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nkatology

<Funk> 3-16 -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마빈 게이)

Baron Samdi 2016. 6. 24. 17:10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마빈 게이는 문제가 많은 사람이었다. 모타운에서 실패를 맛본 많은 가수들 중 한 명이기는 했지만, 그는 자신 안에 그의 추종자들조차도 잘 이해하기 힘든 다양한 특징을 가진 사람이었다. 활기찬 파트너였던 태미 터렐Tammi Terrell의 사망(역자 주 - 유명한 곡 “Ain't No Mountain High Enough"을 마빈 게이와 함께 불렀으며 24세에 뇌종양으로 사망)은 그를 절망 속으로 빠뜨렸으며, 마약과 아버지와의 문제 그리고 모타운의 관악기 연주자들과도 꾸준히 다툼도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이 슬픔과 절망 그리고 창조의 시간의 지나자, 게이는 무드와 멜로디, 그리고 씁쓸한 현실이 어울린 걸작을 만들어냈다. 이것은 게이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업적이었고 새로운 시대를 맞은 모타운의 시작이었다. 게이는 Divided Soul (역자 주 - 데이비드 리츠가 쓴 마빈 게이의 유명한 자서전)이라는 책에서 작가인 데이비드 리츠David Ritz에게 What's Goin' On의 태동에 대해서 설명한 적이 있다.

 

우드스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서 나는 마음 속으로 되뇌었다. 여기 모든 세대의 사람들이 이제 새로운 길을 따라 떠나려고 한다고 말이다. 나는 음악적으로 자신만의 길을 가야 한다고 깨달았다. 모타운이라는 회사는 나를 갑갑하게 옭죄어 왔지만, 그래도 나는 내 길을 갈 수 있다는, 그 강렬한 느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내 동생 프랭키(역자 주 - 본명은 프랜시스 게이Frances Gaye, 솔로 가수이자 마빈 게이의 백킹 보컬로 활약했다.)가 베트남에서 돌아와 그곳에서 벌어지는 얘기를 들려줬을 때, 내 피는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 때 내게서 무언가 - 분노, 에너지, 예술가의 안목 -를 느꼈다. 이제 장난은 그만 칠 때가 된 것이다.

 

마빈은 녹음하던 음반을 하나의 음악적 통일체로 드러내려고 하면서, 수회에 걸쳐서 비약적인 발전을 보여주었다. 재즈계의 거장 레스터 영Lester Young이 만든 일련의 유려한 음악들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그 음반의 완전무결한 흐름으로부터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서서히 그도 스스로 그런 음반을 만들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

마빈 게이가 이 레코드를 (모타운의 사장인) 배리 고디에게 건네주었을 때, 고디는 인내심의 한계를 드러냈다. 그는 이 앨범의 타이틀 곡("What's Goin' on")을 일컬어 “내가 들어본 곡 중 최악”이라고 했으며 음반의 발매 또한 거절했다. 모타운의 홍보 부서 또한 이 앨범의 발매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이 앨범은 발매되면서 탑 10을 차지했고, 소울 차트에서 5주간 1위를 지켰다.

 

What's Goin On의 모든 곡은 서로가 함께 결합되어 있었으며 한없이 우아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담고 있었다. 모두 쓰디쓴 우울함과 절망 그리고 사소한 감정의 고양이 나타나는 단막극들이었다. 그러면서도 노래들은 아름다웠으며 이완된 현악기의 앙상블, 가냘픈 드럼 그리고 마빈 게이의 벨벳같이 부드러운 구슬픈 음색이 참을 수 없는 감동을 주었다. 그 이전에 이와 같은 음악을 선보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레코드의 속지에는 마빈 게이가 직접 만든 긴 라이너 노트와 그의 “가족 사진 앨범”이 콜라주 방식으로 수록되었다. 게이는 오로지 자신만의 힘으로 흑인 대중 음악계의 구조를 싱글 중심에서 음반 중심으로 재정의했고, 개인적인 탐구의 한계를 열어젖혀서 팝 음반에 계시를 주었다. 거의 하룻밤 새에 젊은 미국의 사운드는 성인이 되었고, 경박하고 듣기 좋은 노래들보다 현실이 더 중요하게 되었다. What's Goin' On은 라디오에 흐르던 훵크에 시각적인 리얼리즘을 부여한 최초의 음반이었다.

 

위트필드와 모타운의 다른 작곡가들 또한 이러한 방식을 따르기 시작했는데, 마빈 게이가 앨범을 발매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템테이션즈에게는 “Papa Was a Rolling Stone"을, 언디스퓨티드 트루스에게는 "Smiling Faces"를 제작해 주었다. 다른 아티스트들도 해방을 갈구하는 깊고 우울한 곡들을 만들어 냈는데 오제이스의 "Back Stabber", 시-라이츠the Chi-Lites의 "For God Sakes (Give More Power to the People)", 워의 "Slippin into Darkness" 그리고 슬라이 스톤의 "There's a Riot Goin On" (어쩌면 마빈 게이의 물음에 대한 응답일까?)과 같은 곡들이었다. 넬슨 조지는 1971년에서 1975년에 이르는, 이 시기를 “기업들의 시대에 나타난 해방의 노래들”로 평가했다. 그것은 진정 해방이었다.

 

마빈 게이는 곧 사회에 대한 언급을 주제로 삼던 것에서 벗어나 자신의 성적 환상을 탐구하는 일련의 곡들을 만들었는데, 그 시기의 가장 에로틱한 분위기를 지닌 노래를 계속해서 만들어냈다. 그가 1973년 “Let's Get It On”을 발표했을 때, 흑인 음악의 에로틱한 성격은 새로운 경지에 이르렀다. 노골적인 성적 환상을 나타냄으로써, 마빈 게이는 확실히 관능적 창법의 새로운 창시자였다. 섹스에 대한 심각한 내용을 담은 구애곡이면서 앨범의 타이틀 곡인“You Sure Love to Ball"과 거짓없는 감성을 드러낸 ”Distant Lover"를 통해 마빈 게이의 음악은 친밀하면서도 사적인, 그러면서도 보편적인 감정의 영역으로 다가갔으며, 사람들 앞에서 성적인 주제를 드러내는 것이 근사해 보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음탕해보이거나 지저분한 것이 아니라 성적인 에너지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열려있는 태도를 취할 수 있도록 했던 것이다. 마빈 게이는 그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에게 그의 더 이상 극복할 수 없는 한계로 보였던 What's Goin' On앨범을 한 단계 뛰어넘어 보였다. 1973년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에서 녹음된 Marvin Gaye Live에서는 극대화된 효과로서 매혹적이고 에로틱하게 청자들을 사로잡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Distant Lovers"가 흘러나올 때 들리는 고막을 찢을 듯한 여성 팬들의 아우성은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던 한 남자의 모든 이야기를 대변해 주는 듯 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 마빈 게이는 세계에서 가장 탁월한 흑인 남성 가수가 되었다. 그 후로도 많은 개인적인 문제들에 시달리고 난 뒤, 그는 1982년 발표한 “Sexual Healing"을 전 세계적으로 히트시키며 복귀했다. 다시 한 번 그의 시대가 열리는 듯 보였다. 1984년 말다툼 끝에 그의 아버지가 그를 총으로 쏘기 전까지는 말이다. 가수로서 음악가로서, 그리고 드러머로서 그리고 남자로서 마빈 게이는 흑인 음악의 통합에 주요한 음악인으로서의 위용을 보여주었다.

 

(201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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