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nkatology 104

<Funk> 3-4 - 지미 헨드릭스 Pt. 2

지미가 1969년 8월에 우드스톡에서 연주했을 때는 그를 포함하여 6명의 다양한 인종으로 이루어진 밴드 멤버들과 함께였다. 그 밴드는 그의 오래된 군대시절 전우인 빌리 콕스가 베이스, 두명의 아프리카계 중남미인 퍼커셔니스트들 (제리 벨레즈Jerry Velez와 주마 술탄Juma Sultan), 흑인 리듬 기타리스트 래리 리Larry Lee, 그리고 그의 첫 밴드인 디 익스피리언스의 드러머 미치 미첼Mitch Mitcgell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의 연주는 록 음악의 10년을 결산하는 3일에 걸친 이 궁극적인 록 이벤트의 피날레로 진정 탁월한 아프리카의 폴리리듬적인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하지만 엔지니어들이 예전의 익스피리언스의 사운드와 지미와 미치 미첼의 사운드만 남겨두고, 효과적으로 퍼커셔니스트와 다른 ..

"F"unkatology 2016.06.24

<Funk> 3-3 - 지미 헨드릭스 Pt. 1

지미 헨드릭스 사람들은 지미 헨드릭스를 철저하게 오해해왔다. 헨드릭스는 음악에서 록적인 전통의 일부, 그것도 “백인” 전통의 일부였었고, 현재에도 그렇기 때문이다. 그가 미국 흑인들의 전통 속에 있고 미국 흑인의 음악을 훈련받았으며, 모두 흑인으로 이루어진 밴드들과 작업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리고 흑인 음악가로서의 그의 인생은 정체성과 유산 모두에서 주된 것이지만 대부분의 록음악의 역사는 록의 관점에서 헨드릭스를 배타적으로 다루고 있다. 지미는 1942년 시애틀에서 음악과 관계있는 일을 하는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그는 아주 어릴 때부터 음악을 탐구하고 즐기도록 배웠다. 그의 아버지는 이러한 지미를 응원했으며 그의 첫 기타를 사주기도 했다. 지미는 인종이 뒤섞인 환경에서 자라났으며 재즈 기타리스트인..

"F"unkatology 2016.06.24

<Funk> 3-1 - 블루스, 록 그리고 훵크

-제 3부- 훵크를 찾아서 - 함께여 오라! 9장 흑인 록 - 되돌려 받기 “훵크는 단순히 스피드를 가미한 블루스다. - 조지 클린턴 블루스, 록 그리고 훵크 블루스, 흑인 록 그리고 훵크는 백인 록의 침입을 참조하지 않고서는 거론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연속성은 지미 헨드릭스의 기타 솔로만큼이나 유동적이다. 위대한 흑인 로큰롤 가수들, 즉 척 베리Chuck Berry, 리틀 리처드Little Richard, 보 디들리Bo Diddley 그리고 패츠 도미노Fats Domino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1960년대 초반, 엘비스 프레슬리가 등장하던 시기에 록 음악은 백인적인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1960년대 중반, 비틀즈, 롤링 스톤즈 그리고 애니멀즈the Animals에 의해 주도된, 유럽 출신 록 밴드들의..

"F"unkatology 2016.06.24

<Funk> 2-31 - 삶을 위한 시간

삶을 위한 시간 1973년에 이르자, 정착해서 아이를 가진 슬라이는 팬들의 기대와 언론 보도의 소용돌이에서 회복하는 듯 보였으나 다시 음악을 녹음하기 위한 적당한 기회를 찾을 수 없었다. 1974년이 되어, 그 해 발표한 흥미로운 앨범 의 커버에서 그의 여자 친구 캐시 실바Kathy Silva와 아이(밝은 표정의 다양한 인종으로 이루어진 가족)의 모습이 나와 있는데, 그 중에서 많은 놀라움을 가져다 준 것이 바로 “Time for Livin'"이라는 곡이었다. 왜냐하면 슬라이가 음악의 전선에서 물러나서 평화로운 은퇴를 꿈꾸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1975년 뉴욕 매디슨 스퀘어가든에서 결혼식을 겸한 콘서트로 주목을 받고 난 뒤부터, 그는 점점 모습을 감추는 듯 했으며 그가 제작한 음반들은 차트..

"F"unkatology 2016.06.24

<Funk> 2-30 - 폭동

폭동 슬라이는 항상 록 비평가들에게 좋은 기사거리가 되었지만 앨범만큼은 거의 그들을 무방비 상태로 매료시켰다. 비평가들은 “여기에는 아무런 기쁨도 없다.”, “침울한 걸작이다.” 더 단순하게는 “죽인다!”고까지 외쳐댔다. 슬라이는 이 앨범에서 거의 모든 악기를 다루었고 음악은 예전에 그가 발표했던 것들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하지만 이전의 앨범들에서 나타나는 순수한 신념을 모르고서는, 슬라이가 그의 노래 속에서 강조하는 아이러니를 이해하기는 힘들다. 여기에도 신념이 있었다. 그러나 그 신념은 진실과 카타르시스의 힘을 믿는 블루스 가수의 신념이었다. 훵크의 맥락에서 볼 때, 이렇듯 우울한 작품은 없었다. 슬라이 스톤은 어쩌면 제도권의 록 음악을 제쳐두고 내면의 미학에 말을 걸고 있는 듯 한데, 그것은 ..

"F"unkatology 2016.06.24

<Funk> 2-29 - 래리 그레이엄

래리 그레이엄 래리 그레이엄은 “Thank You"를 통해 스트리트 훵크의 효시가 되었다. 많은 밴드들의 초기작에서도 차핑(역자 주 - 래리 그레이엄이 창시한 베이스 주법의 하나로 쉽게 말하면 엄지와 검지만을 사용하던 과거의 주법과는 달리, 거의 모든 손가락을 사용하여 리듬감을 강조한 베이스 주법), 팝핑 그리고 플러킹과 같은 베이스 사운들을 들을 수 있겠지만, 기본적인 리프에 베이스로 액센트를 주는 것이 전형적인 수법이었던 데 비해, “Thank you”는 베이스의 팝핑을 주 멜로디로 삼았다. 이는 베이스에서 당김음 멜로디가 들어간 구절로 이루어져 있는데, 베이스 기타를 배경의 리듬악기로 쓰던 방식에서 곡 전체를 몰아가는 힘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Thank You” 이후 훵크에서 리듬과 멜로디는 ..

"F"unkatology 2016.06.24

<Funk> 2-28 - 일어서라!

일어서라! 의 다음 앨범은 그저 그런 음반들이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슬라이는 1969년 초에 발표한 히트 앨범 를 통해서 다시 정점에 오르게 된다. 인종, 성, 사랑, 증오 그리고 인간의 영혼이 지닌 힘이 이 앨범 에서 탐구되었다. 재치는 전염성이 강했으며 그루브는 무자비했다. 그 앨범에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노래들이 있었는데, 그것은 철없는 아이들의 장난(“You Can Make It if You Try"), 맹렬한 댄스 훵크 (“Sing a Simple Song”), 흥겨운 로큰롤 (“I Wanna Take You Higher”), 30분 분량의 블루스의 영향을 받은 섹스에 관한 곡(“Sex Machine"), 스탠다드 팝 (“Everyday People”), 흑인의 자긍심에 관한 신랄한 찬가(“D..

"F"unkatology 2016.06.24

<Funk> 2-27 - 슬라이 앤드 더 패밀리 스톤 Pt. 3

쇼 비즈니스에서 기회를 잡아 1966년에 결성된 밴드의 원래 이름은 스토너즈the Stoners였다. 슬라이는 밴드를 새로운 라인업으로 정비하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는 “모든 젊은이들이 이 밴드에 매료될 것”이라는 말로 CBS 레코드의 회장이던 데이빗 캐프럴릭David Kapralik을 설득해서 CBS와 계약을 맺었다. 슬라이는 음반 산업계에서 흑인 록 스타로 포장된 최초의 가수였다. 그의 자신을 상품화하는 능력은 백인이 주도하던 음반 산업계를 압도적으로 헤쳐 나갈 수 있게 해주었고 시대의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잘 대처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패밀리 스톤이 성장하는 데 있어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왜냐하면 미국에서 그렇게 자유분방한 흑인이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

"F"unkatology 2016.06.24

<Funk> 2-26 - 슬라이 앤드 더 패밀리 스톤 Pt. 2

슬라이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음악은 인종주의의 사악한 요소들을 폭로하고, 팝과 관련한 대화 속에서도 인종주의의 문제들을 거론할 수 있는 관용과 진리의 열린 공간을 창조해냈다. 인종주의와 관련해서는 제임스 브라운보다 슬라이 스톤이 더욱 토론에 적합한 주제인데, 그 이유는 슬라이야말로 1970년대가 밝아오는 여명기, 미국의 팝/록 신에서 인종주의의 문제에 부닥친 많은 인물들 중에서 무엇보다도 적합한 사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슬라이가 사라지자 팝 음악계에서 인종 문제에 대한 얘기들도 사라져버렸다. 슬라이 스톤이 흑인 음악계에 몰고 온 충격은 당시의 제임스 브라운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보다도 컸다. 브라운이 흑인 게토를 떠나본 적이 없는 일반적인 흑인 민중들과 동일시되었던 반면, 슬라이..

"F"unkatology 2016.06.24

<Funk> 2-25 - 슬라이 앤드 더 패밀리 스톤

8장 가족이 뭉쳐지다 - 당신을 더 높이 데려 가고파. “일어서라, 비로소 너는 여전한 너로 남을 것이다.” - 슬라이 앤드 더 패밀리 스톤 슬라이 앤드 더 패밀리 스톤 미국의 주류에서 훵크의 홍보대사는 슬라이 스톤으로도 알려진 실베스터 스튜어트Sylvester Stewart였다. 그의 괴상한 복장, 전염성 강한 미소, 소울을 노래하는 걸걸한 목소리, 그리고 극도로 활성적인 록 음악은 흑인 민족이 정체성을 찾아가던 때, 일거에 미국을 사로잡아 버렸다. 슬라이 앤드 더 패밀리 스톤은 하나의 범주에 갇히기를 거부하는 밴드였다. 밴드의 영적인 외침, 발로 차고 뛰는 모습들은 그들에게 영향을 주었던 가스펠적 전통을 배반했지만 대신에 끝내주는 색상으로 자신들을 꾸몄다. 드러머 그레그 에리코Greg Errico의 ..

"F"unkatology 2016.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