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리 그레이엄
래리 그레이엄은 “Thank You"를 통해 스트리트 훵크의 효시가 되었다. 많은 밴드들의 초기작에서도 차핑(역자 주 - 래리 그레이엄이 창시한 베이스 주법의 하나로 쉽게 말하면 엄지와 검지만을 사용하던 과거의 주법과는 달리, 거의 모든 손가락을 사용하여 리듬감을 강조한 베이스 주법), 팝핑 그리고 플러킹과 같은 베이스 사운들을 들을 수 있겠지만, 기본적인 리프에 베이스로 액센트를 주는 것이 전형적인 수법이었던 데 비해, “Thank you”는 베이스의 팝핑을 주 멜로디로 삼았다. 이는 베이스에서 당김음 멜로디가 들어간 구절로 이루어져 있는데, 베이스 기타를 배경의 리듬악기로 쓰던 방식에서 곡 전체를 몰아가는 힘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Thank You” 이후 훵크에서 리듬과 멜로디는 모두 베이스의 영역이 되었다.
당시 제임스 브라운의 밴드에서 붓시 콜린스가 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제이비스조차도 래리 그레이엄의 창조성 앞에서는 한 수 접어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제1박에서 강세를 두는 것은 같았지만, 제이비스의 어느 누구도 베이스를 가지고 그런 팝핑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베이스 플레이어Bass Player>지(誌)에서 "훵크 자체의 표현 양식이 형성되는데 가장 고유하고 주요한 요인은 어쩌면 래리 그레이엄의 엄지손가락이었을 것이다.“라고 묘사했던 것처럼 말이다.
물론 그레이엄은 이러한 형식에 우연히 빠져든 것뿐이었다. 텍사스에서 태어나 (슬라이처럼) 이스트 베이 지역에서 성장한 그레이엄은 악기 연주를 독학으로 배웠다. 어머니와 트리오를 결성해 이스트 베이의 지방 클럽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던 그레이엄은 타악기 소리를 내기 위해 발로 밟는 페달로 오르간을 함께 썼는데, 오르간이 망가지자 베이스 기타를 하나 빌려서 리드 기타와 베이스 기타를 번갈아 연주했다. 점차 능숙해지자 그레이엄과 그의 어머니는 아예 드러머 없이 듀오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레이엄에 따르면, 그때가 “드럼이 없어서 그걸 벌충하려고 엄지로 줄을 튕기기 시작했”던 시기였다. 슬라이는 그레이엄에 대한 소문을 듣고 기꺼이 그가 출연하는 KSOL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시켰고, 그레이엄의 연주를 보자마자 그를 패밀리 스톤에 영입하기로 결정했다. 슬라이가 직접 베이스를 치기로 결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새로운 헤비 훵크에 대한 시도들이 더욱 늘어나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 후반에 이르자 훵크를 듣는 사람들은 점차로 감소했다. 슬라이의 역설적인 천재성은 그로 하여금 훵크에서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게 함으로써 새로운 장을 열었는데, 슬라이가 하늘높이 치솟는 그의 인기와는 반대로 콘서트를 빼먹고, 연주에 지각하거나 아무렇게나 차려입고 나타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슬라이는 점차 내향적인 사람이 되었으며 연예계를 멀리하게 되었다. 그렇게도 긍정적이고 매력적이었던 사람이 한순간에 시야에서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을 의아해하는 수백만의 사람들을 뒤로 한 채 말이다. 그 뒤로 패밀리 스톤이 재결성되어 무언가를 발표하는데 1년 반이 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제시한 새로운 것들은 위압적이었다. 바로 그 새로운 두 앨범
(20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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