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맨 인 더 다크 (2016)
<에이리언 : 로물루스>에서 페데 알바레즈의 솜씨를 맛 본 터라, 어느 정도 재미는 있겠거니 했는데 기대 이상이다. 페데 알바레즈는 폐쇄된 환경에서 각종 의외성이 돋보이는 장치를 잘 활용하는 현 시대 최고의 점프 스케어 장인이다. 노트북의 작은 화면과 저질 음향으로 봤는데도 깜짝깜짝 놀랄 정도다. 처음에는 동네악동들이 불쌍하게 사는 장애 노인을 괴롭히는 내용으로 <퍼니 게임>같은 악취미를 보여주는 영화일 줄 알았다. 하지만 점점 갈수록 노인이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충분한 당위를 부여하면서 점점 스릴이 높아진다. 아주 준수한 오락영화. (★★★☆)
27. 본 토마호크 (2015)
웨스 크레이븐의 <힐즈 아이즈>를 연상시키는 영화. 서부 개척시대 조용한 마을의 주민들이 식인을 일삼는 혈거인과 조우하는 내용. 활, 도끼와 리볼버의 대결이라든가, 리볼버의 탄약 제한 등을 잘 활용한 영리한 설정이지만, 연출이 형편없다. 커트 러셀과 패트릭 윌슨, 션 영 같은 유명 배우들이 나오지만 영화의 퀄리티는 눈이 썩는다고 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다. 아예 후반작업이 안 되어 있는 가편본 수준의 영화학과 과제물 같은 영화이며,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을 별 의미없는 인물들의 행위와 시덥잖은 농담에 할애하고 있다. 거장의 작품들은 인물들의 지나치는 듯한 사소한 대화들도 하나의 주제로 집약시킨다. 하지만 이 영화의 대사들은 단순히 시간을 끌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다. 시놉시스는 좋은데, 대본이 정리가 되어 있지 않으며 연출은 무정부 상태다. 80년대 TV영화 같은 엉성한 미장센, 엉뚱한 대사, 지루한 편집, 총체적 난국 같은 영화. (★☆)
28. 부기 나이트 (1997)
<본 토마호크>를 보고 이 영화를 보니, '본래 영화란 이런 것이다' 싶을 정도로 개안이 된다. 마이클 니콜스를 연상시키는 재기넘치는 편집과 촬영, 음향과 음악의 적절한 분배, 잘 된 영화란 이런 것이다. 70년대 포르노 산업과 대물 남배우라는 선정적인 소재와 미국 정치 지형과 영상 산업의 변화라는 거시적 흐름을 잘 결합시킨 걸작이다. (예컨대, 레이건이 남미 극우 정권을 비호하면서 미국 국내에 코카인이 넘쳐 흐르기 시작한 시대이지만, 이를 정면으로 비판하지 않는다. 그저 영화 내내 코카인은 흘러넘친다.)90년대 영화 중에서도 지금의 시각에서는 촌스러운 영화가 많은데, 이 영화는 올해 찍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다. 모든 관객의 이목이 집중된 거대 성기도 마지막 중요한 순간에 한번 비춰줄 정도로 절제된 연출, 모든 컷들이 과장되지 않은 방식으로 정교하게 조립되어 있다. 폴 토마스 앤더슨이라는 현대의 거장을 이제야 알게 되어 아쉬울 정도다. 디스코 팬으로서 선곡이 좀 통속적이라는 게 안타까울 뿐 모든 것이 완벽한 영화. (★★★★★)
29. 그것 (2017)
원작소설도 읽고 TV판도 괜찮게 보았지만 이 영화는 도저히 못보겠어서 중간에 포기. 빅토르 에리세 영화를 볼 때 이보다도 하품은 덜 했을 텐데. 호러는 정서에 맞지 않으면 극도로 지루해진다. 영화에서 구현된 80년대로 AI가 재현한 옛날 음악 같고, 페니와이즈의 액션은 맥락없이 과장되어 불쾌감만 준다. 호러는 그 발원의 계기와 사회적, 역사적 맥락의 결합이 매우 중요하며 공포란 매우 주관적인 감정인 만큼, 얼마나 보편성에 도달하느냐가 중요한 과제다. 이 영화는 그런 점에서 실패작이다. 호러 영화가 미국 박스오피스에서 성공했다면 미국 관객들의 후진성 때문이지, 영화가 좋아서는 아닐 것이다. (★)
30. 제 5도살장 (1972)
<스팅>, <내일을 향해 쏴라>의 조지 로이 힐이 커트 보네거트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인데, 원작의 분위기를 잘 옮겼다는 원작자의 칭찬에도 불구하고 가뜩이나 복잡한 소설의 내용이 축약되어 좀체 알아먹기 힘든 유형의 영화가 되었다. 아주 재미없을 정도는 아니지만 단순한 메시지에 비해 내용만 복잡하게 만든 것 같다. 디졸브를 아주 효과적으로 사용한 영화. 영화적으로 뛰어나다기 보다는 원작의 내용을 최대한 담아내기에 급급해 보인다. 특기할 점은 음악감독이 글렌 굴드라는 점. 글렌 굴드의 기존 레코딩을 사용한 것인지, 새로운 스코어를 받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이름이 올라있다는 것 자체가 흥미롭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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