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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bby Nunn - Don't Knock It (Until You Try It) (1983)

Baron Samdi 2022. 6. 21. 11:31

만연한 오해와는 달리, 많은 팬들이 애호하는 모던 R&B, 소울의 시대인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중반에 이르는 시기는 사실상 모타운의 전성기가 끝났을 때였다. 나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모타운의 전성기가 끝나가는 시점을 1975년, 그러니까 잭슨 5가 에픽으로 이적했을 때로 보고 있다. 디트로이트에서 캘리포니아로 옮겨와서 메이저 레이블과 경쟁하며 재정난과 인력 유출에 시달리던 때에 혜성같이 천재 가수이자 인스트루멘털리스트가 등장하는데 그의 이름은 릭 제임스. 그리고 다소 비슷한 이미지의 천재 가수, 작곡가 겸 인스트루멘털리스트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Bobby Nunn이다. 바비 넌은 1952년 뉴욕 주 버펄로 태생으로 어릴 적부터 혼자서 곡을 쓰고 수많은 악기들을 다뤘으며 엔지니어로서도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아들의 가능성에 주목한 넌의 아버지가 주택 지하에 레코딩 스튜디오를 직접 짓고 MoDo라는 이름의 레이블을 론칭해서 Bob & Gene이라는 아들과 아들친구 듀오의 앨범을 직접 발매해줬다. 투어 일정으로 버펄로에 방문한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의 필립 베일리의 눈에 띄어 나중에는 모타운과 계약해서 활약한다. 몰락해가는 모타운에 천재가 둘이나 나왔지만, 80년대 초반은 프린스를 필두로 한 미네아폴리스 군단, 그리고 그보다 스타성은 떨어지지만 업계 장악력은 더 뛰어났던 지미 잼 앤드 테리 루이스의 플라이트 타임 프로덕션의 소위 '미네아폴리스 사운드'의 등장으로 상대적으로 덜한 주목을 받았다. 릭 제임스는 훗날 MC해머나 데이비드 샤펠에 의해 약간의 재조명이 있었던 반면, 바비 넌은 80년대 소울/ 훵크 좀 들었다고 하는 사람도 히트 싱글 "She's Just A Groupie" 정도나 기억할 정도로 존재감이 희미해지고 있다. 시장을 공략하기에는 천재성에 비해 떨어지는 대중성, 릭 제임스보다 떨어지는 스타성 등이 발목을 잡았던 비운의 천재 같다. 

 

80년대 아티스트들을 각별히 좋아해서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인데, 그 중에서도 맹목적으로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미국 한정) 예전에 오브라이언과 바비 넌이다. 특히 <Private Party> 앨범과 특히 "Don't Knock It"을 처음 들었을 때, 어떻게 이런 곡을 쓸 수가 있으며, 세월 속에 묻혀 있을 수 있는가, 큰 충격을 받은 기억이 있다. 사람마다 취향이 달라서 '뭐 이 정도 가지고 명곡이라 호들갑 떠느냐'라고 할 수 있겠지만 미디도 없던 시절에 아날로그 방식의 멀티 트랙 레코딩으로 여러 악기들의 레이어를 복잡다단하게 엮어서 원하는 사운드가 나올 때까지 집요하게 구축해내는 역량은 천재라는 말이 아니고서는 표현할 수가 없었다. 가사는 좀 유치하지만 곡의 만듦새는 유치함과 거리가 멀다. 이 정도로 충일한 구성을 갖춘 댄스 트랙은 현재로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