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obiographica

내 인생 두번째의 Funk

Baron Samdi 2016. 6. 25. 10:31


보잘 것 없는 Funk 편력에서 나름 전환점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곡이 세 곡이 있다. 첫 번째 곡은 정통 훵크는 아니었지만 살아오면서 가장 처음 들은 Funk 곡이고, 그 다음은 처음으로 들어본 정통 Funk이자, 훵크라는 장르에 빠져들게 만든 곡이다. 마지막 곡은 Pop/Rock 장르에서 완전하게 탈피해서 온전한 Jazz/Funk팬으로 만든 곡이다. 여기서 소개할 곡은 내 인생 최초의 정통 흑인 Funk다. 진정 처음으로 좋아했던 곡은 우연히 라디오에서 들었던 Pointer Sisters의 "Jump (For My Love)"이었을텐데, 당시는 너무 어려서 무슨 노래이고 누가 불렀는지도 모를 때였다. 밴드 이름을 알고 어떤 장르라는 것을 의식하고 들으면서 처음 좋아한 곡이 바로 Earth Wind & Fire의 "Fall In Love With Me"였다.

Earth Wind & Fire는 두 번이나 내한했고 Kool & the Gang, Jamiroquai등과 함께 ('지풍화'라는 한국이름으로 불릴 정도로) 한국에서 그나마 널리 알려진 밴드일 것이다. Earth Wind & Fire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대개 요즘 삼성 갤럭시 광고에 나오는 "September"라든가 호주 보이밴드 CDB를 통해 알려진 "Let's Groove" 혹은 올드 팝팬들에게 친숙한 "Fantasy"와 같은 곡을 통해 입문하게 된다. 예외가 있다면 시부야케이나 일렉트로니카 팬들이 꼽는 "Brazillian Rhyme" 정도가 될까? "Fall In Love With Me"는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의 광팬이라면 모를까 대강 베스트 앨범 정도로 만족하는 팬들에게는 많이 알려진 곡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 곡을 꼽는 이유는 내가 이 곡을 내 의도와는 무관하게 듣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맞벌이 부모를 둔 아이였다. "래취키 차일드"라고 하는 모양인데 열쇠 꾸러미를 목에 걸고 다닌 데서 유래한 말이라고 한다. 고독하게 자라난 아이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특정한 취미에 몰두하게 된다. 방과 뒤에 집에 오면 아무도 없고 정서적으로 유착할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것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데 나에게는 책, 프라모델, 졸리게임 시리즈 등이 그 대상이었다. 그 중에서도 또래에서도 유별나게 가요도 아니고 고상한 팝음악 감상이라는 취미가 생겨버린 것은 전적으로 우연의 산물이다. 집에 오면 휑하고, 휑하니 TV를 틀어놓게 되고, 이른 시간에 집에 오니 당연히 TV가 안나온다. 그러면 볼 수 있는 채널은 화면조정이나 2번 AFKN뿐이다. 그래서 나는 또한 자연스럽게 화면조정을 통해 폴 모리아나 레이몽 르페브르와 같은 경음악을 듣게 되고 AFKN을 통해 팝 음악을 듣게 되었다.

하지만 팝 음악을 좋아한다고 해서 음반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자력으로 영어는 겨우 깨쳤으나 초등학생(당시는 '국민학생')에게 동네 레코드점의 문턱은 높았고 200원 짜리 불량식품으로 연명하는 형편에 음반은 무자비할 정도로 비쌌다. 대신에 처녀 시절에 함께 살던 이모가 시집 가면서 두고 간 조악한 리어카 표 '최신 팝스' 테이프가 몇 개 있었고, 덕분에 나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스틱스, 데이빗 보위, 폴리스 등을 듣고 자라날 수 있었다. 이 훌륭한 "스트리트 컴필레이션" 음반은 나의 영어 교사였으며 친구였고 해방구였다. 당시 내 방은 뒷집과 붙어있다시피 해서 여름이면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 이와이 슌지 영화의 주인공처럼 그 창턱에 걸터앉아 테이프를 돌려듣다 발견한 곡이 바로 이 "Fall In Love With Me"였고 생전 처음 접한 흥겨움에 자세를 고쳐잡고 무한 반복 시전에 들어갔으나 그게 나의 훵크 편력의 시작은 아니었다. 이태원 근처 (엄밀히 말하면 한남동) 기지촌 아이답게 취향이 바비 브라운, 바닐라 아이스 등으로 비껴갔기 때문이다.

"Fall In Love With Me"는 83년 앨범 <Powerlight>의 수록곡이다. 전작 <Raise>의 히트곡 "Let's Groove"를 만들어냈던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의 리더 모리스 화이트와 객원 멤버인 웨인 본, 완다 본 부부의 합작품으로 R&B차트 4위, 팝차트 17위에 올랐으며 그 해 그래미상 시상식에 베스트 R&B 퍼포먼스로 노미네이트되었다.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의 곡이 항상 그렇듯이 단순하면서도 완벽하다.

 

(2013/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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