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nkatology

<Funk> 3-5 - 지미 헨드릭스 Pt. 3

Baron Samdi 2016. 6. 24. 16:40


헨드릭스를 피해갔던 유일한 것은 어쩌면 그에게 R&B 뮤지션으로서의 명성을 안겨다 줬을지도 모를 댄스곡이었다. 지미는 우드스톡에서 한 번 시도한 적이 있었지만 엔지니어가 손목을 잘 못 놀리는 바람에 과거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밴드 오브 집시즈’의 앨범에는 “Who Knows”라는 타이틀의 진정한 훵크 곡이 하나 들어있는데, 버디 마일즈의 엄청난 백비트와 지미의 뒤틀린 스캣(역자 주 - 가사 대신에 의미없는 음절로 노래를 부르는 것)이 그의 전매특허인 기타 디스토션에 실려 있다. (이 곡은 1989년 플래티넘을 달성한 랩 그룹 디지털 언더그라운드의 “The Way We Swing"에 샘플링되었는데, 이 곡은 헨드릭스에 대한 헌정으로 만들어졌다.)

 

지미는 후기작에서 점점 더 강렬한 훵키 그루브를 구사했는데, 그 결실이 “Cry of Love"와 “Rainbow Bridge”로 그는 그 곡들을 미처 마무리 짓지 못했다. (청취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댄스 뮤직이 없었어도 지미의 음악에는 알기 쉬운 단어들로 가사를 써서 듣기에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가사 내용이 너무 환상적이고 전위적이어서 흑인 라디오 포맷에는 잘 맞지 않았다. 물론 헨드릭스의 음악 중에는 “Foxey Lady”, "Crosstown Traffic" 그리고 "Castle Made of Sand"와 같이 흑인 라디오에서 틀도록 충분하게 짜인 곡들도 많다. 그러나 헨드릭스의 이미지가 아주 세심하게 백인들에게 맞춰져 있어서, 마케팅 면에서는 흑인 청중들에게 별 매력이 없었다. 단 그의 유산을 잘 보존하고 있는 뮤지션들과 록 비평가들이 백인적인 음악 산업 내에서 그를 ‘사이키델릭 록의 아버지’로 선언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인 뮤지션들에게 남긴 지미 헨드릭스의 영향력은 심대했다. 70년대에 드러머 버디 마일즈는 ‘버디 마일즈 익스프레스 The Buddy Miles Express"라는 이름으로 일련의 그루비하고 걸죽한 록 음반들을 연달아 발표함으로써, 스타덤으로 향한 행보를 가속화했다. 또한 아이즐리 브라더즈는 헨드릭스의 영향 덕택에 현저하게 로큰롤에 근접한 리듬 앤드 블루스 곡들을 뽑아냈다. 이 밴드는 1969년 모타운을 떠나면서 록의 웅장한 무대 장식과 가죽 의상을 차용하게 된다. 아이즐리 브라더즈가 1973년 발표한 “That Lady"는 이 곡은 댄스 뮤직 중에서도 가장 길고도 요란한 어니 아이즐리의 기타 솔로가 들어있다. 편곡은 보다 깨끗해지고, 보다 일관성을 갖추게 되었으며, 헨드릭스의 어떤 음악보다도 댄서블하게 이루어졌다. 누구의 영향인지는 명백한 일이다. 아이즐리 브라더즈는 R&B적인 뿌리와 강렬한 록을 배경삼아 아주 강력한 훵크 곡들을 만들어 내면서 훵크 신에서 중량감 있는 밴드 중의 하나가 되었다. 계속하여 헨드릭스에 대한 오마주를 바침으로써 말이다.

 

(201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