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빗속의 방문객 (1969)
<헤어질 결심>의 모티브가 된 영화라고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난다. 실제로 휴대폰이 단추로 바뀐 것 외에는 <헤어질 결심>과 유사한 스토리라인을 가지고 있다. 타국에서 온 수사관이 매력적인 여인의 범죄를 추적하다 부지불식 간에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으로 바다가 진실을 드러내는 순간이라는 마지막 결말도 어찌 보면 르네 클레망 감독의 전작 <태양은 가득히>와도 일맥상통한다고 하겠다. 하지만 전편에 흘러넘치는 윤복희 미니스커트 같은 낡은 감성, 그리고 거장 프란시스 라이의 신파조의 음악들은 지금 세대들이 견디기에는 크나큰 장벽일 것이다. 찰스 브론슨이 멋있다는 사실을 집착적으로 보여주는 2시간짜리 "맨덤" 광고 같은 영화다. 한 마디로 연출이 매우 후졌다. 동시대의 감독인 장 피에르 멜빌과 견주어봐도 르네 클레망은 정서의 과도한 전달에 집착한 나머지 균형을 잃고 만다. 왜 누벨바그 감독이 르네 클레망 영화를 싫어했는지 알 것 같다. 물론 나는 누벨바그도 싫어하지만.
22. 에이리언 2 (1986)
에이리언 1과 2 중에서 어떤 것이 낫냐는 떡밥이 예전부터 돌고 있다고 한다. 어렸을 때는 화끈한 액션이 가미된 2가 좋았지만, 나이가 들고 다시 두 편을 이어 보니 1의 연출이 훨씬 뛰어난 것 같다. 아마 두 감독에 대한 선호의 차이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하면 연출 접근법의 차이다. 이제 와서 보면 리들리 스콧은 할리우드 시스템 안에서 어찌 됐건 자기주장을 관철해 나가는 타입이라고 한다면, 제임스 카메론은 자신의 기호가 운 좋게도 할리우드 시스템과 일치하는 감독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블록버스터에 특화되어 있지만 작품성은 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그런 감독. 내러티브의 흡인력을 만들어나가는 능력에서는 단연코 스콧이 낫다고 본다. 2는 이제 와서 보면 2시간 30분에 달하는 러닝 타임이 오히려 집중을 흝뜨리고, 해병대원들의 대사는 80년대에는 코믹했을지는 몰라도 지금은 80년대 흔한 액션 영화의 도식적인 악당 같다. 1은 2025년의 시각으로도 전혀 촌스러운 구석이 보이지 않는 반면, 2는 VHS 시절의 추억을 환기시킨다. 속편이 전작보다 곰팡내가 나는 이유를 나는 감독의 성향에서밖에 찾지 못하겠다. (★★★)
23.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006)
뭔가 <인턴>의 프리퀄 같다. 일잘러는 어떤 분야에서도 통한다는 주제와 갈등이 발생해도 안전장치가 있는 갈등이라는 점에서 아무 생각없이 볼 수 있는 영화. 메릴 스트립 좋아해서 본 것이기 때문에 각별한 감상은 없고 2시간 동안 흐뭇했다.
(★★★)
24. 알카트라즈 탈출 (1979)
많은 탈옥영화의 전범이 되는 영화.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돈 시겔이 감독이다. 하스미 시게히코가 이 감독을 좋아한다고 해서 의외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돈 시겔은 연출이 굉장히 정교하고 안정적이다. 요즘 영화였으면 여러 가지 굴곡을 만들어내면서 스릴을 자아냈겠지만 이 영화의 담담한 연출은 영화의 리얼리티에 더욱 힘을 실어주는 것 같다. 70년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진부하지 않고 재미있다. (★★★)
25. 닌자 2 - 토요토미 히데요시를 암살하라 (1963)
야마모토 사츠오 감독 닌자 시리즈의 후속작. 이시카와 고에몬은 산속에 숨어 살다 오다 노부나가가 보낸 자객의 습격을 받고 불구덩이에 아이가 내던져 죽는 아픔을 겪는다. 복수의 일념으로 고에몬은 아케치 미츠히데를 부추겨 혼노지에서 오다 노부나가를 습격하게 하고, 이 틈에 노부나가 암살에 성공한다. 하지만 노부나가의 부장이던 훗날의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습격을 받는다. 1편까지는 신선한 면도 없지 않았지만 2편에 오니 지루하기 짝이 없다. 감독이 원작 소설의 유장한 줄거리를 다 담아내려고 한 것 같다. 그러다 보니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유기적으로 통합되지 못하고 따로 놀면서 지루함만 가중시키는 결과가 되었다. 이시카와 고에몬은 일본의 로빈 훗과 같은 존재로서 민중의 시각에서 전국시대의 역사를 재평가하는 원대한 이상을 품고 제작되었겠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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