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브라운은 비즈니스를 위해 모인 장소에서 다툼을 벌이다가 경찰의 추격을 피해 주 경계까지 도주한 적이 있었는데, 그로부터 1년 뒤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 이후 3년간, 브라운은 농담과 조소, 더 많은 샘플링, 더욱 뼈아프게도 감사와 지지를 위해 열린 몇몇 대형 쇼의 대상이 되었다. 법적인 문제들과 가정에서의 학대와 관련해 가족들이 낸 탄원들은 음악 산업과 사려 깊고, 경험 있는 지도자들을 필요로 하는 흑인 문화권 내에서의 그의 권위를 깎아내렸다. 제임스 브라운은 이후로도 힙합에서의 부정적인 가사에 대해 공적으로 반대 의견을 취했고, 남을 비난하는 목적으로 그의 음악이 샘플되어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는 긍정적 이미지의 결여와 부정적인 음악이 흑인 사회의 자립을 갉아먹는다고 생각했는데, 그러한 확신에서는 그를 따를 자가 없었다. 브라운은 1993년 인터뷰에서 격렬한 분노를 표출했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하는 생각은 이 미친 음악(과격한 가사의 힙합) 때문에 어디론가 다 사라져 버렸어요. 문화 전반에 걸쳐 이것은 진정한 손실이에요. 이것은 아프리카계 미국 문화의 기초를 위협하는 손실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이 음악은 우리 여성들을 깎아내리고, 당신 자신을 깎아내리고 심지어는 당신이 아무 생각도 없다고 믿게 만들기 때문이에요. 이제 이 어린 친구들이 음악계를 이끌어 나갈 겁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들을 그러한 음악들을 가까이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몇몇 음악은 괜찮겠지요. 우리가 필요로 하는 건설적인 비판이 있거나 긍정적이기만 하다면. 욕만 안 쓴다면 그것도 괜찮겠지요. 하지만 당신이 그게 다 쓴다면 결국 당신에게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제임스 브라운이 우리 곁에서, 요동치고, 명료하고 살아있는 전설로 있었던 반면, 시대의 화제들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은 더 이상 높은 안목을 자랑할 수 없었다. 그가 진지한 공적 관심사로부터 떨어져 있게 됨으로써, 흑인과 그에게 많은 것을 주었던 흑인 민족들은 비극적인 상실을 겪게 되었다. 그의 스타일을 모방하는 롤링 스톤즈the Rolling Stones나 프린스Prince는 수백만 달러의 비용이 소요되는 공연 투어를 하고 있었던 반면, 대부는 점점 더 언더그라운드에서 처음부터 그를 따랐던 흑인 공동체의 네트워크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었다. 대부와 함께 연주했던 메이시오 파커는 “모든 것이 정말로 제임스 브라운을 중심으로 작동한다.”고 말했다. 20년이 지나도 훵크, 퓨전 재즈, 댄스 뮤직, 그리고 위엄을 갖춘 힙합 곡들과 같이 모든 것들이 여전히 제임스 브라운을 중심으로 작동하고 있다.
(2009/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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