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브라운 밴드 THE JB'S
무대 위에서나, 음반 속에서나 제임스 브라운은 당연한 말이지만, 언제나 소울 브라더 넘버원이었다. 제임스 브라운은 밴드를 군대처럼 훈련시켰고 악보를 놓치면 벌금을 물렸다. 그리고 더 나은 수준의 연주를 독려하기 위해 소리를 질러댔다. 제임스 브라운은 냅킨에 곡을 쓰고, 관악기 주자들에게 콧노래로 음을 알려주고 나서 바로 그 날 밤 그 곡을 녹음했다. 가끔은 낡은 노래들이 새로운 곡의 주춧돌이 되는 법이다. 새로운 가사나 리프가 추가되기만 하면, 새로운 잼이 형태를 갖추게 된다. 창조적 감각과 훈련의 결합은 이 밴드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그 멤버들은 지칠 줄 모르는 알프레드 “피위” 엘리스, 프레드 웨슬리, 메이시오 파커와 기타리스트 지미 “챙크” 놀렌Jimmy "Chank" Nolen, 알폰소 “컨트리” 켈럼Alphonso "Country" Kellum, “스위트 찰스” 셔렐"Sweet Charles" Sherrel 그리고 베이스의 버나드 오덤Bernard Odum, 성실한 드러머 존 “자보” 스탁스John "Jabo" Starks, ("Funky Drummer"의) 클라이드 스터비필드Clyde Stubbefield 등이 한 벌의 드럼과도 같이 타이트한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1970년 어느날 밤, 조지아 주 컬럼버스에서 혹독한 노동 조건과 낮은 급료로 밴드 멤버들과 마찰이 있은 후, 제임스 브라운은 그의 ‘개인 전용기’로 신시내티의 스튜디오 뮤지션들을 불러들였다. 그들은 ‘페이세터즈(페이스-세터즈)the Pacesetters'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는데, 리더는 바로 18살의 베이스 연주자 윌리엄 “붓시” 콜린즈William "Bootsy" Collins와 그의 25살 난 형이자 기타리스트인 “캣피쉬Catfish"였다. 리허설도 없이 그들은 레퍼토리를 알고 있었으며 그 레퍼토리는 그 밴드의 구성만큼이나 미친 것 같았다. 그 둘이 무대 위로 올라가 연주하기 시작하면, 그 뒤를 이어서 다른 많은 사람들이 따라했다. ‘제이비스’JBs라고 불리는 새 밴드가 시동을 걸었던 것이다. 붓시의 베이스는 리듬 전반을 훑었으며 제임스 브라운의 사운드를 강화해 주었다. 밴드의 리더인 프레드 웨슬리가 훗날 붓시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훵크에서 그의 에너지는 아주 전염성이 강했지요. 그 에너지는 모든 사람을 훵크의 황홀경으로 고양시켰어요. 당신은 그 에너지를 통해서 훵크로 빠져들고, 또 더 나은 단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드러머 클라이드 스터비필드 또한 붓시의 연주를 보고, “그가 연주를 시작하고, 그래서 당신이 그루브에 빠져들면, 그냥 모든 게 춤을 추는 거예요.” 트롬본 주자이자 밴드 리더 그와 동시에 편곡자이기도 한 프레드 웨슬리와 더불어 캘리포니아에서 9달을 연습한 뒤, 제임스 브라운 사운드는 콜린스 형제의 영향으로 리듬(베이스와 기타)부분이 강화되었다. 붓시와 캣피쉬는 그들이 맡은 부분에 있어서 제임스 브라운의 훵크 그루브를 유지했으며, 제임스 브라운 사운드의 충격들을 해석하여 숨막히고, 활기차고, 지저분하고, 선정적인 훵크로 만듦으로써 제임스 브라운의 훵크 그루브를 모조리 뒤집어놓기도 했다. (그들은 몇 년 후, 조지 클린턴의 밴드에 합류하게 된다.)
제임스 브라운 밴드는 훵크를 발명했고 제이비스는 그 훵크를 완성했다. 그들이 제임스 브라운과 함께 녹음한 첫 곡은 넘버 원 히트 곡 "Sex Machine"이었다. 붓시는 그 곡을 쓰는 작업이 펜과 종이로 이루어진 것과는 전혀 달랐다고 회상한다.
음악적으로 말해서, 나와 우리 형(캣피쉬)은 작곡하는 일에 흠뻑 빠져 있었어요. 제임스는 종이봉투나 버스 안에서 가사를 썼어요. 나는 그걸 잊지 못하겠는데....제임스는 그가 느끼고자 하는 모든 것을 느꼈고, 그러고 나서 저희에게 그것을 받아 적도록 했지요. 저희는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번역가였던 셈인데요. 그의 몸놀림을 한 번 보세요. 그가 “어, 아, 아아, 아아”하면서 움직이죠? 그건 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멜로디도 없지요. 그 상황이 되면 어느 누구도 우리를 가만히 앉혀놓을 수도 없고 또 이래라 저래라 할 수도 없었습니다. 당신도 그걸 알 수 있었을 거예요.
제임스는 같이 활동했던 얼마 안 되는 시간 동안 붓시를 무대 위로 불러와 베이스 솔로를 연주하게 했고, 붓시가 연주할 때 기울인 자세를 취하도록'do the lean' 했다. (거칠게 몸을 한 쪽으로 기울인 자세로 몸을 눕힌 붓시는 구석에 있는 여자들을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임스는 붓시에게 연주할 때 몸을 기울이도록 했으며, 잼 세션 때는 앞에 서게 했고, 붓시에게 스타덤에 오르는 영광을 처음으로 맛보게 해주었다. 붓시는 “그 기울인 자세”로 “많은 여자들”을 얻었다고 말한다. 붓시는 1994년에 이렇게 회상한다. “제임스는 저를 보고 ‘젊고, 독신이고, 게다가 여자 사귀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young and single and loves to mingle'고 했지요.” 브라운은 붓시에게 일종의 아버지 역할이었고, 음악에서 1박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붓시는 나한테서 많이 배워간 것 같아요. 우리가 만났을 때의 얘기드를 이러쿵저러쿵 늘어놓자면 그는 베이스를 치고 있었지요. 나는 그에게 훵크에서 1박의 중요성에 대해 말해줬어요. 모든 소절이 시작될 때 나타나는 다운비트를요. 제가 붓시에게 다른 모든 연주보다도 1박의 역동적인 측면으로 들어갈 수 있는 열쇠를 준 것이나 다름없지요. 그래서 그는 그 1박의 의미를 배운 뒤로는 모든 연주를 잘 할 수 있었습니다.....
그를 교육시키고 제대로 하게 만드는 일은 어려웠습니다. 저는 그를 때릴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가르쳤지요. 그가 나빴다거나 하찮았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는 그저 잘 못 배웠을 뿐이지요. 저는 그에게서 큰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삶의 에너지도요.
프레드 웨슬리와 다른 주요한 멤버들도 새 판이 짜인 다음 돌아왔다. 밴드는 어느 때보다 강해졌다. 브라운은 장차 “제이비스”가 될 이 밴드와 함께 “Sex Machine", "Soul Power", "Superbad", "Talkin' Loud & Sayin' Nothin'"과 같은 가장 뛰어나고 전설적인 곡들뿐만 아니라 <Sex Machine>앨범의 가장 강렬한 스튜디오 곡들을 녹음했다. 그리고 1971년 초에는 파리에서 <Love, Power, Peace> 라이브 콘서트를 녹음했다. 1971년 3월에 붓시와 캣피쉬가 밴드를 떠나자, 제이비스의 사운드는 훵크를 “악취가 고약한 그루브Stanky Groove”의 본질적인 수준으로 고양되었다. 그 와중에 저 멀리 서부에는 래리 그레이엄Larry Graham이 베이스의 썸핑은 훵크를 그 중심부로 끌어올렸는데, 원래 베이스 음조에서 리듬상의 난잡함을 설계하고 강조했던 사람은 붓시였다.
1) 썸핑 : 엄지로 퉁기는 베이스 기타 주법.
2) 루핑 : 힙합에서 음악의 악구나 악절을 반복하는 것.
(2009/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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