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obiographica

내 인생 최초의 Funk

Baron Samdi 2016. 6. 25. 10:29

훵크 팬을 막론하고 특정한 취미 활동이나 무언가에 애착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대상과 관련한 개인적인 이력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여기에 나의 개인사적이 Funk를 몇 곡 풀어놓으려고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곡은 일본 밴드인 The Arakawa Band의 "Brand New"라는 곡이다.

대부분의 훵크 팬들에게 당신의 인생에서 최초의 훵크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대다수는 마빈 게이나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를 꼽을 것이다. 특이하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일본 밴드의 곡을 꼽은 이유는 나의 아버지 때문이다. 아버지는 포장지 외에는 버리는 법이 없는 분이다. 게다가 박찬욱 감독의 영화에 나올 법한 대만 풍의 인테리어 감각을 갖추신 분이기 때문에 "쉬크 앤 모던"을 추구하는 식구들과는 자주 마찰이 있는 편이다. 다행히 그 수집벽을 아버지 서재에만 가둬놓긴 했는데, 만약 아버지의 취향이 거실로 나온다면 우리집은 예전 토요일 점심 때쯤 방송되던 <믿거나 말거나>세트장처럼 될지도 모른다.

각설하고 이 곡은 아버지가 여전히 버리지 않고 있는, 아버지가 청년 시절에 어학 공부를 하겠노라고 엄청난 거금을 들여 구입해서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소니 워크맨의 데모 테입 수록곡이다. 작동은 멈췄지만 지금까지도 서재 서랍에 은색 비닐 커버를 뒤집어쓴 소니 워크맨과 이 데모 테입을 간직할 정도로 애착이 가득한데, 90년대에 CDP가 출현할 때까지 금지옥엽같은 자식 손에도 허락한 적이 없었다. 아마도 구입할 당시의 어마어마한 가격 때문이었을 것이다. 워크맨은 그때까지 우리 집에서 말 그대로 "언터처블"한 성배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애들은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법. 아버지가 집을 비우는 날이면 몰래 꺼내서 이런저런 음악을 들어보곤 했는데, 이 "Brand New"를 그때 처음 듣게 되었던 것 같다. 70년대 일본과 구미에서 유행하던 보편적인 재즈 훵크 스타일로 가사도 없고 생소한 음악이었는데 어떻게 마음에 들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재즈 훵크라는 장르에 눈을 뜰 때까지 뭣도 모르고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에 와서 들으면 단선적인 구성이 아쉽기는 하나 연주의 세련미는 여전하다. 아라카와 밴드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는 바가 없다. 작곡과 편곡을 맡은 아라카와 다쓰히코가 나니와 익스프레스Naniwa Express의 앨범에 색소폰 주자로 참여했고 훗날 '존 넵튠 앤드 디 아라카와 밴드John Neptune and the Arakawa Band"를 결성했다는 점, 그리고 음반이 일본에서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는 점뿐. 데모 테입은 A면에 "Brand New" 한 곡, B면은 녹음 용으로 되어 있는데, 어릴 적에 몰래 꺼내 듣다가 버튼을 잘못 눌러서 곡의 일부를 지워먹었다. 이베이에서 이 데모테입이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니 아쉬울 따름이다. 곡의 제목이 "Brand New"이고 그외의 정보가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정규 음반에 수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소니의 의뢰로 만들어진 프로젝트성 녹음인 것 같다. 데모 테입에 수록될 곡이 재즈 훵크라니 지금에 와서도 놀라운 일이다. 워크맨을 세계 최초로 발매한 소니의 기술력과 함께, 일본 대중음악의 수준이 이 정도는 된다는 것을 세계 만방에 보여주기 위한, 당시 시쳇말로 "잘나가던" 일본의 자신감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나는 이 곡의 영향 탓인지 재즈나 훵크라는 장르에 대해 어려서부터 거부감이 없었던 것 같다. 어쩌면 내 인생 최초의 훵크라고 할 만하다. (정통 훵크는 아니지만....) 아버지의 어학 실력도 그리고 수많은 워크맨, CDP를 섭렵한 나의 어학 실력도 그대로다. 청년 시절의 아버지도 어학 테입 대신에 음악을 들었겠지. 아버지와 나는 워크맨을 통해서 기이한 부전자전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면서 음악을 잊어간다.

 

(2013/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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