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nkatology

쉬크 (CHIC)의 나일 로저스 (Nile Rodgers) 인터뷰 (마지막)

Baron Samdi 2016. 6. 25. 10:44


시스터 슬레지, 우리는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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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목록을 쭉 훑어보다 시스터 슬레지를 발견했어요. 전에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었어요. 작고 예쁜 음반을 하나 낸 적이 있거든요. 그런데 유명하지는 않았어요. 대중성이 없었다, 이 말입니다. 우리는 바로 자리에 앉아서 쉬크를 디자인했듯이, 시스터 슬레지를 손보기로 결정했습니다. “We Are Family”, “He’s the Greatest Dancer”, “Thinking of You”를 썼고요. 이 첫 음반으로 결국 그 친구들의 경력을 손봐준 거죠. 보세요. 캐시 슬레지는 16살이었는데 우리는 버피 운동을 의식해서 슬레지 자매들에게 세련된 젊은 흑인 여성이 되도록 했습니다. 너희들은 이제 다른 여성들이 꿈꾸던 것처럼 화려한 인생을 살게 될 거라고요. 그랬더니 우리를 무슨 화성인처럼 쳐다보더라고요. 다들 교회를 다니는 처녀들이었으니까요. 순진한 처녀 말이죠.

 

잊을 수가 없어요. 이 자매들이 스튜디오에 온 첫날부터 큰 곤경에 빠졌습니다. 우리는 아티스트들에게 먼저 데모 테이프를 만들어서 주지 않습니다. 자매들은 와서 노래를 불렀지요. 제가 했던 방식은 노래가 여기 있다. 너는 미리리 데모 테이프를 받은 적이 없어. 나는 뮤지션이니까. 너희가 스튜디오에 들어 올 때까지 데모 테이프는 없어. 나는 스튜디오에 나타나 악보를 봐. 너희는 들어올 뿐이야. 노래는 내가 가르쳐줘.” 이런 식이었습니다. 자매들이 스튜디오로 들어왔는데 우리는 아직도 “We Are Family”를 쓰고 있었습니다. 자매들이 앉아서 우리를 쳐다보는데 표정들이 이랬어요. “? 우리 무엇부터 해야 하지?” “We Are Family”를 녹음하고 나서는 마음에 들어 하더군요. 믿을 수 없어 하면서요. 그러고 나서 두 번째 곡 녹음을 시작했어요. “He’s the Greatest Dancer”였는데, 가사를 써둔 게 있었어요. “당신은 최고 중의 최고 (crème de la crème), 날 집으로 데려가 줘요.” 분명히 하룻밤 잠자리 상대 (one-night stand)를 의미하는 거잖아요. 16살짜리 교회를 나가는 숫처녀가 남자랑 하룻밤 잠자리라니. (웃음)

 

제가 세상에서 디자이너들에 관한 노래를 쓴 아주, 아주 최초의 작곡가랍니다. 저는 이 가사 다음에 “Halston, Gucci, Fiorucci”라고 썼어요. (역자 주 이 중 피오루치는 스튜디오 54에서 오프닝 파티를 연 브랜드다.) 정말 단 한번에요. 아무 음반에나 이런 걸 넣는 게 아닙니다. 하지 마세요. (래퍼를 흉내내며) “내 부가티, 내 페라리, 내 캐딜락, 시계도 샀어. 롤렉스 샀어.” 음반 하나에 딱 한 번 넣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이 소녀들의 콘셉트를 짜내고 있었기 때문이죠. 우리가 “Halston, Gucci, Fiorucci”라고 하자. “핼스턴, 구치, 피오루치? 그게 뭐에요?” 그러더라고요.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걱정은 하지 말고. 사람들이 다 따라하게 될 거야. 너희는 다른 여자들과 다른 사람들이 꿈꿀 법한 라이프스타일로 수준을 높여야 하거든. 너희들이 원래 이런 옷들을 입고 사는 것처럼 이 가사로 노래를 부르게 될 거야.” 16살짜리답게 그러더군요. “?”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날 믿어. 이거 뜰 거야.”

 

캐시와 저는 지금까지도 정말 친한 친구입니다. 캐시가 그러는데 침대 위에 누워있다 학교 갈 준비를 하는데 라디오에서 자기 목소리가 흘러나오더랍니다. 그 노래가 시스터 슬레지를 띄워준 곡이었죠. 사람들은 시스터 슬레지가 “We Are Family”로 떴다고 생각하는데, 시스터 슬레지가 뜨도록 우리가 밀어 준 곡은 “He’s the Greatest Dancer”입니다. 안 믿으실 지도 모르겠지만 이 곡은 플래티넘 싱글이 되었습니다. 당시에 플래티넘이라고 하면 2백만 장을 팔았다는 얘기입니다. 갓 발매되자마자 차트 꼭대기로 직행했지요. 캐시 말로는 학교에 갈 채비를 하기 전에 침대 위에서 뒹굴다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자기 목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Halston, Gucci, Fiorucci” 이 구절을요. 그래서 그때부터 울음이 터져 나왔답니다. 캐시는 제가 예언했던 말들이 모두 이루어졌다고 하더군요.

 

버나드 에드워즈와 나일 로저스.

 

: 1977년이 되는 섣달 그믐날 (New Year’s Eve)에 선생님과 버나드 선생님이 그레이스 존스 (역자 주 - <007 뷰투어킬>에 출연했던 독특한 스타일로 유명한 여배우, 모델 겸 가수)가 공연하는 스튜디오 54에 들어가려고 하셨는데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 그레이스 존스가 우리의 첫 앨범을 듣고 “Everybody Dance”을 좋아했다나 봐요. 그 사람 입맛에 맞았겠죠. 그 사람은 저희보고 자기의 다음 앨범 프로듀서를 맡기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레이스의 목소리를 들어보셨는지, 그 사람 말투가 좀 가식적인데요. 저희는 미팅을 하지 않아서 그레이스를 직접 만나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저 통화만 했을 뿐이죠.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레이스의 목소리로) “자기야, 그러니까 그냥 뒷문으로 와서 노크하고 거기 사람들한테 그레이스 존스 양과 개인적으로 친구라고 해.” 우리는 그때 피 끓는 젊은이들이었지만 음악계에서는 쌩 초짜였어요. 그런 목소리를 내는 게 일종의 비밀 암호 같은 것으로 생각했죠. 누가 그레이스 존스에게 다시 되물어 확인해 볼 생각을 하겠어요. 우리에게는 슈퍼스타인데요. 그래서 우리는 그레이스의 말투를 똑같이 따라하라는 뜻으로 생각했습니다. 스튜디오 54로 가서 문을 똑똑 두드리니까 기도 한 명이 문을 열어주더라고요. 그날이 섣달 그믐날이었고, 세상에서 가장 좋은 티켓이 우리 손에 있었습니다. (그레이스 존스의 가식적인 목소리를 흉내 내서) “우리는 그레이스 존스 양과 개인적으로 친구에요.” 이러니까 기도가 아이~ 이 새끼들 꺼져!” (Ahh, man Fuck off!) 이럽디다. 저희는 흉내 낼 때 악센트가 틀렸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다시 문을 똑똑 두드리고 나서 (좀 더 그레이스 존스답게 더욱 가식적인 목소리로) “우리는 그레이스 존스 양과 개인적으로 친구라니까요.” 그러니까 기도가 그랬어요. “이 새끼들, 내가 꺼지랬지!” 우리는 좀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말했습니다. “아니, 형씨 우리는 진짜 그레이스 존스 양의 친구들이란 말이요.” 진짜 분명한 사실은 그날 밤에 우리는 스튜디오 54에 못 들어갔다는 겁니다.

 

당시 저는 52번가 코너에 집이 있었어요. 밴드 멤버들을 데리고 저희 집으로 갔지요. 그때 우리는 돈을 벌려는 목적에서도 그랬지만 재미가 있었기 때문에 음악을 했던 것이거든요. 생계수단이면서 오락거리였던 셈이죠. 그래서 잼을 시작했어요. 제가 기타를 잡고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Freak Out”의 기타 라인을 연주 하면서 아이 꺼져, 스튜디오 54 꺼져!” (Ahh Fuck off! Fuck Studio 54) 하고 노래를 불렀지요. 우리 친구 버나드가 베이스를 잡고 연주를 했죠. 곧 곡에 몰두했습니다. 우리는 잼을 하면서 미친 듯이 가사를 써내려갔습니다. “택시 기사가 쌩 깠네. 꺼져! (fuck off)” 마침내 우리 왕 순둥이 버나드가 안경을 고쳐 썼어요. 안경을 고쳐 썼다는 건 자기 말에 주목해달란 뜻이거든요. “친구야, 이거 그냥 재미로 해본 것 맞지?” 그때는 힙합이 나오기도 전입니다. 힙합이 나오기 3년 전이었죠.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꺼져라는 말을 라디오에서 어떻게 방송해?” 그래서 가사를 갖고 뭉그적거리다 가사를 짜증 나! (freak off)로 바꿨어요. 느낌이 안 나는 거예요. 그래서 뿅 가! (freak out)로 바꿨는데 정말 느낌이 확 사는 거예요. (히피 목소리로) “야 친구야 뽕 가!’로 하자. 약을 X나 빨았을 때, 뿅 가는 기분 너희들 알지?” 버나드가 뭐라고?”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더라고요. 제가 그래서 미안, 그게 아니고.”하면서 흑인예술인노조 조합원증 (Black union card, 역자 주 번역할 때 이 부분의 의미를 몰라서 찾지 못했다. 신용카드도 아니고.)을 꺼내들었어요. 그리고는 아니야, 인마. 내가 뭔 말 하는지 알지? 네가 예쁜 아가씨를 데리고 댄스 플로어에 올라가면 뿅 가는 느낌이잖아. 막 환장하겠고 베이스가 절로 빵빵 터지잖아.” 그랬더니 버나드가 이렇게 얘기했어요. “, 그래. 그러면 우리 노래를 듣는 친구들이 출 춤은 뿅 춤’ (the Freak)이 될 거야.” 그래서 우리는 처비 체커의 트위스트를 모델로 해서 작업을 했어요. 춤을 어떻게 춰야 하는 지도 모르는데 댄스곡부터 만든 거죠. 춤을 어떻게 출 지에 대해서는 얘기를 못 했어요. 우리도 어떻게 춰야 할지 몰랐거든요. 그래도 그런 춤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중적 의미에 대한 얘기를 나눴고요. (double entendres, 역자 주 하나의 단어나 구절이 두 개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경우, 대개 같은 구절 안에 점잖은 뜻과 상스러운 뜻이 함께 표현되어 있다.) “이 새로운 댄스 열풍에 대해 아십니까?” 이러면서 놀았죠. 스튜디오 54를 욕하는 대신에 우리는 스튜디오 54를 찬양하기로 했습니다. 스튜디오 54가 우리를 신()적인 위치로 올려줄 테니까요. 제가 참여한 모든 음반들 중에서 “Le Freak”은 제 인생에서 가장 최고의 곡이었어요. 저는 행운아입니다. “Le Freak”은 애틀랜틱 레코드에서 나온 음반 중에서 유일하게 트리플 플래티넘을 기록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미국에서만 싱글로 6백만 장을 팔았다는 얘기입니다. 애틀랜타 한 도시에서만 골드를 기록했어요. 그러니까 애틀랜타에서만 100만 장을 팔았다는 얘깁니다. (웃음)

 

우리의 다음 앨범은 <Risque>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Good Times”를 썼어요. 이 곡이 저희에게는 천지개벽을 가져왔어요. “Good Times”가 힙합에 샘플링되어 대중적이고 상업적으로 성공한 최초의 음반이 되었기 때문이죠. 슈거힐 갱은 베이스라인뿐만 아니라 곡의 진행, 브레이크나 현악 파트를 비롯해 우리의 모든 콘셉트를 차용했어요. 그 친구들은 한동안 12인치로만 음반을 판매했습니다. 최초로 저희는 음반을 공동으로 내게 되었습니다. 우리 손으로 작업한 곡과 누군가 다른 사람이 뭔가를 덧붙여 만든 곡을요. 사실 더 큰 (상업적/음악적) 가치를 부여해준 셈이죠. 우리가 저작권의 일부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냥 뒷짐 지고 서서 좋아, 해 보라고 슈거힐, 내 덕 좀 보라고.” 이러는 거죠. 다음은 그 이후의 일들인데, 오늘날까지 저는 제 곡을 가져다 쓴 다른 사람들 덕분에 매년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윌 스미스의 “Getting Jiggy With It” (He's A Greatest Dancer를 샘플링)같은 곡들, 그러니까 제가 30년 전에 쓴 곡들로부터 나온 수많은 팝 차트 1위곡들 덕에 말이죠. 이 곡들은 그루브도 좋고 베이스라인도 좋고 다른 아티스트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뭔가가 있습니다. 저는 예술적이고 느낌을 가진 사람들이 일하는 법을 지켜봐왔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장애물이나 골치 아픈 문제들을 신경 쓰지 않더군요. 일을 하려면 어떻게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왜냐면 그 일을 너무 너무 사랑하기에 일 속으로 뛰어들고 싶어 하기 때문이죠. 사람들이 이 음악계에서 꿈꾸는 것이 무엇인지 모두 압니다만 저는 제 일만할 뿐입니다. 단지 음악을 너무 사랑하고 음악이 제 목숨을 수없이 구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살아있다는 사실에 전율을 느껴요. 2년 전엔가 저는 암으로 눈이 안 보였습니다. 아주 혹독한 암이었죠. 사람들은 제가 2달 남짓 살 것이라고 봤죠. 저는 이제 2년째 살아있습니다. 작년에는 제가 쉬크 재단을 설립한 이래로 했던 콘서트보다 더 많은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책을 썼는데 영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미국에서도 꽤 잘 팔립니다. 영화 계약은 요리조리 피하고 있지만요. 정말 경이로운 인생이죠. 제 인생에서 가장 대단한 것이 있다면 저와 함께 일했던 아티스트들입니다. 그 사람들 음악 인생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음반이 제 손에서 나왔죠. 시스터 슬레지의 음악인생에서 최고의 음반을 만들었고 다이애너 로스의 음악인생에서 또한 최고의 음반을 만들었습니다. 듀란 듀란도 그렇고 데이비드 보위도 마찬가지입니다. 마돈나도 그렇고요. 톰슨 트윈스도요. “Le Freak”은 애틀랜틱 레코드 역사상 최고로 많이 팔린 음반입니다. 그러니 진짜 축복받은 인생이지요                

 

<끝>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5/3/25)