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nkatology

En-To-End 인터뷰

Baron Samdi 2025. 4. 3. 13:57

 

2021년 4월 4일, En-To-End의 음반을 리마스터링한 Backatya 레코드에서 엔투엔드 멤버인 토니 섄드Tony Shand와 데이비드 헨릭스David Henriques의 인터뷰를 게재했다. 저 멀리 극동에서 이들의 음반을 손에 넣기를 오랫동안 소망했고, 여전히 소망하는 팬으로서 이들에 대해 더 알고 싶기도 해서 번역해 봤다. 영국 훵크 씬에 대해 문외한이고 배경지식이 없다면 인터뷰의 문맥을 따라가기 힘들 수도 있다. 게다가 음악 매거진 같은 곳에서 하는 전문적인 인터뷰가 아닌 데다 멤버들마저 굉장한 눌변이라서 굉장히 불친절하게 느껴질 것이다. 오랜 영국 훵크 팬으로서 당시 밴드들에 대한 약간의 지식은 있어 주를 달았지만, 영어실력이 일천해서인지 난무하는 약어들, 음악계 은어들을 우리말로 잘 옮겼는지 모르겠다. 그저 열렬한 애정 표현으로 이해해주셨으면 한다. 


 

북 런던 출신의 듀오 엔투엔드의 첫 음반이 영국 백앳처 레코드에서 발매되었다. 지난 일요일 리드 싱어 토니 섄드와 키보디스트 데이비드 헨릭스가 자신들이 해온 음악과 밴드 초기에 있었던 일에 대해 입을 열었다. 

 

토니 : 우리는 중학교 동창이었어요. 북런던 엔필드에 있는 비숍 스톱포드Bishop Stopford라고. 

 

학창 시절에 어떤 음악을 들으셨나요? 어떤 음악들이었어요? 전부 <탑 오브 더 팝스>에 나오는 유명한 곡들이었나요? 아니면 레코드 가게에 있는 수입 음반들이었나요?

 

토니 : 중3 때였던 것 같아요. 제가 조그맣고 각진 카세트 기계 같은 것을 가지고 다녔는데, 화학실에 있는 스피커에 연결해 보곤 했었어요. 화학실에 프로젝터와 큰 스피커가 있었거든요. (웃음) 그래서 프로젝터에 기계를 연결하고 제가 가져온 음악을 틀면 프로젝터(역자 주 - 원문은 카메라, 빔이 나오는 프로젝터 렌즈를 카메라로 부른 것으로 추정.)와 스피커를 통해서 크게 증폭되어 나왔어요. 그때 처음으로 저와 데이브가 서로를 알게 되었죠. 우리는 함께 레게와 소울 음악을 들었는데, 당시 그런 음악은 중학생들이 듣던 음악이 아니었거든요. 다른 애들은 보통 팝음악을 들었지만, 제 기억으로는 데이브와 알고 지내게 된 게 중3 때 같아요. 왜냐하면 그때 우리는 같은 장르의 음악을 들었었거든요. 레게, 소울, R&B, 디스코..... 그래서.... 네, 그때 우리가 처음으로 친해졌어요. 

 

데이브 씨, 교회에서 음악을 연주하셨다고 했죠? 맞습니까? 당신 이름이 'COGIC (역자 주 -  오순절 교단의 일종인 '그리스도 안의 하나님 교회') 앨범에 있어요. 

 

데이브 : 네....맞아요. 교회에서 키보드를 연주했죠. 매주 일요일에 연주했고요. 거기에는 교회 밴드가 있었는데 그 밴드는 대부분.... 그 앨범에 참여했죠. 

 

독학하신 건가요? 음악 같은 것들을?

 

데이브 : 네, 아시다시피 어렸을 적에 다 그렇듯이... 제가 어렸을 때 피아노 레슨을 받았어요. 피아노는 뭐 별 관심이 없이 하는 거 아시잖아요. 그냥 해야 하니까 하는 거. 그런데 저는 재미있었어요. 음악 연주가요. 하지만 제가 배우기 시작했던 것들이 제가 배우고 싶어 하던 것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것만 계속했죠. 

 

그러면 언제 이렇게 생각하신 건가요? "나도 음악을 하고 음반을 내보고 싶다"고요. 교회 음반을 낼 때였나요, 아니면 이미 "그래, 나는 드럼 머신도 있고 4 트랙 레코더도 있어...... 비트를 찍어보고 싶다......"  무슨 말이냐면 그냥 비트를 찍는다는 표현보다는 아시다시피 '작곡' 이라 해야 맞겠네요. 

 

데이브 : 네, 맞아요! 우리는 비트 메이킹 비슷한 것을 하고 있었고.... 다른 장비들도 써봤고....네 뭔가 간접적인long way 'round 방식으로 음악을 했었어요. 그런 걸 하면서 단지 음악을 만든다는 게 재미있었고요. "이걸로 우리가 뭔가 특별한 걸 만들어내야겠어" 내지는 "이거 터질 거야"같은 생각은 없었어요. 그냥 우리는 음악 만드는 게 좋았어요.

 

저희 마스터링 엔지니어가 "Are You Gonna Be"의 MR (2021년 리마스터링 버전)을 완성했을 때 이런 말을 했죠. "이게 이런 음악들 중에서 내 최애 트랙이야. Davy Dmx (역자 주 - 뉴욕 출신의 힙합 DJ) 같은데!" (일동 웃음) Tuccedo라는 밴드에 계셨죠? 보컬이셨나요? 키보드였나요?

 

데이브 : 네, 키보드였어요. 토니랑 했던 작업을 그 밴드에서도 많이 했었고, 뭐냐면....어....  작곡이죠. 그리고 프로듀서가 인코그니토의 폴 '텁스' 윌리엄스였어요. 맞나? 아마 그럴 겁니다. 인코그니토의 그분요. 그런데 그분은 대부분 경력이 라이트 오브 더 월드(역자 주 - 인코그니토의 전신인 전설적인 영국 재즈 훵크 밴드)였고 나중에 베거 앤 코라는 밴드가 되었죠. 네 그분이 프로듀싱을 했어요. 

 

그러면 같이 음악을 하신 거죠?

 

데이브 : 글쎄요. 저는 Tuccedo에 쓸 곡을 썼고 가사는 보컬이 썼던 거긴 한데, 그러고 보니 다 우리가 한 거네요. 대부분은 토니와 함께 작업한 것이고요. 턱시도와 작업할 때도 토니가 작업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작업했어요. 

 

그러면 'Confuzzion'같은 곡들도 스튜디오에서 미리 프로그래밍된 작업물을 갖고 하신 건지요. 아니다, 아무런 준비 없이 들어가서 즉석에서 만드신 건가요?

 

데이브 : 거의 대부분이 즉석에서 만든 거죠. (웃음)

토니 : 즉흥적으로 한 거죠. 'Confuzzion'은 처음에 말씀드렸다시피, 오리지널 버전으로서는요. 가사까지는 아니었지만 음악은.... 사우스 엔드에서 어떤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준 테이프 수록곡에 제가 가사를 붙였어요. 

 

그게 누구였나요?

 

토니 : 아무래도 이름이 기억 나지 않아요. 제가 알기로는 그 사람이 일곱 트랙 정도가 들어있는 테이프를 저한테 줬는데요. 어제 다른 테이프를 또 몇 개 발견했습니다. 제가 보여드리려면 따로 빼놔야겠네요. 저는 그 곡들에 쓸 가사를 썼는데, 그 사람은 작업을 계속하고 싶지 않아 하더라고요.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저는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데이브를 불렀어요. 그 사람을 만나기 몇 달 전 어느 공연에서 데이브를 만나서 어떤 밴드에 있다는 얘기를 들있었거든요.

 

그래서 테이프에 수록된 곡들과는 전혀 다른 사운드가 나온 거네요?

 

토니 : 완전히 다르죠. 그 사람 음악에 제가 가사를 붙여두었다가, 데이브와 함께 스튜디오 작업을 시작해보니 완전히 다른 작업을 해보고 싶더라고요. 나중에 그 사람이 이렇게 말할 거 아니에요? "아니, 이거 내 곡인데!" 그래서 저는 그 사람 음악의 어떤 흔적도 남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와 데이브가 만든 곡이 오리지널 버전과 완전히 달라지게 된 겁니다. 

 

제가 보기에  음반들에 푹 빠져 계시는데 DJ를 해보시거나 음향기기에 손을 대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데이브 : 저는 아니고요 (토니를 돌아보며) 넌 했었잖아. 

토니 : 저는 몇 년간 DJ를 했어요. WKD(역자 주 - 클럽의 이름으로 추정)에서 일할 때였죠. 

 

아, 그렇군요. 아주 옛날은 아니네요. 

 

토니 : 옛날에 클럽은 많이 갔었죠. 아주 죽돌이였죠. 

 

어떤 클럽이었죠? 어떤 곳이었습니까?

 

토니 : 처음 가본 곳은 사우스게이트의 '로열티'라는 곳이었는데, 거기서 로이 에이어스를 봤고요..... 라이트 오브 더 월드도 봤고.... 프로기, 크리스 힐, 로비 빈센트, 이언 레딩 같은 DJ들이 틀어주는 음악을 들었고 프로기를 따라서 사우스엔드에 있는 제로 6라는 곳으로 갔죠. 주중의 대부분을 거기로 갔고, 거기서 아까 얘기했던 테이프를 준 남자도 만났어요. 클럽에 왜 갔느냐, 우리가 듣고 싶은 음악도 틀어주고, 또 거기 가면 신나게 춤을 출 수 있었거든요. 

 

카운트 서클(역자 주 - 영국에 스카와 레게 붐을 일으킨 클럽 운영자)이 운영하던 Q 클럽 기억나세요? 클럽 다니시던 시기보다는 전이지만.....

 

토니 : Q 클럽 기억납니다. 근데 가본 적은 없어요. 기억은 납니다. 

 

크래커스는 어떤가요?

 

토니 : 네, 거기는 가봤죠. 처음 몇 번 가봤을 때는 괜찮았는데 좀 있으니 재미가 없더라고요. 거기는 이따금씩 두 명의 댄서들을 놓고 무대에서 댄스 배틀standoff을 펼쳤는데, 처음에는 "좋아! 이거 멋있는데!"하고 즐겁지만, 좀 있으니 질려버리기 시작했어요. 댄서 둘이서 무대를 독차지하면 사람들은 그저 서서 구경만 해야 했거든요. 다들 춤추고 싶어 하니까 이런 건 지루하죠. 그리고 당시에는 많은 사람들이 춤을 좀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도 했지만 우리는 그저 재미만 있으면 그만이었고 우리도 춤을 추고 싶었기 때문에 결국 다른 곳으로 옮겨버렸죠. 

 

클럽 말고는, 어떤 라디오 방송을 즐겨 들으셨나요?

 

토니 : 저는 솔라 라디오를 들었습니다. 

데이브 : 그래요. 솔라 라디오. 

토니 : 그리고 로비 빈센트도요. 일요일 아침에 하는 그 사람 방송이 있었어요. 그레그 에드워즈(역자 주 - 영국의 유명 DJ 겸 라디오 진행자, 캐피털 라디오의 설립자)도 다른 채널에서 방송을 했었고, 캐피털 라디오에서 하는 '베스트 디스코 인 타운'을 보려고 라이시엄 볼룸에도 갔었어요.... 그레그 에드워즈! (웃음) 진짜 그 사람이랑 같이 찍은 사진도 있어요. 어딘가에 처박아두고 있다가 얼마 전에 찾아냈죠. 

 

소울 마피아 클릭 같은 것들에 대해서도 언급하셨는데, 그 당시에 들으시던 흑인 DJ들도 많이 있었나요? 레게 말고, 구체적으로 소울이나 부기 음악을 트는 DJ들 말예요.  

 

데이브 : 있었죠. 폴 앤더슨요. 

토니 : 아니요. 제가 처음 (디제잉을) 시작했을 때, 클럽에 갔는데 무대에서 춤추던 사람들이 완전히 동작을 멈추고 어떤 사람을 쳐다보던 게 기억납니다. (역자 주 - 폴 앤더슨이 유명해서인지, 흑인이어서였는지는 불분명하지만 문맥상 둘 다였을 가능성이 크다.) 그게 폴 '트러블' 앤더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어서 디제잉을 시작하더라고요. 그분이 틀어주는 음악을 듣기는 했지만 많이 듣지는 않았는데 왜냐하면 그분은 아니었던 게.... 이런 DJ들 그리고 대부분의 DJ를 알게 되려면 음악을 엄청나게 파야 되는데.... 그 당시에는 흑인 DJ들도 거의 몇 없었어요. 

데이브 : 그렇네요. 없었네요. 

토니 : 없었어요. 제가 클럽을 처음 다닐 때는 전혀. 

 

80년대 중반에 처음 키스 라디오 채널이 나왔을 때도 기억 나시나요? (역자 주 -  키스 네트워크는 1985년 해적 방송으로 출발해 수많은 소울, 훵크, 재즈 팬들의 지지를 받았고 훗날 정식 인가를 받게 된다.)

 

토니 : 그럼요. 왜냐하면 제가 그때 뮤직 파워 그리고 그 채널의 매니저들과 함께 일하고 있었거든요. 제가 일전에 얘기했던, 인트리그의 매니저 닉 파워 아시죠? 게다가 H라는 이름의 다른 매니저도 있었고, 이 둘 모두 키스 라디오의 좋은 DJ들이었어요. 처음 이 채널이 시작할 때부터 키스에 있었죠. 할리우드 가에 있는 거요.  

 

션 P(역자 주 - 엔투엔드의 리믹스를 맡은 DJ)가 키스 채널에서 활동하던 그리니Greeny라는 이름의 DJ 얘기를 꺼낸 적이 있어요. 레어 그루브를 주로 틀던, 앞서 나가던 DJ였는데, 이 사람도 기억하십니까?

 

토니 : 아니요....사실대로 말씀드리자면, 닉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에 그런 건데, 사실 키스를 듣지는 않았어요. (웃음) 거기 스티커나 그런 것들을 갖고 있었을 뿐이지. 그게 답니다. 키스가 처음 시작했을 때 생각이 나는데.... 지금 댁이 갖고 계시는 그 랩 트랙 아시죠?

 

뭐죠? "Respect Due인가요?

 

토니 : 그게 그걸 겁니다. 키스에서 공모 같은 게 있었는데 제가 곡을 써서 보낸 거예요.  2등인가 했던 것 같아요. 그걸 녹음하려고 루턴Luton에 갔었거든요. 네, 키스는 안 들었습니다. 대부분 제가 구입한 음반이나 제가 만든 믹스테이프들을 들었죠. 가끔씩 라디오를 틀면 좋은 프로그램도 있죠. 하지만 그런 것과 별도로 제 음반들을 들었습니다. 

 

뮤직 파워 그리고 'Let Sleeping Dogs Lie'와 'Like The Way You Do It' 이 두 곡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이 두 곡과 뭔가 연관이 있으신가요?

 

토니 : 아니요. 첫 트랙과 두번째 트랙 모두 그 사람들(인트리그)이 한 것이고 저는 같이 무대에 올라가서 뒤에서 춤추고 노래해 준 것뿐입니다. 특히 두 번째 트랙은 어째서인지..... 이 곡을 알았던 게.... 그때 매니저가 녹음 스튜디오로 못 들어가게 해서, 이렇게 생각했었죠. "좋아, 내가 이 곡 작업에 참여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 말이군, 노래는 한 소절도 안 부르고 그냥 춤이나 춰야겠다." 제가 인트리그를 위해 몇 곡을 써줬을 때야 비로소 매니지먼트를 바꿨어요. 그리고 나서야 내가 이 밴드 멤버로 받아들여졌다는 기분이 들었죠. 

 

그게 "Heaven Made"와 "Ropes"라는 곡이었죠?

 

토니 : "Heaven Made"와 "Ropes" 맞아요. 

 

그러면 얘기를 좀 앞으로 건너 뛰어서, 랩 트랙인 "Everybody's Singing"을 만들면서 루즈 엔즈의 "Love Controversy"를 샘플링하셨잖아요.... 루즈 엔즈는 당신들에게 어떤 큰 영향을 미쳤나요? 특히 요즘 모든 사람들이 이런 음악을 완전한 스트리트 소울이라고 부르는데요. 당시에는 이렇게 부를 만한 다른 밴드들이 잇었나요? 제가 봤을 때, 루즈 엔즈는 메이저급의 아티스트지만, 당시에 그런 스트리트 소울 신에서 당신들과 같은 위치에 있던 다른 아티스트가 있었을까요?

 

토니 : 소울 투 소울이 제게 큰 영향을 주었죠. 

데이브 : 소울 투 소울이 그 시대를 이끌던 리더 격의 뮤지션이었어요. 

토니 : 네, 이 밴드 전에는 세컨드 이미지가 있었고, 또 누가 있었더라.... 그리고 하이 텐션요!

 

쿨 노츠the Cool Notes는 기억나십니까?

 

토니 : 그럼요, 우리가 여행을 갔는데.... 우리가 인트리그에 있을 때 말이죠. 쿨 노츠와 함께 공연을 많이 했었어요. 인트리그의 매니저가 그쪽과 확실히 뭔가 관계가 있었어요. 항상 우리는 같이 PA(역자 주 - 의미가 정확하지 않은데, 문맥상 스튜디오 작업을 하는 전자음악 뮤지션이나 DJ들이 클럽에서 자신의 음악을 대중들 앞에 선보이는 Live PA를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를 했던 것 같아요. 

 

미발표곡 "I Still Love You"에 대해서도 알려주세요. 

 

토니 : 음, 지금 제게 완성본을 들려주셨는데..... 말씀을 드리자면 이건 제가 인트리그에서 쓰려고 써뒀던 곡들을 찾은 것인데 이미 완성본을 갖고 계시는군요. 그리고 그때 제가 다른 카세트테이프에 인트리그 곡을 쓴 것을 담아드렸었죠, 그렇죠? 제가 인트리그를 위해 그렇게 많은 곡을 써뒀는지는 몰랐는데 비로소 듣게 되는군요. 데이브에게 해명해야겠습니다. 이 곡을 쓰던 당시 세션이 기억나는데요. 우리 모두가 모여 공연을 하기로 했었는데, 밴드 멤버 중 2명인가가 나타나지를 않아서 제가 부르려고 쓴 곡을 래리에게 시켰고, 그래서 이 곡이 나오게 된 것이죠.  

 

그러면 거기서 노래도 부르셨나요?

 

토니 : 노래를 부른 사람은 래리였고요 저는 백보컬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순서라는 게 있었어요. 제가 그런 사람입니다. (웃음) 메인 보컬은 래리였습니다. 저는 백보컬을 맡았고요. 

 

저는 이런 음악을 "스트리트 소울"이라고 지칭하는 사람들을 봐왔는데요. 두 분이 활동하시던 87년에서 92년에도 이런 용어들을 많이 사용했는지, 아니면 이게 사람들이 독립적으로 이런 음악을 만들어서 발표해서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이게 음악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인지 궁금하네요. 

 

데이브 : 제가 보기에는 사물에는 그저 이름이 붙게 마련이죠, 안 그런가요? 음악이 그렇게 들려서겠죠. 그건 아마도 미국에서 영향을 받은 음악이지만 영국적인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들을 지칭하는 말일 겁니다. 여기에는 항상 영국적인 취향이 있어서 그전에 지칭하던 용어로 부를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새로운 이름이 필요했던 거죠. 

토니 : 그렇죠. 우리가 이 음악에 대해 얘기를 나눴을 때가 생각나네요. 우리가 그렇게 이름 붙인 것은 아니라고 말씀드렸던 것 기억하시죠? 데이브가 말씀드렸다시피, 우리는 이런 것을 그저 음악이라고 불렀어요. 데이브가 제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확실히 설명해 줬네요. 

 

맞습니다. 그리고 데이브 씨? 당시에 어떤 프로듀서의 영향이 있었습니까? 엔투엔드의 프로듀서를 하시면서 누구를 참고했나요?

 

데이브 : 글쎄요, 루서 밴드로스와 샤카 칸 같은 아티스트 뒤에서 일했던 프로듀서들이죠. 아리프 마딘Arif Mardin은 몇 곡의 샤카 칸 곡들을 프로듀스 했고요. 그런 프로듀서들, 큰 히트곡들을 만들어내고, 그 사람들이 만들어낸 사운드들, 사람들이 어느 정도 기대하고 열망하는 그런 제작물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요. 왜냐하면 우리 영국인들은 항상 미국 시장을 겨냥해 왔잖아요. 그래서 명성 높은 프로듀서들이 영국 같은 데서 활동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여기 영국에서 괜찮은 작품들을 좀 뽑아냈다지만 그런 것들은  큰 시장을 겨냥한 것들이 아니었어요. 

 

PA에 대해서는요? 예전에 런던 동부에서 했던 것을 하나 언급하셨던데? 더 하셨던 게 있나요?

 

토니 : (웃음) 데이브는 하나도 기억 못합니다. 

데이브 : 정말 80년대에 있었던 일은 대부분 기억 안 나요. (웃음)

토니 : 데이브가 기억 못하는 걸 하나 알려줄게요. 몇 달 전에 제 동생이...."맞아, 형 PA 몇 번 했었어." 사실, 저는 완전히 잊어먹고 있었거든요. 제 동생이 우리가 PA를 했다는 걸 알려주기 전까지는요. 제가 일전에 말씀드린 랩 트랙 있죠?

 

데이브 씨가 썼던 "Changes"요?

 

토니 : "Never Change"죠. 우리는 일포드에 있는 어떤 클럽에서 PA를 했어요. 제 기억으로는 저와 데이브가 잘 만들어진, 어떤 무대에서 아주 많은 청중들에게 둘러싸여 진행했던 것 같아요. 이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나네요. "좀 더 가까이, 좀 더 가까이! 우리 사이가 너무 멀잖아!"(웃음)  어떻게 해야 될지 몰랐었거든요. 다른 PA에서는 정말 뭘 했는지 기억이 하나도 안 나는데 제 동생은 기억하더라고요. 

데이브 : 우리가 PA를 했던 걸 기억한다하더라도 어디서 했는지, 어떤 클럽이었는지 정확히 말씀드릴 수는 없어요. 그 당시 반응은 어땠을까요? 그 당시는 그 지역 출신 아티스트가 PA를 하면 대개 사람들은 좋은 반응을 보여주지만, 일반적으로는.....

토니 : 일반적으로 우리는 이렇게 (기운없이 손뼉 치는 모습을 흉내 내며), 좋은 반응은 없었죠. 제대로 기억하는 게 맞다면 우리는 그저 소소하고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던 것 같아요. 방금 생각이 났는데.... 제가 "Are You Gonna Be"의 PA를 했을 때네요. 런던 동부 어디였나, 레게 클럽이었는데 그때는 잘 됐었어요. 

 

동생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동생분이 아트워크와 로고 디자인을 다 하셨어요. 모든 작업이 거의 다 손수 개인제작인데요. 제트 스타 (역자 주 - 영국의 음반유통업체)에 유통시키려고 직접 레이블 인장을 찍으신 건가요?

 

토니 : 아니요. 제트 스타에서 우리한테 레이블 이름을 박아준 거예요. 그래서 그 사람들 때문에 이름에 오자가 나온 거예요. (역자 주 - 원래 의도했던 이름은 En-To-End가 아닌 End-To-End로 보인다.)

 

그 사람들이 음반 생산에도 신경을 써주던가요?

 

토니 : 아니요. 첫번째 7인치 싱글은 TS (역자 주 - 토니 섄드의 약자로 보인다.) 레코드라는 이름으로 나왔죠. 그거 다 제 돈으로 한 겁니다. 직접 음반 프레스 공장에 찾아가서 레이블 이름을 이렇게 넣은 거예요. 거기 가서 제작이 끝난 음반을 집어 들던 생각이 나네요. 그러고는 차 뒤에 싣고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와아아아! 나도 내 음반이 있다" 그러고 나서도 음반 산업에 대해서도 몰랐고 누구에게 연락해야 할지도 몰랐기 때문에, 그걸 들고 그냥 제트 스타로 찾아갔던 기억이 납니다. 거기 가서 음반을 틀어주니까 좀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러면서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클럽 버전도 만들어줄 수 있나요?" 그래서 클럽 버전을 만들어갔고 그때부터 제트스타와 함께 한 거예요. 우리가 스튜디오에 가고 싶을 때마다 이렇게 얘기했죠. "파머 씨, 저희 들어가서 음반을 좀 만들고 싶은데요." 그러면 우리는 운이 좋은 게, "그래, 가서 만들어보렴."하고 파머 씨가 말씀하시는 거예요. 우리가 만든 모든 트랙이 두 번의 세션에서 다 만들어졌어요. 세 번 이상 했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요. 우리가 처음 스튜디오에 들어가서 앉아있을 때 뭔가가 제 머릿속을 헤집는 느낌이 났어요...... 제가 드럼과 베이스라인을 잡아나가니까 데이브가 거기에 맞춰 연주를 시작했고요. 데이브가 뒤에서 코드 몇 개를 잡고 연주하는 것을 들어보니, "아!" 하는 생각이 떠오르더라고요. 데이브가 코드를 연주하면 제 머릿속에는 가사가 떠오르기 시작하고요. 제가 뭔가를 써내면 데이브가 또 다른 뭔가를 내보여줘요. 우리가 하이햇을 넣고 드럼 비트를 깔면, 데이브가 베이스 라인을 잡아갔죠. 

데이브 :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는 스튜디오에서 쓸 수 있는 시간이 아주 적었다는 점예요. 원하는 대로 쓸 수 있는 요즘 같지는 않죠. 그때는 먼저 시간을 정해 예약하고 시간을 아주 영리하게 써야 했어요. 

토니 : .....아아아주 영리하게요. (웃음) 맞아요. 모든 트랙이 다 24시간 내에 만들어진 겁니다. 

 

"Confuzzion"의 7인치는 얼마나 많이 찍어냈나요?

 

토니 : 아마 500장 정도요.

 

맞아요. 그리고 반응은 어땠습니까? 당연히 어딘가로 팔려나갔을 것이고, 제가 볼 때 아마 사람들이 이 음반을 라디오에서 틀었을 텐데요. 버밍엄이든, 맨체스터든, 아니면 이 나라 어디엔가 있는 해적 방송에서라도.

 

데이브 : 우리는 그런 피드백은 못 받아 봤습니다. 

토니 :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 곡이 방송되는 것은 한 번도 못 봤어요. 그래서 저희한테 요청을 주셨을 때... 그러니까 데이브한테 전화가 와서 누가 우리 음악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을 때 제가 뭐랬었죠? (데이브를 쳐다보며)  "왜애?" 이랬죠. (웃음) 아무도 우리 음악을 안 들어줬고, 우리는 유명한 밴드도 아니었고 완전히 무명이었는데.

 

음... 이제는 아니죠. (일동 웃음) 이제는 때가 되었습니다.....요즘 반응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데이브 : 적은 소수지만 열성팬들이 알아준다니 기쁘지요. 사람들이 이런 음악을 좋아해준다니. 맞아요. 사람들이 여전히 이런 음악을 즐긴다니 흐뭇합니다. 

토니 : 데이브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제가 데이브에게 이렇게 얘기했어요. 당신이 우리 음반을 건네주고 그 음반을 보고 또 그 음반에 새겨진 우리 이름을 보니 뭐랄까 "우와, 이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사람들이 사고 싶어 하는 음반을 우리가 만들어냈다니" 그리고 그게 제 행복이었어요. 제게 그 외의 것은 보너스죠.

데이브 : 네, 사람들이 실제 음반들을 소유하고 싶어한다니 좀 소름 돋네요. 

 

그러면 WKD Tone에서 일하면서 프로모터로 일하셨나요? 아니면 실제로 바 매니저 같은 일이었나요?

 

토니 : 저는 바 매니저로 시작했습니다. 매니저 중 한 명이 지인이었거든요. 그 친구는 화요일 밤에 근무했는데 그날은 완전히 엉망이었어서 제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화요일 밤에 뭘 좀 시도해 볼래?" 그래서 '재즈의 밤'을 시작했고 연주를 맡을 하우스 밴드를 고용했죠. 그때 밴드 모집 광고를 내걸어서 만약에 재즈의 밤에 참여하고 싶으면 녹음한 테이프를 보내라고 했어요. 누구든지 와서 계약을 체결할 수 있게 만들어놓고는 이런 일을 몇 년 동안 했었죠. 그래서 몇몇 괜찮은 밴드들을 확보했습니다. 바에서도 일했고 가끔씩은 금요일밤에 그리고 주로 토요일 밤에는 DJ로도 나섰고... 그렇죠. 그때는 돈을 그렇게 벌었죠. 

 

거기서 "You Could Never Change" 녹음에 참여할 뮤지션들도 모으셨나요?

 

토니 : WKD는 일요일 밤마다 공개무대를 열고는 했는데 그 트랙에서 노래 부른 친구 있죠, 그 친구가 공개무대에서 데려온 애고요. 거기에다 브라이언 체임버스Bryan Chambers라고, 걔도 공개무대에서 하던 애고. 

 

맞아요. "Gotta Get Away"였죠? 

 

토니 : 네 그게 그 친구 첫 음반이었어요. 커리어의 첫 음반을 저와 함께 한 셈이죠. (웃음)  좀 웃긴 얘기인데, 제가 사우스포트에서 소울 공연에 갔었는데 무대에 선 브라이언 체임버스를 본 거예요. 그런데 그 친구가 우리 노래를 부르고 있더라고요. 그 친구는 저를 내려다보고 저는 그 친구를 올려다봤어요. 그리고는 이렇게 생각했죠. "야 이 씨발 너 여기서 뭐 하고 있냐?" (웃음)..... 그게 그 친구 PA여서 그 노래를 부르고 있었던 거예요. 그게 그 친구가 발표한 첫 곡이었고 그 곡부터 그 친구 앞날이 훤히 열렸죠. 씁쓸한 마음은 안 들었어요. (웃음) "그래, 이 좆같은 새끼야, 우리 노래 갖다가 잘 해봐라."  (웃음)

토니 : 엔투엔드의 모든 음악을 그런 마음에서 만든 거예요. (포스텍스의 4트랙 카세트 기기를 꺼내 보이며) 이걸 찾았는데 깜짝 놀랐잖아요!

 

데이브 씨는 그럼 드럼과 키보드는 뭘 쓰셨어요? 어떤 장비죠?

 

데이브 : (롤란드) 808요..... 소리가 독특해요. (야마하) DX-7 키보드랑 펜더 로즈도 있었고. "We Can Work It Out"는 마스터 테이프에서는 "Nothin's Happening"이라는 제목이었고요. 인트로가 서로 다른 몇 곡이 있었고.... 이 곡은 인트로가 아주 죽이죠. 이 곡을 들으면 아주 크고 낡은 돌비 오데온 장비로 된 영화를 봤던 생각이 나요. 

토니 :  어떤 버전은 기타 연주가 있고요 오리지널 버전을 많이 갖고 있지 않아서 또 어떤 버전은 곡 전체에 기타가 연주되기도 하고요. 저는 이 버전이 진짜 좋아요. 기타리스트가 스튜디오에 들어와서 연주하던 생각이 나는데, 우리는 그 사람 연주를 많이 쓰지는 못했어요. 시간이 짧아서, 그리고 그다음에 우리가 뭘 해야 할 지에 대해 몰두해야 했거든요.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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