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줄 단평 : 아들이 좋아하는 앨범에서 내가 좋아하는 곡 하나.
어떤 취미에 몰두하든, 뭔가를 수집하는 사람에게 가장 큰 시련은 결혼과 육아다. 일단 오디오 마니아들 사이에서 얘기들 하는 'WAF' (Wife Acceptance Factor 번역하면, 아내님 허락도)처럼 취미에 대한 아내님들의 디펜스를 뚫어야, 아니 승인을 받아야할 것이고 그 다음에 아이를 낳고부터는 수집품목을 지켜낼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필요하다. 어쨌든 아이가 자라서 뭔가 끄집어내고 들여다보고 하면서 그 시련은 가중된다. 오랜동안 음반을 모아온 사람으로서 나도 예외가 될 수는 없었지만 또 아이를 낳고 보면 마음이 바뀌는 수도 있는가 보다. 신혼 시절만 하더라도 '음반에 손만 대봐라, 자식이고 뭐고 없다'며 호언하고 다녔는데 막상 아이가 생기니 절판 CD 케이스를 깨물어도 허허, 기스를 내도 '이거 만지면 아빠 엉엉해요'하고 만다. 아빠의 마음이 이런 것이려니.
우리 아들이 내 CD장에서 특히 좋아하는 앨범이 Jay Graydon의 <Airplay For The Planet>인데, 28개월 짜리가 AOR의 대부를 알아볼 리는 당연히 없는 것이고. 그저 밝게 웃고 있는 아기가 나오는 재킷 그림 때문에 좋아한다. '애기가 응애하는 거, 애기가 기저귀 가는 거'라고 꺼내달라고 해서 한참 안고 다니다 아무 데나 던져 놓으면 눈물을 머금고 깨끗이 닦아 다시 CD장에 올려놓는다. 한 번은 보다 못해 숨겨놓았더니 찾아달라고 난리다. 훗날 더 자라서 취향마저 고스란히 물려 받으면서 아빠의 인생을 이해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안달하는 마음도 접고 오늘도 꺼내서 안겨준다.
이 앨범은 한때 옛 미도파 백화점 (현 롯데백화점 명동점 영플라자) 지하에 있던 레코드숍 '파워 스테이션'에 널려 있었던 기억이 난다. 인스타그램에 올려놓았더니 이제는 구하기 쉽지는 않다고 한다. 처음에는 Bill Cantos와 함께 한 'Ever After Love'가 좋아서 구입했지만, 이제 가장 좋아하는 곡은 제이 그레이든의 또 다른 페르소나 Sherwood Ball과 함께 한 'Holdin' On To Love'가 되었다. 일본에서 영어로 역수입된 용어, 그렇다고 대체할 용어가 마땅찮은 애매한 장르인 'AOR'에서 제이 그레이든의 위상은 아마 훵크의 제임스 브라운 수준이 아닐까 싶다. 아버지 조 그레이든의 명성은 넘어선 지 오래이고 AOR, 요트 록 같은 용어가 나오면 사람들은 자동적으로 제이 그레이든의 이름을 떠올린다. 그러고 보면 셔우드 볼 또한 뮤지션이자 사업가인 Ernie Ball의 아들이니 그레이든/볼은 금수저 연대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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