아이즐리 브라더스, 바-케이스)으로 실체를 갖게 되었고 신속히 훵크의 한 측면을 이루게 되었다.
로큰롤의 세계가 공통된 가치에 기반을 둔 공동체적 생활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열어젖히자, 부족의 회합과도 같은 록 콘서트는 더 큰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더 큰 콘서트들이 야외에서 열렸는데, 그 정점은 1969년 8월의 ‘우드스탁 페스티벌’이었다. (저자 주 - 중산층 백인들의 진흙탕 잔치였던 우드스탁‘94와는 달리, 원래의 우드스탁은 지미 헨드릭스, 슬라이 앤드 더 패밀리 스톤 그리고 산타나와 같이 그 당시 가장 혁신적인 흑인 음악가들의 전시장이었다.) 우드스탁과 다른 거대 콘서트들의 전망은 수백만의 미국인들에게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사회가 변화하고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었다. 이러한 생각의 놀라운 전망에도 불구하고 1960년대에는 어떠한 것도 가능해보이지 않았다. 60년대가 90년대였더라도, 설령 사람들이 그러한 생각을 믿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1970년과 1971년, 지미 헨드릭스, 재니스 조플린 그리고 짐 모리슨의 사망, 롤링 스톤즈의 앨타몬트 콘서트 살인 사건(역자 주 - 롤링 스톤즈의 무료 콘서트 장에서 경호원으로 고용된 폭주족 “헬스 앤젤스” 단원이 관중을 칼로 찔러 죽인 사건), 잭슨 주립대(미시시피 주)와 켄트 주립대(오하이오 주)에서 경관이 학생 시위대에 발포하여 학생들이 사망한 사건, 1972년 전도 유망했던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지 맥거번이 대선에서 패배한 사건 등이 로큰롤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러나 그러한 이상은 여전히 남아있다. 그리고 흑인 음악 속에서는 훵크에 그러한 이상이 생생하게 살아있으며, 변화를 향한 가능성이 영원히 남겨져 있다.
(200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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