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에 글이 안 써지는 불상사가 있어 업로드를 못 시켰는데, 여기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다보니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혹시 오래 티스토리를 사용해오신 유저분이 있으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 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2부
어쩌다 자기 음반을 내던 분이 다른 아티스트들의 프로듀서로 일을 바꾸게 되신 거죠? 어째서 솔로 아티스트 활동을 관두신 건가요?
사실은 그 반대로 보셔야 합니다. 원래 저는 밴드 리더가 되려던 사람이다 보니, 스테핑 스톤 Stepping Stone이라는 빅 밴드를 꾸리고 있었어요. 모든 레코드 회사에 데모 테이프들도 보냈었고요. RCA의 로버트 라이트 Robert Wright가 제 데모를 듣더니, “에벌린 킹의 프로듀서 일 좀 맡아볼 생각 있나요?”하고 묻더라고요. 물론 몇 곡이 히트를 쳤죠. 그래서 클라이브 데이비스 Clive Davis (명 프로듀서 겸 아리스타와 컬럼비아 레코드 회장을 역임 – 옮긴이)에게서 전화를 받았어요. “자네 생각이 나서. 자네 데모를 얼마 전에 몇 곡 들어봤는데 맘에 드네. 우리 회사에서 일 좀 해줘.” 그게 시작이었어요. 그때 스튜디오 안이었는데, 아마 하워드 존슨 Howard Johnson 내지는 멜바 무어 Melba Moore와 작업을 하고 있었을 겁니다. 그때 마침 클라이브 데이비스에게서 전화를 받았고요. 그 분 전화를 받는다는 게 무슨 뜻이겠습니까? 당연히 마음을 굳게 먹고서 그랬죠. “좋아, 나는 할 수 있어, 안녕하십니까, 클라이브 선생님.”
그 이후에 나온 첫 솔로 앨범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시죠.
아시다시피 첫 앨범이 히트하게 되면, 차기작은 아주 주목을 받게 됩니다. 첫 앨범이 성공하고 나서, 투어를 도는데 다들 극성스럽게 손을 벌립디다. “다음 히트곡도 써놓은 것 있죠? 그거 우리 좀 줘요. 좀 줘요.” 그래서 2집 때는 마음을 굳게 먹었어요. 이런 식으로요. “내가 눈길 한번 주나봐라. 나는 내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고.”
그래서 일단 저만의 개인적인 감정에 충실해지기로 했죠. 그래서 2집은 좀 더 자전적인 요소들을 담아냈어요. 그래도 항시 심정상의 갈등 a tug and pull이 있는 법이지요. 투어를 돌면서 수만 명의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하느냐? 아니면 스튜디오에 남아 다음 아티스트의 다음 히트곡을 걱정하느냐......
휘트니 휴스턴의 데뷔 반 작업은 어땠습니까?
아주 재미있는 경험이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데 1년이 걸렸지만요. 클라이브가 휘트니를 처음 제게 데려왔을 당시, 카바레 쇼에서 노래를 하고 있었대요. 그래서 “가창력은 좋은데요. 썩 마음에는 안 들어요. 그 친구와 작업을 해야 되는 겁니까?” 그 뒤에 마이크 더글러스 쇼 무대에서 휘트니가 노래 부르는 모습을 봤어요. “Somewhere Over The Rainbow”을 부르는데, 그때 무릎을 탁 쳤죠.
위대한 작곡가인 랄라 La La (본명은 La Forrest Cope, 유명 작곡가 – 옮긴이)아시죠? 그 랄라가 곡 하나를 써서 로버타 플랙에게 보낸 적이 있어요. 그리고 전화해서 물었다나 봐요. “제 곡 들어보셨어요?” 그러니 로버타의 비서가 사람 띄엄띄엄 보면서 하듯이 그랬겠죠. “네, 저기 다른 데모들과 같이 쌓여있네요.” 랄라는 멘붕이 왔겠죠. 로버타 플랙은 그 친구 우상이었으니까.
랄라한테 “랄라, 오늘 무슨 일 있어요?” 이 여자가 묵묵부답이에요. 그래서 “이봐요. 오늘 영 안 돼 보여서 그래요.”하니까 털어놓습디다. “제 노래를 로버타 플랙에게 보냈는데, 저한테 이런 말을 하잖아요.”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어디 들어나 봅시다.” 랄라가 연주를 하면서 들려준 곡이 바로 ‘You Give Good Love.’ 들어보고 제가 그랬어요. “이 곡 대박 히트할 겁니다.” 곡을 좀 더 매만지고, 이렇게 저렇게 바꿔도 보고 이리저리 맞춰 보기도 해서 나온 곡이 휘트니 휴스턴의 성공에서 첫발을 내딛게 해준 바로 그 곡이죠.
그 앨범의 “Thinking About You”라는 곡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시겠어요? (카쉬프가 휘트니 휴스턴과 함께 부른 곡 – 옮긴이)
그것도 랄라가 쓴 곡 중 하나인데요. 휘트니가 노래해봤을 때, 물론 말이 필요 없지만 좀 다른 느낌이 있었으면 했어요. 어쨌든 그 다른 느낌이란 게 제 목소리인 것 같아서 노래를 해봤더니 휘트니도 썩 마음에 들어 하대요. 그 곡 작업은 정말 따스하고 편안하면서도 느끼는 바가 많은 경험이었습니다.
“Love Changes”라는 곡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세요. 그 곡 이후로 선생님께서 전혀 다른 스타일을 창조하셨다고 볼 수 있는데요.
“Love Changes”는 원래 마더스 파인스트 Mother’s Finest라는 밴드의 곡입니다. 끝내주는 밴드죠. 70년대 즈음에 투어를 와서 가본 적이 있는데 노래가 정말 좋았어요. 그래도 프로덕션 작업이 곡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끌어냈다고 보긴 어려웠어요. 제가 휘트니와 클라이브에게 곡을 보냈더니, 클라이브는 “휘트니 걔가 이 방식대로 하는 걸 좋아할지 모르겠어. 이게 히트를 칠지도 계산이 안서네.” 그래서 이 곡을 멜리사 모건 Melisa morgan과 녹음했어요. 그리고 녹음한 곡을 클라이브에게 다시 보냈죠. 그랬더니, “카쉬프, 내가 틀렸어. 여기 있는 모든 스태프들이 입을 모아 그러네. 곡이 굉장하다고.”
음악적인 방향에 관해서라면, 저는 우리가 아티스트인 동시에 탐구자라는 생각이 있었고요. 또 개척자들이기도 했죠. 그냥 퍼질러 앉아서 비슷한 곡이나 계속 찍어대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 일들을 통해서 제 음악들을 즐겨왔던 것 같아요. 제대로 된 팝 히트곡들도 만들었고 댄스, R&B, 팝, 발라드 가릴 것 없이요. 심지어 듀크 엘링턴의 앨범도 프로듀스해봤어요. 제대로 된 빅 밴드 말이죠. 스타일을 바꾸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항상 탐구하는 자세가 중요한 거예요. 개척자로서 말예요. 꾸준히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게 제 정체성을 말해줍니다.
교육에도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쏟아 부으셨는데요. 가르치는 일이나 지역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는 일들이 음악을 만드는 데 중요한 일인가요?
보호자가 없어 관심이 필요한 어린 친구들과 하는 일들에 인생을 걸었다고 얘기하고 싶네요. 왜냐하면 저도 처음에 그렇게 시작했으니까요. 사는 게 힘들었어요. 그런 친구들 중 대부분이 아직까지 팍팍한 삶을 살고 있어요. 제가 그 친구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재능을 나눠주고, 돈도 좀 써서 그 친구들이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해지고 사는 데 동기부여가 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 일을 하면 제가 기쁜 마음이 들거든요. 그래서 하는 겁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 일을 하려고 제가 이 땅에 태어났는지 몰라요.
R&B의 역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작업도 해보셨죠?
그래요. 10부작 다큐멘터리였죠. <세계 문화 속의 R&B와 그 역사 The History of R&B music, and its influence on world cultures.>라고 하는 건데. 다른 나라 사람들이 모타운의 곡들을 모르고 산다는 거 아세요? 개인적인 호불호는 중요하지 않아요. 나는 이거 좋아. 나는 저거 싫어 이런 거 말이죠. 어느 누구라도 아무런 이유 없이 철저한 인종주의자가 될 수도 있겠죠. 하지만 탁월한 음악이라면 어떨까요? 아무런 이유 없이 싫어하지는 않을 겁니다. 스킨헤드족으로 살 수도 있고 거리를 걸으며 마빈 게이의 노래를 부를 수도 있어요. 이런 탁월한 음악들로부터 사람들은 에너지와 영감을 얻으니까요. 거기에는 재론의 여지가 없어요. 아름다운 여성분들을 봐도 다 그렇잖아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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