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matheca

2025년 영화 목록 - 3

Baron Samdi 2025. 2. 27. 09:10

11. 무사시의 전설 3 - 간류도의 결투 (1957)

이나가키 히로시 3부작의 마지막 편. 라이벌 사사키 코지로와의 유명한 싸움을 영화화. 원작을 안 읽어봐서 모르겠으나 구로자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를 의식해서인지, 낙향해서 농사를 짓다 노부시(산적)에게 위협을 받아 마을을 방어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과감하게 들어냈으면 어땠을까 싶다. 이 영화의 주제는 최대의 라이벌 사사키 코지로와의 대결인데 그는 어떤 사람인지, 그의 무공이 얼마나 높은 지를 충분히 보여주면서 캐릭터를 쌓아 올린 뒤, 마지막 간류도의 결투에서 폭발시켜야 했다. 하지만 영화의 대부분을 <7인의 사무라이>, 그것도 주연도 같은 영화와 비슷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허비해서 아쉬움이 남는다. (★★★)

 

12. 고딕 (1986)

켄 러셀 감독, 가브리엘 번 주연의 공포영화, 아니 공포영화의 탈을 쓴 전위 예술영화. 1시간 30분의 러닝타임이 30시간 1분 같이 느껴진다. 이 영화를 이해하려면 영문학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조금 필요하다. 시인 퍼시 비시 셸리와 메리 셸리 부부는 메리의 이복자매 클레어 클레어몬트의 소개로 제네바 호수에 있는, 역시 시인인 바이런 경의 별장에 놀러간다. 이 별장에서 의사 존 폴리도리를 만나고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 소년의 유골을 두고 메리의 유산한 아기를 불러내는 강령술을 실시한다. 전형적인 고딕 호러의 문법을 따라가기에 이해하기 어렵지는 않으나 충격을 의도했지만 이제는 식상해져 버린 점프 컷들, 불가해한 설정, 시적인 대사와 연극적인 연기, 수평이 맞지 않아 불편함을 안겨주는 앵글 등, 내가 가진 영국 영화에 대한 편견을 강화시켜 주는 영화다. 결국 강령술로 메리는 온갖 환영에 시달렸고, 이 환영은 나중에 메리 셸리가 <프랑켄슈타인>을 쓰는 데 영감을 주었다는 내용이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인 것 같다. 내 취향은 아닌 영화. (★)

 

13. 발자국 (1972)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에서 장기간 공연했던 앤드루 섀퍼의 희곡을 조셉 맨키비츠 감독으로 영화화한 작품. 명배우 로렌스 올리비에와 마이클 케인의 명연을 볼 수 있다. 영국 밴드 The Smiths의 히트곡 "This Charming Man"의 가사 구절, "A jumped up pantry boy, who never knew his place"가 이 영화 대사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웨스트엔드에서 공연을 오랫동안 했다면 모리세이가 이 연극 혹은 영화를 봤을 수도 있겠다. 그밖에도 유명한 "사람의 마음을 가장 빨리 알아보고 싶다면 그에게 모욕을 줘보라. 그러면 이내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될 것이다. The Shortest way to man's heart is through humiliation, You soon find out what he's made of." 이 말도 이 희곡(영화)에서 나온 말이다. 이 영화를 원어로 볼 수 있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두 배우가 내뱉는 대사의 칼부림이 자극적이면서 긴박하다. 주요 내용은 앵글로색슨 귀족이자 유명 추리소설 작가인 앤드류 와이크가 이혼 혹은 별거로 함께 살지 않는 아내 마거릿의 애인을 집에 초대한다. 그 애인은 이탈리아계 아버지와 노동계급 어머니를 둔 자수성가한 미용 살롱 원장인 마일로 틴들이다. (틴돌리니라는 이탈리아 성씨를 앵글로 색슨처럼 보이기 원한 마일로의 아버지가 틴들로 개명한다.) 이 둘은 서로 영국식 유머를 구사하며 나이와 출신과 행동거지들을 비웃다가 와이크의 제안으로 보석 강도 자작극을 벌이기로 한다. 틴들이 와이크의 도움으로 와이크의 금고 안의 보석들을 털고, 와이크는 도난당한 보석에 대한 보험금을 틴들과 나눠갖자고 공모한 것이다. 하지만 자작극 와중에 틴들은 실종되고, 와이크는 도플러 경감의 방문을 받는다. 이 영화에는 내러티브의 판도를 바꾸는 엄청난 반전이 두 번 정도 숨어있다. 애거서 크리스티풍 추리극의 형식에 치정극, 세대갈등, 계급갈등을 녹여낸 수작이지만, 이상하게 본 사람은 많이 없는 영화다. 이 영화는 2007년에 다시 한번 리메이크되는데, 이때는 틴들을 맡은 마이클 케인이 앤드루 와이크가 되고, 틴들 역은 주드 로가 맡았다. 영화뿐만 아니라 연극으로도 보고픈 작품. 의외는 이 영국 냄새 진득한 영화의 원작자 앤드루 섀퍼가 아이오와 출신 미국인이라는 점이다. T. S 엘리엇 뺨치는 영국병(앵글로필리아) 환자였던 것 같다. 

(★★★★☆) 

 

14. 암살부대 (전쟁의 개들, 1980)

프레드릭 포사이스 원작, 존 어빈 감독, 크리스토퍼 워큰 주연의 전쟁 영화. 전쟁 영화로서는 내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유형의 영화다. 이 영화와 비견할만한 것이라면 로저 무어 주연의 <지옥의 특전대>. 주인공인 용병 제이미 섀넌은 영국 자본의 의뢰를 받아 조류학자로 위장해 서아프리카의 소국 장가로로 향한다. 장가로는 킴바 대통령이 정치적 라이벌인 보비 대령과 오코예 박사를 축출한 뒤, 독재정권을 세워 폭정을 자행한다. 그리고 천신만고 끝에 미국으로 귀국한 섀넌은 옛 동료들을 모아 용병부대를 꾸린다. 지금에 와서 보면 리얼리티도 떨어지고 전쟁 신 연출도 단조롭기 그지 없지만 어려서부터 좋아했던 영화여서 그런지 추억에 젖기도 하면서 즐겁게 감상. 이 영화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잡지 <플래툰>에서 고바야시 모토후미의 일러스트를 통해서였다. 원작 소설이 간절히 읽고 싶은데 도서관에도 없고 중고책은 <하>권만 판매하고 있다. 철들고 보니 연출이 너무 아쉽다. 존 어빈이 아니라 원래 물망에 오르던 돈 시걸이나 마이클 치미노, 특히 치미노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든다. 좋은 감독이 리메이크해줬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 

 

15. 잉글랜드 이즈 마인 (2017)

보통의 뮤지션 전기 영화와 다르게, 이 영화는 밴드의 성공까지 보여주지 않는다. 무기력하고 내성적인 세무서 직원이 어떻게 록 스타가 되었는지도 보여주지 않는다. 재능이 꿈틀거리고 세상과 불화하고 좌충우돌하다가 뜻하지 않은 만남이 어떤 결말을 맞게 되는지 상상하게 만들어줄 뿐이다. 집구석에 틀어박혀 있던 스티븐 패트릭 모리세이라는 청년을 밴드의 기타리스트 자니 마가 찾아가면서 영국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스미스의 전기 영화로, 스미스의 역사를 알고 있는 팬이라면 금세 알아볼 법들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으되, 진부하지 않게 감각적이고 세련되게 연출했다. 전기 영화라는 한계 때문에 영화적으로 뛰어나지는 않지만 그 한계를 응용해서 감독이 보여주고자 하는 바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근성이 좋았다. 그리고 마음에 안 드는 점이라면 모리세이가 외모든, 성격이든 본래보다 더 미화되어 나왔다는 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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