멤피스에 근거지를 둔 스택스 레코드는 리듬 앤드 블루스가 훵크로 진화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오티스 레딩, 부커 티 앤더 앰지스Booker T & The MGs, 자니 테일러Johnnie Taylor, 마-케이스the Mar-Kays, 바-케이스the Bar-Kays, 루푸스 토마스Rufus Thomas, 칼라 토마스Carla Thomas, 스테이플 싱어즈the Staple Singers, 아이작 헤이스Isaac Hayes, 앨버트 킹Albert King과 같은 이들이 활동했던 스택스 레코드는 1960대의 전체 레코드 업계에서 ‘모타운’에 견줄만한 음악 제국이었다. 이들의 사운드는 전형적인 남부 스타일이 특징이었기에 백인이든 흑인이든 간에 중산층에게는 그다지 매력이 없었을 것이다.
스택스는 짐 스튜어트Jim Stuart와 에스텔 액스튼Estelle Axton에 의해 1960에 설립되어 이들의 태평스러운 취향을 표방했다. 북부에 있는 그들의 리듬 앤드 블루스 라이벌들과 달리 스택스의 프로듀서들은 가수나 연주자건, 프로듀서건, 건물의 수위나 비서건, 회사의 중역들이건 상관없이 음악을 만들어내는데 누구라도 중요한 역할을 맡을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협력 관계와 자발성이야말로 스택스 사운드의 성향을 만들어냈다. 오티스 레딩은 1968년 <롤링 스톤>지(紙)와의 인터뷰에서 스택스와 모타운의 차이점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모타운은 오버더빙(역자 주 - 트랙을 나누어 녹음하는 것, 다중 녹음)을 많이 했어요. 기계적으로 움직였죠. 반면에 스택스에서는 ‘뭐라도 느끼는 게 있으면 연주해봐라’ 이게 규칙이었죠. 우리는 관악기나 리듬이나 보컬이나 모두를 함께 다듬었죠. 서너 번 해본 다음에는 결과물을 같이 들어보고 제일 잘된 것을 고르는 식이었죠. 만약에 누군가 곡 구절 중에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또 같이 그 부분으로 돌아가서 전체를 다듬어나갔죠. 작년까지는 스택스에 4-트랙 레코더도 없었어요. 1-트랙짜리 레코더로 다중 녹음을 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스택스의 프로듀서들은 정통의 블루스, 가스펠에 기반을 둔 음악을 제작하는 데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의 라이벌인 모타운의 태도와는 다르게 흑인들에게 우선적으로 호소하는 것이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스택스의 즉흥적인 성향은 가수와 연주자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이다. 1960년대 후반까지 흑인 음악에는 정말로 많은 기회들이 있었다.
오티스 레딩은 1967년 칼라 토마스와 함께 녹음한 잘 알려진 리듬 앤드 블루스의 고전 “Tramp"로 훵크에 세계의 급작스럽게 뛰어들어온다. 로웰 펄슨Lowell Fulson의 동명의 히트곡에서 이름을 따온 이 곡에서 오티스와 칼라는 서로에게 코믹한 방식으로 구애하는데, 칼라가 너무 촌스럽다고 투덜대자 오티스는 그것을 칭찬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인다. (역자 주 - “밍크 코트 대신 개구리를 보여줄게”와 같은 가사) 라디오에서 나오는 엠지스MGs의 요란하고 거친 베이스라인과 드럼, 피아노는 이 곡을 시대를 뛰어넘은 가장 매력적인 R&B/ 극초기 훵크 곡으로 만들었다. (래퍼인 솔튼 페파Salt' N Pepa는 1986년에 이 곡을 베이스 볼륨을 키우면서 스윙을 살리는 방식으로 리메이크했다.)
스택스에서 가장 훌륭한 R&B 가수들은 그들의 재능을 뒷받침하는 더 훵키한 곡들을 소화하는 데 자신들이 탁월한 자질을 가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니 테일러의 강렬하고 외설스러운 1968년 발표곡 “Who's Making Love”에서는 삶이 드물게 드러내는 추저분한 측면을 이렇게 묘사한다. “당신이 다른 여자를 만나러 나간 사이에/ 누가 당신의 늙은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 할 것인가?” 그는 격렬하고 헤비한 스택스의 세션 연주자들을 활용하여 스택스 특유의 격정적인 훵크를 쏟아냈다. 1969년이 되자, 자니 테일러는 조지 클린턴과 팔리아먼트의 히트곡 “(I Wanna) Testify”를 취입하여 R&B 차트 5위를 기록한다. 이 곡의 유려한 흐름은 클린턴의 곡의 느낌을 살린 테일러의 질척이는 훵크를 가릴 수는 없었다. 테일러는 뒤이어 1973년에는 훵크/ 블루스 고전 “Cheaper to Keep Her”를, 1976년에는 디스코-훵크의 형식들을 터득해서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린 소울 히트곡 “Disco Lady”를 발표한다. (베이스에는 붓시 콜린즈가 참여했다.) 자니 테일러는 간드러지고 대담한 그리고 성적인 이미지로써 훵키 R&B 역사의 가장 뛰어난 보컬리스트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의 1976년 플래티넘 앨범 <Eargasm>은 70년대가 가진 품위의 한계에 도전했던 몇 안 되는 음반 중의 하나였다. 자니 테일러는 1975년 스택스 레코드의 해체는 물론이고, 이후에도 스택스의 베테랑 음악인들 중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아 순도높은 훵키 소울로 1970년대의 능란한 소울 계의 슈퍼스타들과 자웅을 겨뤘다.
극초기 훵크의 가장 나이 많은 터주 대감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루푸스 토마스였다. 50년대 멤피스의 지방 방송국 WDIA(역자 주 - 미국 최초의 흑인음악 전문 라디오 채널이었다고 한다.)의 전직 디스크 자키로 거친 목소리의 소유자이자 짓궂은 농담꾼 스타일의 가수였던 루푸스 토마스는 장난스럽고 훵키한 곡들로써 스택스 레코드에 둥지를 틀었는데 그 시작은 1963년 곡 “Walking the Dog"이었다. 그리고 1970년대 “Do the Funky Chicken”으로 전국적인 선풍을 일으켰다. 무릎을 굽히고 다리를 달달 떠는 유쾌한 “훵키 치킨” 춤과 온 몸에 치킨 그레이비 소스를 발라대는 듯한 거칠고 태평한 대화체의 가사를 통해서 루푸스 토마스는 70년대에 이르러 나타난 훵키함이 무엇인지 정의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훵키 치킨”은 바보같은 곡이기는 했지만 또한 뛰어난 곡이기도 했다. (역자 주 - 린킨 파크의 조셉 한이 한국에서 최고로 훵키한 곡으로 꼽은 김흥국의 “호랑나비”도 이와 같지 않았을까?) 빌보드 순위 탑 40에서 28위를 기록하며 이 곡은 훵키한 태도가 어느 정도 (일반 대중들에게도) 수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의 1971년 후속곡 “(Do the) Push and Pul","Do the Funky Penguin" 그리고 “The Breakdown"은 “훵키 치킨”의 시류에 영합하는 기타 리프를 뛰어넘어 사실상 제임스 브라운 훵크에 근접하려는 강력한 시도들이었지만 결국 그 중 어느 곡도 대중적인 히트를 기록하지는 못했다.
(2009/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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