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 음악 관련한 얘기를 할 일은 거의 안 생긴다. 가끔 비슷한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을 만나면 가끔 좋아하는 80년대 밴드에 대한 질문이 돌아오는데, 나는 영국 밴드 Imagination을 빼놓은 적이 없다. 온라인 쇼핑도 생소하던 시절부터 이들의 음반과 DVD를 영국에 별도 주문해서 들을 정도로 오래 좋아해 왔고, 내가 생각하는 '팝 역사상 가장 패셔너블한 밴드'이기 때문이다. 특히 리더 리 존의 카리스마와 뒤에서 문득, 문득 눈길을 끄는 애쉴리 잉그람, 에롤 케네디의 복장과 안무의 앙상블은 처음 봤을 때부터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예전부터 게이 댄스에 관심이 많은 이성애자로서, CCM 좋아하는 비기독교도로서 모순적인 취향을 가져왔기 때문에 화려한 복식 속에 80년대 브리티쉬 팝을 대표할 만한 사운드를 담은 이매지네이션이야말로 내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밴드인 것 같다. 그래도 이매지네이션을 생소해하는 사람들에게는 곧잘 이렇게 소개하곤 한다. '쉽게 말해 영국의 '소방차'같은 존재'라고.
(원문은 여기로, 직장 내 점심시간에 짬을 내어 번역해 놓은 것이니 다소간의 오역이 있더라도 감안하시고, 지적해주시면 겸허히 수용하도록 하겠습니다.)
런던에서 태어나 한때 뉴욕에서 성장한 리 존은 "Body Talk", "Changes", "Just An Illusion"(https://baronsamdi.tistory.com/173)과 같은 히트곡을 발표한 80년대 소울 밴드 Imagination의 리드 싱어로 인기를 끌었다. 그 후에는 배우, 솔로 가수, 영화 제작자로 활동했다. 현재는 영국 흑인 음악의 역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작업하고 있다. 그 와중에 25년이 넘는 시간을 결산하는 처음이자 새로운 이매지네이션의 앨범 <Retropia>를 시간을 내서 만들었다.
어떻게 음악계에 뛰어들게 되셨습니까?
저희 부모님이 갈라서고 나서 아버지가 저를 미국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당시는 Jacksons 열풍이 불던 때라 노래 잘하고 춤 잘 추는 흑인 꼬맹이들을 레코드 회사들이 데려다 키우던 시절이었죠. 11살 때 오디션을 보고 월드와이드 레코드라는 회사와 계약을 했는데, 노래, 연기 이런 것들을 기본적으로 갖춰주는 곳이었죠. 한동안 그 회사에 있었는데, 아버지가 학교 수업에 뒤떨어지는 것을 못마땅해했어요. 그래서 다시 저를 영국에 있는 엄마한테 보내버렸어요.
곧바로 다른 계약을 맺은 곳은 어디인가요?
학교 반 친구 중에 Russell Fraser라고 저만큼 말썽꾸러기가 있엇어요. 학교를 땡땡이치고 소호에 있는 크래커즈 (역자 주 - 런던의 디스코 클럽)에 소울, 훵크 공연들을 보러 다녔어요. 우리도 무대에 올라가서 뭔가 하고 싶어서 14살 때인가, 15살 때 그룹을 만들어서 레코드 회사에 데모 테이프를 가지고 갔어요. EMI 레코드사 로비에서 Snazz라는 이름의 산하 레코드 사를 운영하는 Roy Fisher라는 사람을 만났는데 즉석으로 그 사람 앞에서 오디션을 보고 그 회사로 들어갔죠. 싱글을 하나 냈는데 핀즈베리 파크(역자 주 - 핀즈베리 파크에서 열리는 핀즈베리 뮤직 페스티벌로 사료됨.)에서 Top 10 안에 들었고 그게 다예요. 우리는 벨벳 재킷을 입고 뱀가죽 구두를 신고, 학교에 가서는 '봐라, 우리 이제 팝스타다.' 이렇게 생각했죠. 다 너무 어렸었고 이 일을 배울 필요성가 있다고 마음먹었죠. 선술집(pub)과 노동자 계급의 클럽에서 노래를 했고요. 미국 아티스트들이 영국으로 건너오면 백업을 해주는 펑션 밴드(역자 주 - 다른 이의 곡을 커버하거나 결혼식, 파티 등에서 연주하는 밴드)에 있으면서 Chairman Of The Board, Delfonics의 백 보컬 일을 했었죠.
어떻게 이매지네이션은 80년대 초반에 인기를 끌게 되었습니까?
프로듀서였던 Tony Swain이 어떤 음악이 담긴 카세트를 주면서 이럽디다. "이 음악을 들으면 무슨 생각이 드는지 알려주게." 그래서 엄마 집에 들고 가서 부엌 식탁에서 가사를 쓰고 멜로디를 붙여서 "Body Talk"을 만들었어요. 그룹으로 나섰다가 망하면, 적어도 나중에 솔로로 나서도 되니까 먼저 그룹으로 활동하는 게 낫겠다 싶었어요. Ashley Ingram (기타, 베이스)한테 전화해서 "내가 이 회사(역자 주 - 토니 스웨인의 R&B 레코드로 추정)와 계약해서 스튜디오 작업에 들어갈 건데 함께 듀오로 활동해보자." 화이트 라벨(역자 주 - 제작자가 표기되지 않은 프로모션용 음반)로 낸 싱글로 클럽 신에 진출한 거죠. 몇 주, 몇 달 간은 대단했어요. 결국 차트에서 44위까지 올랐으니까요. 어떤 분이 <Top Of The Pops, TOTP>에서 우리를 중도하차시키면서부터는 근근이 버텨나갔죠. 드럼에 Errol Kennedy를 영입했을 무렵에는 Top 40는 아니었지만 <TOTP>에서 출연한 거의 첫 영국 흑인 밴드가 되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우리가 미국 흑인 그룹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다 우리가 미국에서 온 줄 알았죠.
그때 당시에도 선생님께서는 그 유명한 금박 옷들을 갖고 계셨나요?
처음에는 아니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에롤이 금박 바지를 입고 다녔고요. 먼저 알아두셔야 할 것이 80년대 초반에 여러분들이 보셨던 <TOTP>의 우리 복장들이 클럽에서 입던 옷들의 연장 선상에 있었다는 겁니다. 모두가 독특해 보이려고 애쓰던 때였죠. 아주 '엣지'있던 때였습니다. (very edgy) 훵카델릭, 팔리아먼트, 조지 클린턴 등을 봐온 데다, TV에서 3분 안에 엄청난 시각 효과를 만들어내야 할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옷을 입는 미국 밴드들을 많이 봐왔을 테니 그게 전혀 우스꽝스러워 보이지 않았어요. 하지만 우리가 영국 사람인 게 알려지자마자, '세상에, 이거 미친놈들이네(that's outrageous) 하지만 그게 참 영국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2013년에 <Retropia grow out of Flashback: The Very Best Of Imagination>이라는 이매지네이션의 새 앨범을 발매하셨는데요.
어떤 면에서는, 그 중 몇몇 곡들은 제가 예전에 써뒀던 곡인데요. "Make Your Mind Up"은 80년대에 썼는데 당시 이매지네이션의 성향과 사운드에 맞지 않아 빛을 못 보던 곡이고요. "Hello Goodbye"는 90년대에 제 매니저가 사망했을 때 썼던 곡인데 이제라도 앨범에 수록하는 게 맞겠다 싶었고요. "Fantasia"는 90년대에 제가 Johnny X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당시 화이트 라벨로 냈던 곡인데요. 팬들이 항상 듣고 싶어 해서 재작업해서 앨범에 넣었고요. 콘셉트 앨범 같은 면 때문에 Retropia로 불렀습니다. 클럽에 다니면서 재즈, 훵크, 소울 같은 음악을 듣던 때로 돌아가고 싶었나 봐요.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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