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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rin Jones - Here I Go Again (1982)

Baron Samdi 2026. 6. 15. 15:44

필라델피아의 무명 가수이지만 수차례에 걸쳐 리이슈 되어 지금은 흔해진 음반. 그러나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다. 일본반을 구입해 두고 듣지 않다가 얼마 전 앨범 전체를 들어봤다. 완성도가 높고 모든 곡이 어느 하나 빠지지 않는 수작들이다. 카린 존스의 스타성이나 카리스마가 부족하기는 하지만 어떻게 해서 이렇게 잘 만든 앨범이 묻혀버릴 수가 있었을까 싶다. 필라델피아 인터내셔널의 거물들이 참여한 후기 필리 소울의 걸작이다.  그중에서도 내가 특히 좋아하는 곡은 "Here I go again". 리듬 기타와 베이스라인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킨 뒤, 빵빵한 브래스 섹션이 터져 나오는데 마치 여성 버전의 테디 펜더그래스 같다. 엉덩이를 가만 둘 수 없는 훵키함 그 자체. 어떻게 해서 필리 신의 거물들이 무명 여가수의 앨범에 다 달라붙었을까? 아마 카린 존스와 매니지먼트 계약을 맺었던 테디 펜더그래스의 인맥과 입김이 많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카린 존스는 필라델피아 출신으로 교회에서 음악을 배웠다. 굉장히 예민한 귀와 음악적 재능을 타고 나서 정식 교육을 거의 받지 않고 독학으로 피아노, 퍼커션, 드럼을 배웠다. 10살도 되기 전에 두 언니와 함께 The Jonesettes라는 이름의 밴드를 결성했다. 매니저는 아버지였다. 이 밴드는 1969년 쿠거 레코드에서 싱글 "Once I had love/ Stop took listen"을, 그리고 HSE 레코드에서 <Rev. Arvetra Jones And The Jonesettes>라는 이름의 가스펠 앨범을 발표했다. 몇 년 후, 필라델피아의 오버브룩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는 극장과 지역의 클럽을 돌며 공연했다. 

 

1976년, 스티비 원더의 친구들로부터 마빈 게이가 녹음과 투어를 도와줄 백킹 보컬을 구한다는 말을 듣고 오디션에 응모한다. 결국 계약을 맺고 "Got to give it up" 녹음에 참여했다. 그 후, 마빈 게이와 함께 런던 팔라디움 투어를 함께 했으나 투어 전과 후, 그리고 틈틈이 조벳  레코드의 세션일을 했다. 그래서인지 마빈 게이의 라이브 앨범 <Live at the  London Palladium>의 크레디트에는 오르지 못했다. 1979년, 그러다 그녀의 음악 스타일을 흠모해 오던 테디 펜더그래스의 눈에 띄어 매니지먼트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테디 펜더그래스는 자기 스케줄 만으로도 굉장히 바빴기 때문에, 이듬해에 진행이 흐지부지되었다. 

 

필라델피아 흑인음악 협회The Black Music Association의 행사장에서 카린은 당시 자신의 레이블 T-Electric을 설립하려던 Jim Tyrrell을 만나 T-Electic과 계약하고 1980년 음반을 녹음한다. 하지만 이 앨범은 회사의 자금이 바닥나 발표되지 못했다. 하지만 하지만 같은 해, 같은 회사에서 발매된 Patryce Choc'let  Banks의 <She's Back And Ready>의 백킹 보컬로 참여했다. 2년 뒤, 선반 위에서 잠을 자고 있던 이 앨범을 짐 타이럴이 핸드셰이크 레코드의 Ron Alexenburg에게 가져갔다. 알렉센버그는 이 앨범을 듣자마자 마음에 들어 했고, 카린 존스와 다시 계약을 맺어 <Under The Influence Of Love>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내놓게 된다. 이 앨범은 뉴욕의 시그마 사운드(역자 주 - 필리 소울을 낳은 필라델피아 시그마 사운드의 뉴욕 분점)와 카운터포인트 스튜디오에서 녹음되었으며 오제이스와 오제이스의 에디 레버트가 참여했다. 편곡에는 데니스 윌리엄스와 그 유명한 던 피어슨 주니어, 프로듀서는 하워드 킹과 에드 무어(역자 주 - 하워드 킹은 게리 바츠, 에드 무어는 음투메이의 밴드 멤버이자 프로듀서였다. 이 둘은 스트레인저스라는 밴드에서 만났다.), 짐 타이렐, 에디 레버트, 데니스 윌리엄스, 브루스 호우즈 같은 필라델피아 인터내셔널의 멤버들이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