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벌새, 2019
올해 현재까지 봤던 영화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영화가 바로 <벌새>다. 회고적이되, 시대에 빠져들지 않고 현재에 호소하는 강렬한 미감을 갖춘 영화. 유사한 창작 계통 종사자로서 바다 건너의 거장들보다는 곁에서 '클래스'를 보여주는 동료 창작자들이 더 아득하고 무섭게 느껴진다. 이 건 어떻게 찍었을까, 나라면 어떤 디렉션을 주었을까 하면서 보다 보면 남는 것은 전율뿐이다. 균질하고도 폐쇄적인 강남, 그것도 특정 아파트라는 공간에서 얼굴을 바꾸며 나타나는 가부장제의 숨 막힘, 또 그 안에서 소소하게 저항하려는 의지, 여성들 간의 연대 같은 드라마가 잘 응축되어 있다. 언니가 몰래 데려온 남자 친구 때문에 자기 방에서도 편안하게 쉬지 못하던 은희가 서예 학원의 여선생님, 또 입원이라는 뜻하지 않은 계기로 여성 병실이라는 작은 공동체에서 위안과 안식을 얻는 모습이 마음에 많이 남는다. 이 은마라는 폐쇄적이고도 균질한 공간에 균열을 내는 계기가 바로 성수대교 참사다. 질서와 규율, 줄 세우기를 반복하면서도 정작 학교에 가는 학생들의 목숨을 구하지 못하는 사회가 보여주는 아이러니. 무신경과 탐욕의 무정부성이 불러온 사회적 참사 속에서 청춘을 키워온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이 영화의 테마인 것 같다. 한 세대에 호소할만한, 매우 보편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 (*****)
12. 13시간, 2016
2012년 리비아 벵가지 테러를 다룬 영화. 마이클 베이와 존 크래신스키가 참여했다는 점에서 <잭 라이언>의 외전 같은 영화다. 크래신스키의 작중명이 성은 달라도 '잭'이라는 점도 같다. 이 영화를 보며 떠오른 것은 익숙한 배경, 익숙한 설정, 유명 컴퓨터 게임 <모던 워페어 리부트>였다. 게임 같은 오락성과 당시 정세에 대해 미국의 일방적인 시각에서 알기 쉽게 재구성했기 때문에 첩보물이나 밀리터리물을 좋아하는 영화 팬은 매우 만족할 만한, 영화 잡지에서 보통 믿고 별 세 개 반을 주는 최고의 오락영화다. (***1/2)
13. 브라보 재즈 라이프, 2010
얼마 전에 일본 재즈에 대한 문헌을 읽었기 때문인지, 왜 한국은 일본처럼 재즈가 뿌리를 내릴 수 없었나 하는 고민을 보는 내내 떨칠 수가 없었다. 일본인들은 일본 재즈신을 본고장 미국에 비교하며 터무니없이 저변이 약한 마이너리그처럼 엄살을 부리지만, 한국 재즈 신은 그보다도 비할 바 없이 처참하다. 나로서도 일본의 대 아티스트들은 잘 알고 있어도, 한국 재즈 신에는 어떤 아티스트들이 활동 중인지 잘 몰라서 부끄러운 마음뿐이다. 제일 마음에 남는 장면은 이동기 선생님의 인터뷰였다. "한평생 열심히 살았다. 쉬지도 않고 일했다. 그런데 이건 돈이 모아지지 않는 직업이다. 나는 언제 사람이 되느냐, 음악 할 때 사람이 된다. 나는 나팔 쟁이니까." 재즈로 인한 한 인간의 모든 희열과 좌절이 응축된 것 같은 멘트였다. 뭔가 선생님의 빠진 옆니만큼이나 신산한 삶을 엿본 것 같아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재즈가 도대체 무엇이기에 인생을 거는가. 그게 과연 인생을 모두 걸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었나. 조금만 기교를 부리면 더 편한 길을 갈 수 있었던 사람이 어떤 내면의 뜨거움으로 인해 험난한 구도의 길을 택하는 모습을 볼 때 언제나 숙연해진다. (****)
14. 플래시댄스, 1983
영어 대사가 나오지만 방화 같은 영화. 80년대에는 엔터테인먼트가 부족해서 이런 영화를 재미있다고 봤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내용보다는 80년대 명곡 메들리 같은 사운드트랙이 더 유명해서 팝 팬으로서 향수는 자극할지언정, 영화로서는 추억으로 소비하기에는 시대착오적인 슈가대디물. (*)
15. 월드 워 Z, 2013
맥스 브룩스 원작 소설의 거대한 스케일을 살려내려면 천문학적인 제작비가 들었겠지만 초반부터 헐리웃 특유에 가족 서사와 인물의 동선을 따라가면서 좀비 재앙의 진원지를 파악하는 굉장히 영리한 서사 전략을 선택했다. 이렇게 된다면 원작 소설과 좀 달라진 얘기를 통해서 외전 같은 재미도 준다는 게 또 다른 장점이 된다. 여러모로 좀비 영화에서는 수작이라 꼽을만하고 현재와 같은 팬데믹 상황에서 좀 더 공포스럽게 다가오는 구석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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