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nkatology

<Funk> 3-15 - 모타운 pt.2

Baron Samdi 2016. 6. 24. 17:08


P-훵크 또한 템테이션즈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많은 P-훵크 콘서트에서 들을 수 있었던 훵카델릭의 고전적인 후렴구인 “wo ha hey"는 Cloud Nine앨범에 수록된 9분짜리 곡 "Runaway Child, Running Wild"의 말미에도 나온다. 그리고 P-훵크의 오리지널 멤버인 에디 헤이즐Eddie Hazel과 빌리 넬슨Billy Nelson 또한 템테이션즈의 1975년 R&B 차트 1위곡 "Shakey Ground"에 연주자로 참여했다.

 

70년대 후반기에 이르러, 위트필드는 3인조 보컬인 '언디스퓨티드 트루스the Undisputed Truth'를 훵카델릭과 같은 모습인, 아프로 헤어 가발을 쓰고 은빛의 페이스 페인팅을 한 흑인 록 밴드로 키워냈다. 많은 모타운의 세션 연주자들이 정기적으로 P-훵크 연주자들과 함께 즉흥 연주에 참여했다. 아마도 노먼 위트필드야말로 모타운 사운드에서 가장 평가 절하된 연주자이자 60년대 후반기의 훵크 편곡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모타운의 뮤지션들도 이와 유사하게 평가 절하되었다. 많은 연주자들은 개개인으로서는 탁월한 창조자들이었면서도 대개 세션 연주로 먹고 살 수밖에 없었고 앨범의 라이너 노트(속지)에도 거의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그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훵크 브라더스funk brothers"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제이비스나 바-케이스, 마-케이스, 혹은 (그래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대우받던) 멤피스의 스택스 레코드 소속의 엠지스 등과는 다르게, 이 모타운의 세션 밴드는 여러 해 동안 그늘 속에서 일해야 했다. 드러머인 베니 벤자민Benny Benjamin과 유리엘 존즈Uriel Jones는 모타운 가족의 가장 밑바닥을 받쳐 주었고, 로버트 화이트Robert White의 기타와 얼 밴 다이크Earl Van Dyke의 키보드가 부드러운 느낌을 더해 주었으며, 잭 애쉬포드Jack Ashford의 요란하고 시끄러운 탬버린은 아마도 모타운의 많은 연주곡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일지도 모른다.

 

베이시스트 제임스 제이머슨James Jamerson은 가장 유명한 뮤지션이면서 모타운 가족 중에서 어떤 연주자보다 더 강력한 임팩트를 가진 연주자였다. 타이트하게 몰아가다가 건너뛰고 멈추고 흔드는 등, 그루브를 다루는 그의 능력(스티비 원더의 “For Once in My Life"이나 "Uptight"을 들어보라!)은 전 세계의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주었고, 그가 들려주는 사운드는 정말 라이브에서 따라 하기에는 힘든 것들이었다. 제이머슨은 1983년에 넬슨 조지에게 그의 기법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제 감성은 항상 동양적이었어요. 영적이었다는 말이죠. “Standing in the Shadows of Love"를 들어보세요. 베이스 라인이 아랍 풍일 겁니다. 제 주변에는 중국이나 일본에서 온 동양 친구들이 많아요. 그리고 아프리카, 쿠바, 인도의 음계도 공부했죠. 제가 이 모든 것을 모타운에 가지고 왔습니다.

 

잘 조직된 음악 공장이라는 모타운에 대한 신화와는 반대로, 제이머슨의 베이스는 음악가의 마술적인 영감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그가 자체적으로 개발한 비법이었다.

 

저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 목소리의 억양 등에서 음악을 이끌어 냈고, 구절을 따왔죠. 사람들이 걷는 것을 볼 때면 그 움직임에서 비트를 가져왔습니다. 템테이션즈에서 했던 헤비하고 훵키한 음악 중 한곡을 보면....이름은 까먹었지만 아주 이렇게 크고 뚱뚱한 여인이 걸어 돌아다닙니다. 그 여인은 한시도 가만있지를 못하죠. 저는 그 움직임을 흉내 내서 그 곡을 썼습니다.

 

모타운이 1970년대를 거치는 동안 이뤘던 성공을 지속시킬 수 없었던 한 가지 (혹은 많은) 이유는 이 회사가 로스 앤젤레스로 이주하면서 이 핵심적인 스튜디오 밴드를 디트로이트에 남겨두었고 더 이상 이들의 마법을 서부에서 재현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부로의 이주 후 2년 간, 홀랜드-도지어 사단the Holland-Dozier writers, 포 탑스, 아이즐리 브라더스 그리고 글레이디스 나이트가 모타운을 떠나자, 이러한 몰락은 여지없이 재촉되었다. 진정한 몰락은 사실 1971년부터였는데, 70년대가 시작되자마자 스티비 원더와 마빈 게이가 급격하게 달라진 음악 환경을 나름으로 해석해서 자신들의 갈 길을 찾아 나섰던 것이다.

 

 

(2010/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