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음악은 인종주의의 사악한 요소들을 폭로하고, 팝과 관련한 대화 속에서도 인종주의의 문제들을 거론할 수 있는 관용과 진리의 열린 공간을 창조해냈다. 인종주의와 관련해서는 제임스 브라운보다 슬라이 스톤이 더욱 토론에 적합한 주제인데, 그 이유는 슬라이야말로 1970년대가 밝아오는 여명기, 미국의 팝/록 신에서 인종주의의 문제에 부닥친 많은 인물들 중에서 무엇보다도 적합한 사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슬라이가 사라지자 팝 음악계에서 인종 문제에 대한 얘기들도 사라져버렸다. 슬라이 스톤이 흑인 음악계에 몰고 온 충격은 당시의 제임스 브라운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보다도 컸다. 브라운이 흑인 게토를 떠나본 적이 없는 일반적인 흑인 민중들과 동일시되었던 반면, 슬라이는 이 새로운 (인종, 문화의) 용광로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대변했다. 그렇기에 스튜디오 뮤지션들에게는 대부(제임스 브라운)의 진지하고 인종적 의식으로 충만한 음악을 따라잡는 것보다 전염성이 있고 명랑한 슬라이의 팝 사운드를 모방하는 편이 훨씬 수월했다. 슬라이의 주도 하에 70년대 초반의 댄스 음악은 소울풀하고 훵키한 폴리리듬과 외치는 듯한 리프를 차용했으며, 60년대의 소울 사운드의 허물을 영원히 벗어버렸다. 의심스럽고 비정치적인 70년대의 흑인 팝은 모타운의 유산과 약간 관계가 있었는데, 가끔은 패밀리 스톤이 만든 의식 있는 민중 음악의 유산들을 매도하기도 했다. 슬라이 스톤이 중심에서 사라지자, (잭슨 파이브, 허니 콘Honey Cone, 코모도어즈the Commodores 그리고 히트웨이브Heatwave와 같은) 그의 가벼운 모방자들이 신나는 훵크와 코러스 위에 요란스러운 색색 옷에 나긋나긋한 춤사위만 얹어 모양만 흉내낼 뿐이었다. 그럼에도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되려고 노력했다.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 피-펑크, 마이클 잭슨 그리고 프린스가 무대에서 보여주는 굉장한 스펙타클은 슬라이 스톤에서 유래한 육감적이고 전염성 있는 훵크 음악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패밀리 스톤은 제임스 브라운이 발전시켜왔던 방향을 따르지 않았다. 브라운은 새로운 뮤지션들을 거의 모든 공연 투어에 데리고 다니면서 거의 군대와 같은 효율성으로 그의 기량을 유지시켰다. 반면 슬라이는 캘리포니아 북부에 걸친 범위 내에서 개인적인 연락망을 통해서 직접 그의 밴드를 구성했다. 슬라이는 트럼페터 신시아 로빈슨이 새크라멘토 고등학교 고적대를 그만두자 만났고, 느끼한 팝 밴드에서 열심히 땀을 빼던 제리 마티니와 그렉 에리코Gregg Errico를 데려왔다. 그리고 래리 (그레이엄)는 ‘문자 그대로' 라디오를 통해서 슬라이에게 ‘배달되었다.’ 슬라이의 동생들인 프레디 (스톤)와 로즈 (스톤)이 들어오면서, 밴드는 팝, 재즈, R&B, 그리고 가스펠 음악을 혼합할 수 있게 되었고, 슬라이의 마법은 이 모든 것들에서 나온 것이다.
실베스터 스튜어트는 1945년 텍사스에서 태어나 9살 때 캘리포니아 주 발레호로 이사를 왔다. 그가 처음에 배웠던 악기는 기타와 드럼으로, 가스펠을 연습했으며 여러 인기 없는 고등학교 밴드에서 연주했다. 슬라이는 연예계로 뛰어들어 샌 프란시스코에서 점차 입지를 넓혀갔는데 당시 오텀 레코드Autumn Records를 위해서 몇몇 프로젝트(당시에 잘 알려져 있지 않던 그레이스 슬릭Grace Slick과 빌리 프레스튼Billy Preston)에 프로듀서로 참여하려고 했다. 몇 번의 실패를 겪은 뒤, 그는 방송 학교에 입학했다. 그래서 1966년 새로운 흑인 라디오 방송국 KSOL에서 활동했던 최초의 디제이 중 한 명이 되었다. 그의 에너지 넘치는 진행 스타일은 많은 추종자들을 형성했고 그의 스타 의식을 충전해주었다. 최고의 소울 방송국이었던 KDIA로 옮겨 활동하다가 그만둔 후, 그는 밴드를 만들기 위해 가스펠이나 소울 가수의 에너지를 가졌으며, 동시에 최신 로큰롤을 연주할 수 있는 멤버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5명의 뮤지션들과 어울리게 되었는데, 2명은 여성이고 2명은 백인으로 모두 노래와 연주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슬라이의 남동생 프레디는 기타를 쳤다. 래리 그레이엄은 베이스를 쳤고, 가스펠에 뿌리를 둔 멋진 중저음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신시아 로빈슨과 제리 마티니는 트럼펫과 다른 관악기를 연주했다. (무대 위에서 백인 남성과 흑인 여성이 함께 연주하는 모습은 분노섞인 반응을 불러왔다.) 그리고 그렉 에리코는 무지막지한 드러머로서 흑인의 소리를 내는 백인이었다. 우스꽝스럽게 들릴지는 몰라도 패밀리 스톤 멤버들의 인종적 구성을 언급할 수 밖에 없다. 그 이유는 각계의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의 단위로 소리를 낼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 밴드이기 때문이다. 슬라이의 밴드는 인종 간의 경계를 뛰어넘었다기보다는 말소했다는 편이 옳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의상만큼이나 충격적인 에너지에 휩쓸려 버렸다. 여자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남자들이 노래하고 흑인들이 (그들이 어떤 통제권도 행사하지 않는다는 한에서) 쇼를 주도했기에 그 쇼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이 쇼를 보면 춤추지 않고는 못 배길, 아니 쇼가 사람들의 몸을 저절로 움직여주었다. 그리엘 마커스Griel Marcus는 슬라이의 매력을 이렇게 집어낸다.
그 밴드의 사운드에는 엄청난 자유가 있었다. 그것은 복잡했는데, 원래 자유 자체가 복잡했기 때문이었다. 자유에 대한 바람처럼 거칠고 무정부주의적이었으며, 자유의 현실처럼 안정적이고 따스하고 통일성이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축복이자 확신이었으며, 환상적인 자유와 같이 유머와 환희가 끝없이 흘러넘치는 음악이었다.
(2009/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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