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듬 혁명에 영향을 주었던 것은 미국의 사회 혁명이었다. 흑인 음악가들의 인종에 구애받지 않는 역동성, 잘 단련된 다재다능함과 활발함, 시대에 대한 낙관주의, 그리고 사명감에 대한 심오한 감각은 1960년대의 흑인 음악인들이 음악적 전통들을 모두 보존하면서 그리고 다른 전통들을 창조해나가면서 교합하고 관계짓도록 했다. 이러한 피치못할 음악적 상호교합은 음악의 깊이와 넓이에 축복이 되었다. 수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흑인 음악의 특질은 (흑인의) 모국 아프리카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새라 브라운Sarah Brown과 존 모슬랜드John Morthland는 1994년의 컴필레이션(모음곡)CD
본질적으로 제임스 (브라운)은 모든 밴드를 하나의 드럼처럼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또한 아프리카 음악으로 회귀하는 폴리리듬을 창조해냈다. 되돌아보건대 이 모든 것이 활발함과 해방에 대한 두드러진 감각을 야기하는 (리듬과 멜로디의) 역할 역전에 대한 거대한 실험인 듯하다. 60년대 초기에 댄스 음악을 발표하던 음악가들이 자신들을 춤추게 만드는 것을 꺼리지 않았던 것처럼.
1960년대에 갑자기 남부에서 중서부에 이르는 지역의 밴드들 속에서 스타일과 일체감 그리고 도덕적 권위를 갖춘 통일된 형태의 그루브가 전국을 휩쓸었다. 그것은 마치 미국이 부두교의 주문에 걸린 것과도 같았고 새로운 취향의 리듬 앤드 블루스, 록 앤 롤, 소울 그리고 마침내 훵크를 태동시켰다.
피닉스 출신의 다이크 앤드 더 블레이저스Dyke and the Blazers는 1967년 “Funky Broadway - Part I"라는 곡으로 훵크의 페달을 힘껏 차올려 시동을 걸었다. 통통 튀는 베이스와 퍼커시브한 오르간이 주가 된 헤비하고 거친 그루브 ”Funky Broadway"는 “훵키”라고 자신을 소개한 최초의 흑인 댄스 음반이었다. 다이크의 대충 쓴 듯한 가사는 어디에나 있는 브로드웨이들을 찬미했고 대로변의 밤문화nightlife의 거칠고 지저분한 감성은 현실로 다가왔다. 버팔로에서 결성된 다이크의 밴드는 콘서트 투어를 돌던 오제이스O'Jays의 백 밴드를 맡았지만 여전히 근거지 피닉스에서는 뜨지 못한 가수로 남아있었다. (리더인 알리스터 “다이크” 크리스천Arlester 'Dyke' Christian이 1971년 피닉스에서 총에 맞아 사망할 때까지 이 밴드는 훵키한 상황들을 잘 이겨냈었다.)
다이크 앤드 더 블레이저스의 이 “더럽고 지저분한 브로드웨이”는 곧 애틀랜틱 레코드 사의 소울 슈퍼스타 윌슨 피켓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윌슨 피켓의 더 풍부하고 부드러워진 리메이크 곡은 원곡의 훵키한 성향을 잘 포착했는데 이는 라디오 청중들과 전국적인 판매를 위한 것이었다. 피켓의 이 리메이크 곡은 1967년 가을에 발매되어 빌보드 차트에서 8위, R&B 차트에서 1위를 기록하고 가장 많이 팔린 훵크 곡 중 하나가 된다. 피켓은 또한 애틀랜틱 레코드의 성지인 앨라배마 주 머슬 숄즈에서 세션 연주자들을 잘 짜맞추어 팀을 만들어낸다. 베이스의 데이비드 후드David Hood, 드럼의 로저 호킨스Roger Hawkins, 피아노의 스푸너 올드햄Spooner Oldham 그리고 기타의 칩스 마먼Chips Moman이 한 팀으로 아레사 프랭클린, 윌슨 피켓, 조 텍스Joe Tex 등과 당시의 소울 고전 히트곡들을 함께 했다.
그 중 조 텍스는 50년대에는 듣기 좋은 발라드를, 60년대에는 화끈하고 헤비한 리듬 앤드 블루스를 70년대에는 지저분하면서도 경쾌한 훵크를 하는 전형적인 전천후 장르변환transitional 가수였다.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 노래들로 명성을 쌓아가던 조 텍스는 “Show Me", "Skinny Legs and All" 그리고 ”Give the Baby Anything the Baby Wants"같은 감칠 맛 나는 곡들을 발표했다. 조 텍스의 취향은 유별나게 훵키해서 대개 좀 덜 거친 뮤지션들과 작업을 해야 했는데 또한 그는 멤피스의 뮤지션들과 강력하고 외설적이며 또한 유쾌한 히트곡 “I Gotha"를 발표했다. 텍스는 그의 훵키한 이미지를 70년대까지 유지하면서 디스코 시대의 가장 웃긴 음반인 "Ain't Gonna Bump No More (With No Big Fat Woman)”를 77년 에픽 레코드에서, 1978년에는 훵크의 주제의식을 조롱하면서 익살맞은 앨범 “He Who Is Without Funk Cast the First Stone"을 발표했다.
(2009/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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