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nematheca

2025년 영화 목록 - 7

Baron Samdi 2025. 5. 28. 13:47

31. 승부 (2025)

조훈현과 이창호 사제간의 대결을 그린 바둑 영화. 바둑을 몰라도 연기자들의 표정과 몸짓을 통해 승부의 추이를 알아가도록 한 연출이 좋았다. 바둑보다 더 좋았던 것은 최대한 80년대에 가깝게 구현한 미장센들. 물론 <오메가 맨>의 그 유명한 NG컷처럼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았지만 어느덧 잊혀져 간 옛 서울의 모습과 쭈쭈바, 바나나 우유 등이 특히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면서 든 생각은 과연 영화란 무엇이며, 영화적이란 무엇일까 하는 것이다. 공과 돈을 들여 잘 만든 영상물이기는 하지만 직전에 본 영화가 폴 토머스 앤더슨의 영화여서였는지, 이 영화에서 '영화다움'보다는 보기에 매끄럽지만 도식적인 연출을 보게 된다. 너무 기대가 커서였을까? (★★★)

 

32. 공포의 집 (1988)

H.P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4:3 화면비인 것으로 봐서 TV용 혹은 렌털용 영화였던 것 같다. 그보다도 반 페이지 정도의 괴담을 1시간 30분 분량으로 늘려놓으니 지루하기 짝이 없다. 30분 이후부터는 빨리감기로 봐야 했다. 80년대 특유의 작위적인 연기와 어설픈 특수효과들이 몰입을 방해한다. 고전 호러 중에는 이런 단점들을 잘 극복해낸 영화들도 많은데, 이 영화의 문제는 원작 자체인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러브크래프트를 읽고 공포를 느껴본 적이 없다. 아무런 역사성, 사회성도, 어떤 비극성도 담지 못한 채, 일개인의 과도한 망상에서 출현한 추상적인 악에서 무슨 공포를 느껴야 할까? 시골 도로를 달리다 스컹크 보고 핸들 꺾는 심약한 미국인들이나 볼 법한 공포 영화. (☆) 

 

33. 악마와의 토크쇼 (2024)

오컬트 팬으로서 당연히 좋아할 만한 소재이고 형식 면에서도 신선한 영화다. 후반부에 가서 나오는 몽타주 기법 식의 구성은 호불호가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존 프랑켄하이머의 <세컨드> 같은 영화들도 흥미롭게 본 터라 나쁘지 않았다. 아쉬운 점이라면 호러 팬들이 꽂히는 부분은 전경화된 스토리 이면의 백그라운드 스토리다. 아브락사스 신앙이 흥미롭고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미디어비판과 오컬트 호러를 결합하고 이를 아날로그적 형식에 담아냈다는 점에서 또 보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아도 다른 사람에게는 추천할 만한 영화다. (★★☆)

 

34. 1987 (2017)

전두환 정권이 몰락(노태우 계승이니까 아닌가?)해가는 과정을 두 학생의 죽음으로 풀어나가는 영화. 사회의 수많은 모순들이 꼬여 1987년 6월 항쟁으로 나아가는가를 굉장히 탁월한 방식으로 그려낸다. 코스타 가브라스를 연상시키는, 어쩌면 그보다도 나은 연출력과 서사적 구성이라고 할 만 하다. 수많은 인간 군상이 시대의 몰락과 여명을 대리하는데, 단순한 알레고리로 느껴지지 않고 인물의 생동감을 부여한다. 스쳐지나가는 인물이라도 평면적인 캐릭터가 없다. 모두 삶의 입체성을 구현하며 시대를 대리한다. 장준환 감독의 과작 성향으로 탁월한 연출 역량을 자주 보지 못하는 게 아쉽다. 이 영화가 그려내는 전두환 시대의 암울함은 코스타 가브라스가 <의문의 실종>의 초반부에서 묘사한 피노체트 정권의 폭압만큼이나 무심하게 지나가는 듯 하면서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있다. 단순한 영화를 넘어 시민적 교양으로 자리잡아야 할 영화. (★★★★)

 

35. 세븐 (1995)

데이빗 핀처는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감독이다. 현장이 부산하고 많은 테이크를 찍는 감독들은 탁월한 예술혼이 있다기보다는 스태프들과 소통할 줄 모르고 정확한 디렉션을 주지 못하는 감독이라는 편견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영화만큼은 정말로 걸작 느와르라 칭하지 않을 수없다. 모든 컷들이 정교하게 계산되어 있는 듯 하며 편집 리듬도 거의 천의무봉에 가까울 정도로 완벽하다. 오프닝의 타이포와 음악, 레이아웃 등에서 나타나는 밀레니엄 감성이 좀 촌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나중에 이 오프닝이 범인에 대한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달리 보인다. 죄sin와 범죄crime의 경계 등 생각할 거리가 많은 영화로 단순한 연쇄살인물과는 큰 차별점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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